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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얌얌 Aug 04. 2021

아르메니아에서의 추억

예레반_기대를 안 했는데 정말 좋았던 곳

여행 중이나 여행을 갔다 와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에 하나가 어느 나라가 좋았냐는 것이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는 나라 중에 하나가 바로 아르메니아이다. 가기 전에는 조지아에 대한 실망으로 그 옆에 있는 ‘아르메니아’라는 곳도 그렇게 기대가 되지 않아서 갈지, 말지 트빌리시에 있는 호스텔에서 머무르면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르메니아를 갔다 오신 분이 생각보다 좋았다고 해서 아르메니아를 가보기로 했다.


그래도 별로 기대는 없었고 그냥 3일이나 4일 정도 도시가 어떤지 구경이나 하고 올 생각으로 출발을 했다. 결론은 15일이나 예레반에 머물렀고 예레반은 내가 사랑하는 도시 중의 하나가 되었다. 아르메니아가 왜 좋냐고 물어보면 무엇보다 드는 생각은 그냥 좋다는 것이다. 좋다는 것 중에 최고의 표현은 그냥 좋다는 것이 아닐까? 물론 세부적으로 좋은 이유가 있지만 그 세부적인 이유를 감싸고 있는 것은 그냥 좋다는 것이다.


아르메니아를 여행하고 나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여행지에서 자연, 유적지, 레포츠, 음식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있을 것이고 사람마다 중요시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지역의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화려하고 좋은 집에 가도 집주인이 불친절하다면 마음은 불편할 것이고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집은 좀 허름하지만 정말 친절한 주인이 있다면 또다시 방문을 하고 싶을 것이다. 내가 느낀 예레반은 그렇게 특별하게 볼 것이 많은 도시는 아니었지만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미소를 띠고 여유가 느껴지고 호의적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꽃들을 거리에서 이렇게 많이 파는 도시는 처음이었다. 오페라 하우스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공연을 해서 부담 없이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꽃과 음악이 그들의 삶의 일부분으로 느껴졌다. 길에는 음수대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물이 계속 나오고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편하게 자주 이용을 하고 있었다. 


“빈 소년 합창단의 공연과 아르메니아의 슬프지만 아름다웠던 곡 Erebuni”


이곳의 오페라 하우스는 시내의 중심에 있어서 접근이 편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공연을 볼 수가 있었다. 때마침 빈 소년 합창단 공연이 있어서 만원 정도의 돈을 내고 표를 구입을 했다. 공연은 인기가 많아서 공연을 보기 위해 통로에 까지 사람들이 앉았다. 빈 소년 합창단은 그 명성에 걸맞게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와 화음을 들려주었고 그 아이들 사이에는 한국인 소년들도 있어서 괜히 뿌듯하고 공연이 끝나고 한국 소년과 같이 사진도 찍었다. 

여러 곡을 합창을 했는데 이 중에 가장 기억이 남은 노래는 아르메니아 합창단과 같이 부른 ‘Erebuni’였다. 노래의 가락이 슬프지만 그 슬픔을 이겨내는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멜로디를 듣다 보면 뭔가 우리나라의 ‘아리랑’이 생각이 들면서 그 노래의 소리에 공감이 되었다. 

오페라 하우스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주변 강대국들에게 침략을 받으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그들의 문화와 언어 등을 꿋꿋하게 지켜내 온 모습이 떠오르게 되는 노래였다. 아리랑을 들을 때 심금을 울리는 무언가가 그 노래에서도 느껴졌다. 그러면서 아르메니아가 더욱 애틋하면서 대견하게 느껴졌다. 이 노래는 유튜브에서도 검색하면 나오기 때문에 한 번 검색해서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 아르메니아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학살 추모기념관”


아르메니아의 현재 이웃 나라와의 관계가 별로 좋지가 않다. 아제르바이잔과는 영토 분쟁이 있어서 완전히 서로 국경이 막혀 있는 상태여서 육로나 항공으로 이동을 할 수가 없는 상태이고 또 다른 이웃 나라인 터키와는 터키가 예전에 오토만 제국이었을 때, 지배를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에 관계가 좋지가 않다. 그래서 터키가 바로 옆에 있지만 육로로는 갈 수가 없어서 다시 트빌리시로 가서 터키로 이동해야만 했다. 그래서 트빌리시가 이런 상황이어서 코카서스의 중심 도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학살 추모 기념관

이런 아르메니아와 주변 나라들의 관계는 마치 우리나라가 북한과는 완전 교류가 단절되어있고 역사적으로 주변국의 침략을 많이 받은 모습과 비슷해서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과거의 아르메니아는 지금보다 훨씬 컸지만 주변 강대국들에게 영토를 빼앗겨서 현재의 아르메니아 영토의 모습이 되었고 예레반에서도 보이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아라랏산도 현재는 터키의 영토에 들어가 있다. 예레반에 있는 대학살 추모기념관은 오토만 제국이 아르메니아 사람들을 강제 이주를 시키면서 최대 200만 명정 도나 되는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이 숫자는 아르메니아가 주장하는 숫자이고 터키는 20만 명 정도로 추청하고 있다. 아무튼 수많은 사람이 터키의 강제 이주로 죽은 것은 명백했다. 이 추모기념관에서는 핍박받고 죽임을 당하거나 황무지 같은 곳에서 죽어가는 아르메니아의 사람들의 사진과 거기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 당시에 터키와 전쟁 중이던 러시아 쪽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생각해서 터키인들이 저지른 이 같이 끔찍한 일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정도로 대규모의 강제 이주는 민족말살과 같은 의미라고도 볼 수가 있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서 다른 민족을 말살을 시키려는 그 광기 어린 시대의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때 이런 더 놀라운 것이 이 같은 역사적인 과오에 대해 터키 정부는 아직도 아르메니아에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에도 터기의 국력이 아르메니아보다 훨씬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대규모 학살에 대해 터키 정부에게 국제적인 인정과 사과를 요청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같은 일은 마치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는 모습과 오버랩이 되어 보였다. 그리고 인간이라고 불리고 말끔한 옷을 입고 세련된 매너로 서로 격식 있게 대하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게 힘의 논리가 우리들의 관계를 지배하고 있는 듯하게 생각이 되었다. 이렇게 국제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지 않고 지나간 학살은 후에 독일의 히틀러가 유대인의 대학살을 시행할 때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박물관에는 히틀러의 말도 인용해 놓고 있는데 해석하자면 ‘누가 아르메니아 학살을 지금 기억하는가?’라는 의미였다.

추모의 불

그러나 같은 학살이었는데 현재 유대인 학살은 전 세계사람들의 대부분이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고 독일도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한 반면에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나도 아르메니아에 오기 전까지 알지도 못했고 아직도 터키 정부는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진 예의라는 것도 결국은 강한 자의 눈치를 보고 손해를 받지 않는 선에서 행동하는 것일 뿐인 것 같다. 추모기념관의 전시관을 나오면 야외에 큰 탑이 있고 그 옆으로 기둥에 둘러 쌓여 있는 곳에는 추모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추모를 하는 꽃들이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 잠시 그때에 희생당한 사람들에게 묵념을 하면서 이런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랐다. 



“ 경치가 멋있고 산의 절벽의 모양이 아름다웠던 주상 절리”


예레반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가면 가르니 신전이라는 곳이 나오고 그 옆으로 엄청난 규모의 주상절리 지역이 펼쳐진다. 호스텔에서 만난 필리핀 친구인 니콜라스와 가르니 신전을 먼저 구경하고 주상절리를 보러 갔다. 가르니 신전은 그리스 신전의 느낌이 나는 곳이었는데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아서 금방 볼 수 있었다. 신전이 있는 곳이 주변보다 지형이 높은 곳이어서 그곳에서 보는 주변의 산들이 보이는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산길을 따라 내려가서 쭉 걸으면 드디어 산의 절벽에 주상절리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주상절리라는 것을 예전에 제주도 해안가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본 주상절리는 훨씬 규모가 대단하고 웅장했다. 더구나 멀리서 보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서 만져 볼 수도 있어서 그 감동은 더욱더 컸다. 이렇게 육각형의 기둥들이 모여서 큰 절벽이 되어있는 모습은 정말 처음 보는 광경이었고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생겨날 수가 있었을까 신기했다. 정말 자연은 신비스럽고 경이로운 것 같다. 주상절리라는 말은 아마도 한자로 된 단어여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불리는 것 같고 이곳의 영어명은 ‘Symphony of Stone’이었다. 돌들의 교향곡이라니 참 예술적인 작명이 아닐 수 없다. 

주상절리

이곳의 모습을 보면 돌들이 악보처럼 위, 아래로 배치되어 있는 것처럼도 보이고 성당에 있는 오르간 파이프의 보습처럼도 보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지어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정적인 느낌의 바위들이 이곳에서는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위에서 내려오던 돌기둥들을 순간적으로 벽에 붙여놓은 느낌도 들었다.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감동을 받았던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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