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행복한 엄마다
처음 BCG의 인사담당자로 부터 연락을 받았을 때, 이든이는 채 두 살이 되지 않은, 아직도 엄마의
손이 익숙한 아이였다. 언젠가 일터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이때다”하고 집안을 박차고 나가기에는 내 마음이 온전히 정해지지 않은 때였다.
그럼에도 2년이라는 육아휴직 기간 동안, “IT 컨설턴트“라는 내 직업도, ”박은지“라는 내 이름도 사라져 가는 기분과 함께, 차곡차곡 쌓여가던 우울감을 느끼던 나는 행복하기 위해, 그리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 이 기회를 흘려보내지 않기로 했다.
한국이었다면 나의 소소한 학벌로는 꿈도 꿔보지 못할 회사. 대학생 시절 수업시간에나 들어봤을 법한, 저기 꼭대기층에 있는 누군가나 욕심내 볼 법한 그런 회사. 나에게 BCG는 그런 곳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전략 컨설팅펌에서 나 같은 IT 컨설턴트를 왜 찾는지 의아해하며, 혹시 링크드인에 있는 사기행각이 아닐까 의심도 했지만, 그들이 디지털 전략을 위한 팀을 꾸리고 비즈니스를 키워나간다는 이야기에 나는 슬슬 구미가 당기기 시작했다.
2020년이 시작되던 때, 네 번의 케이스 인터뷰를 거친 후, 유선상으로 최종 합격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미 Accenture라는 IT 컨설팅 회사를 다니고 있던 나는, 이든이를 낳은 후 출장도 야근도 많은 컨설팅 일을 그만두고 “엄마다운” 일을 찾겠다고 다짐을 한 바였다. 그런데 더 악명 높은 전략 컨설팅 회사라니. 분명 기뻐야 할 일인데, 오히려 무거워진 마음으로 어렵게 남편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뭐 어때. 한 달이든 세 달이든, 너의 Dream Job이었다며. 해 보고 안 되면 그만 두면 되지 뭐. “
분명 누구든 쉽게 해 줄 수 있는 조언이었지만, 이 말이 남편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은, “한 번 해봐, 나도 이든이도 지금보다 힘들어지겠지만, 네가 하고 싶다면 도와줄게. “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남편의 응원에 힘입어 입사 결정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세계는 코로나라는 낯선 녀석이 몰고 온 팬데믹 사태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수많은 회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채용을 축소하거나 취소하는 방안을 선택했고, BCG 또한 나의 입사를 무기한 연기했다. 그 사이, 이든이 하나 일 때도
망설이던 나는,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고, 해가 바뀌어 이나가 9개월이 될 즈음 첫 출근을 하였다.
얼마 전 회사 마케팅팀에서 “워킹맘”으로 살고 있는 내 이야기를 회사 소셜미디어에 게재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짧은 콘텐츠였지만, 내가 엄마로서, 그리고 직장인으로서 잘하고 있는 것인지,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결론은, “잘 모르겠음”. 그러나 단 한 가지 힘주어 말할 수 있었던 부분은, 나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일을 쉬고 아이에게 전념하고 있던 그때보다, 훨씬 행복한 엄마라는 것. 같이 시간을 못 보내는 만큼 미안한 마음이 언제나 한 바가지지만, 미안한 만큼 사랑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에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엄마라는 것.
언젠가 지금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후회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벨기에에서 만난 한 선배님의 말씀을 위로삼아 오늘도 묵묵히 내 하루를 살아가려 한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네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을 미루지 마.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엄마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 자식들을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보니, 크면 클수록 엄마 아빠가 더 필요하더라고. 어쩌면 지금이 너에게 가장 좋은 기회일지도 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