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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게 꽃을 받은 42세 남자

졸업식 이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받은 꽃다발. 말로 표현할 수 없던 순간

by 알렉스키드


책임님, 저희 같이 사진 찍어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우리 본부의 큰 행사 현장에서,

우리 기관 유튜브에 출연해주셨던 대표님께서 나에게 사진 촬영을 권하셨다.

올해 새롭게 런칭하던 프로젝트 1호 기업으로 내가 초대드렸던 감사한 분.


"어휴, 그럼요! 같이 찍어요 대표님"

환하게 웃으며 포토월에서 사진 찍을 준비를 마쳤다.


대표님, 그리고 함께 오신 지인분과 나란히
포즈를 취하는데 꽃다발을 꺼내서 건내주시길래,
손이 심심해서 배려하셨나하고 들고 찍었다.

"찾아 주셔서 감사해요 대표님, 꽃 드릴게요."

아 아닙니다. 책임님 드리는 꽃이예요.


"..네? 꽃다발을요? 저한테요? 정말요?"


내 손으로 적기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그는 분명하게 나를 바라보면서 입을 떼셨다


올해 너무 감사해서 꽃을 준비하셨다고하는 그의 말

해묵은 표현 그대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고

나는 먹먹핟 마음에, 잠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메어오는 목을 가다듬으며,

달변가인 나 답지 않게 버벅이며 말을 건냈다.

"아.. 감사해요. 제가 이런 감정이 처음이라서..
뭐라고 말씀드려야되지."


말을 하며 대표님과 지인분의 눈을 번갈아 마주쳤는데,

선하고, 맑고, 진정성이 가득한 '말이 필요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짧은 순간 넓은 행사장과 우리 셋을 가득 채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학교 졸업 이후, 누군가가 내게 꽃을 준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내가 모신 기업의 대표님께서, 내게 감사를 표하면서 말이다. 눈물 나는거, 당연한거 맞지?


그와의 이야기는 올해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공기관 홍보팀 담당자로서, 일년간 운영하던 유튜브

컨셉을 또 한번 뒤엎는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일년간 고생하며 주변의 야유와 비난, 블라인드 저격까지 당해가면서
직접 출연하고 기업을 섭외해 온 내 이름과 모든 것을 담은 기관 유튜브 채널을,
다시 한번 내 손으로 뒤엎어야하는 사실상 제법 괴로운 순간이었다.
그래도, 직장인이면 상부의 지시에 따라야하는 일. 쓴 물을 삼키며 달리던 그 순간들.


어려운 현실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기업을 찾아, 그들을 응원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는 프로젝트


사연 공모를 바삐 개최했고,

수많은 사연들 중 1호 기업의 선정됐다.


섭외 전화를 드리고, 사전 답사와 미팅을 진행하러 현장으로 향했다.

조용한 구축 아파트 근처의 어떤 낡은 단층 상가

상가의 입구에는 간판이 붙어 있고, 지하로 한층 내려가면 사무실이자 작업실이 나왔다.


사무실 입구에 담담히 붙어 있는 한장의 A4 용지


세상에 이렇게 담백하면서도 진심을 담은 방문 인사가 있던가. 문을 두드리기 전에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시작됐나보다. 그와의 진심이.


수많은 출장과 미팅을 경험해봤지만,

이 환영 게시판만큼 뭉클하고 감동적이며, 진심이 느껴지는 인사는 단연코 처음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서 인사를 건내고 자리에 앉기까지 그는 정신없이 업무를 쳐내고 있었다.

기다리게해서 죄송하다며 연신 미안해하던 그는 수려한 외모에 예의를 갖춘,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굉장히 단단해보이는 사람이었다. 요즘 사람 같지 않게.


전화 인터뷰로 듣지 못했던 많은 사연을 전해들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그는 많은 전장을 이겨내며 여기까지 걸어왔고,

개인 파산의 위기까지 겪어내면서까지 고집스럽게 본인의 필드를 지켜왔다.

젊은 나이에 그가 짊어졌던 무게들이, 곧 성공을 향한 고개를 들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성공에 가까운' 기업들, '적당히 겉멋이 든' 기업들 많이 만나왔는데, 이런 순수함은 처음이었다.


회의를 마치며 촬영일자를 확정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남은 업무를 치르기 위해 우리 회사로 돌아오는 중에, 나는 어두운 골목길에 멈춰서게 되었다.


갑자기 눈물이 나는 것이었다. 갑자기 왜 눈물이 나는거지?


구시가지 골목길 어두운 어딘가에서 나는 호흡을 고르며, 눈물을 닦아 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기도를 드렸다.


내게 주신 달란트를 마음껏 사용하셔서,
세상에 전달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도와주소서.

이 기업은 정말 진심이다 모든게. 30번 넘는 기업 촬영을 했는데, 스탭들과 우리를 위한 간식을 이렇게 정성스레 준비한 곳은 처음이었다. 세상에.

첫 촬영을 무사히 마쳤고,

많은 분들이 영상을 봐주셨고 많은 격려를 보내주셨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그가 갈고 닦아온 사업과 열정이 세상에 전해지기 시작했다.

OTT와 공중파 드라마에도 그의 제품이 출연하고,

국가기관의 지원을 받고, 제품 또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파죽지세로 달려나가는 그와 그의 사업을 보면서,

한번 더 우리 유튜브에 초대하여 또 다른 콘텐츠의 첫 에피소드를 만들 수 있었고,

우리 본부가 만든 네트워킹 커뮤니티 프로그램에 초대도 드렸고,

마침내 한해를 마무리하는 본부 행사에서 우리 대표님과 패널토크까지 진행하게 되었다.


15년의 사회 생활, 그중에서 9년 간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기관에 있었는데 이렇게 누군가가 내게 와서 꽃다발을 준 경험은 단연코 처음이었다.


뉴미디어 홍보? 솔직히 매일 매일이 현타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줄이는 예산이 홍보 분야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회사를 움직이는 분야가 아니기에 무시 당한다.

언론보도처럼 어른들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매체가 아니기에 티도 덜난다.

열심히 해도 윗 사람들이 별로라고 하면 또 바꿔야되는게 SNS 컨셉이다.

특히나 '승진'이 걸린 시기에선, 이거해서 승진못하는데 어쩌냐는 걱정을 듣는다.

그러면서도 현장에서 운동화를 신고 매일 뛰어다니지 않으면, 일이 안된다.


조바심이 들때도 많다. 나이 40 넘어서, 이 일이 아닌 다른 일이 맡겨지면 과연 나는 잘 해낼 수 있을까? 이 시기에 이 일, 맞는걸까?


그렇게 하루 또 하루를 버텨내고 이겨내는 이유?

다른거 없다. 사람 때문이다. 사람을 보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유튜브? 그거 누가 보냐고 나도 무시했다.

이젠 내게 우리 유튜브가 뭐가 다르냐고 물어보면,

나는 자신있게 대답한다.


가장 중소기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 감히 다루지 못할 기업의 이야기들을 다룹니다.


바야흐로 자극의 시대다.

말초신경을 자극하지 못하면,

롱폼은 그야말로 사장된다.

인터뷰이 한명 앉혀두고, 스튜디오에서 따뜻하고 시원하게 마주 앉아서
PD 작가들이 알아서 인터뷰 진행하게 하고, 5분 내외의 인터뷰 영상 만드는거?
원래 그렇게 하는게 맞다. 그 콘텐츠만으로도, 기업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근데 나는 그렇게 안한다.

내 삶을 담아서, 한 톨이라도 기업이 더 말하게 만든다.

왜냐면 나는 그렇게 일 하는 사람이고, 내가 이런 사람이니 이 일을 맡겼으리라 생각하니까.


정말 기분 좋은 밤이다. 너무나 감사한 순간이다.

내가 믿는 가치, 나의 신념을 내가 초대한 기업의 대표께서 이렇게 지켜주다니.


나의 한 해를 열었던 프로젝트의 첫 인터뷰이인 대표님께서,

우리의 한 해를 마무리하는 행사에서 내게 꽃다발을 건내주셨다.


행사가 끝나고,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한참을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순간이 내게 주는 의미. 사람 때문에 받았던 상처의 시간들. 그러나 지금 사람에게 받은 위대한 진심


그간의 모든 마음 고생이,

세상의 비교에 지친 내 영혼이,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 고민되는

그 지리한 40대의 방황이 치유가 되는 순간이었다.


사람 때문에 정말 힘들었던 올해였는데,

결국은 사람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내년에도, 앞으로도 끝까지 해내자.

나 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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