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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May 09. 2023

어머니~

'깊은 강물은 소리 나지 않는다'는 그 말..


5년 전 쯤 이었을까?

주일 예배 설교 중, 목사님이 이 글을 읽어주셨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것은 3학년 때까지의 등록금과

달마다 내는 방새 2만원 뿐이다. 쌀은 집에서 날라다 먹어라."


그러나 대학 생활이란 것이 어디 등록금과 방과 쌀만 갖고 해결되던가?

책값, 옷값, 각종 학교 행사 및 서클 회비, 그리고

커피값까지...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는 어머니를 많이 원망했다.

해마다 농토를 늘릴 정도로 부자인 어머니가 어떻게 이렇게 매정할 수가 있느냐며.


그 갈등의 고리가 잠시 풀린 것은 2학년 겨울 방학

때였다.

집안이 어려워 우리 집으로 복학 등록금을 빌리러 온 동네 대학생에게 어머니는 선뜻 돈을 내 놓으며 말씀하셨다.


"자네는 돈의 귀함과 천함을 잘 아는 사람으로 여겨지네.

등록금을 꿔주니 졸업 후 2년 내로 갚게. 안 갚아도 좋으나 그때 불쌍해지는 사람은 돈을 못 받는 내가 아닐세.

지금의 자네 처지와 돈을 빌리는 심정을 잊어버린 자넬세."


내 어머니는 자상하거나 인자 한 분이 아니었다.

공들여 싼 도시락, 리본을 들여 예쁘게 땋는 머리, 털실로 짠 스웨터, 이런 것들은 나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

우리 어머니도 다른 어머니들처럼 자식을 사랑하는 걸까?

이런 의심을 품기까지 했었다.


밤새 산길을 걸어서 이고 오신 어머니의 동치미 보따리에 목이 멘 그 새벽녘까지는.


내가 강원도 깊은 산골의 탄광 마을에서 자취를 할 때였다.

시골 자취 방 이란 것이 허술하기 짝이 없어 나는 그만 연탄 가스에 중독되고 말았다.

보건소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머리는 깨어질 듯하고, 물 그릇 조차 집을 기운도 없었다.

무섭고, 외롭고, 난생 처음 어머니가 그리웠다.


늦도록 훌쩍이다 까무룩 잠이 든 새벽,

두런거리는 소리와 낯익은 목소리에 문을 밀쳐 보니 머리에 보따리를 인 어머니가 하얀 달빛 아래 서 계셨다.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충청도에서 길을 떠나오셨으나, 평창에서 막차를 놓치는 바람에 다음날 새벽 차를 기다리지 못하고 밤새 산을 넘으셨던 것이다.


"애가 타서 여관 잠을 잘 수 가 있어야지."

서리가 하얗게 내린 동치미 보따리를 풀면서 말씀하시는 늙은 어머니 무릎에 엎드려 나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지금도 나는 부모를 원망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 깊은 강물은 소리 나지 않는다. 자식이 그 깊이를 모를 뿐이지."


(...)


< 수원 권선고등학교 류 영옥 선생님의 '깊은 강물은 소리 나지 않는다' >

  



'깊은 강물은 소리 나지 않는다. 자식이 그 깊이를 모를 뿐이지'

그분의 글을 들으며...

구구절절 맞는 말에 공감하면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이 주루룩 뚝. 뚝. 뚝...

아마도 사람들이 내 주변에 없었다면,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을지도 모른다.


간신히 내 감정을 추스리면서,

집에 돌아와, 류 영옥 선생님의 '깊은 강물은 소리 나지 않는다'는 에세이를 인터넷에서 다시 찾아서 읽었다.


딸을 사랑하는 엄마의 깊은 애정도 읽어지고,

엄마의 마음을 새기는 딸의 애틋함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터져버린 나의 감정을 주체하며 추스르기가

몹시 힘들었다.


이후에도 나는 가끔 류영옥 선생의 이 글을 부러

찾아서 읽어보곤 한다.


언제나 철 들지 않을 것 같은 자식이 비로소 철들고,

어른이 되어 엄마가 된다.


다시 과거 내 어린 시절과

어머니의 모습을 되돌아 보니,

후회할 일들 투성이에

 아쉽고 죄송했던 일들 뿐이라는 생각에 내 마음 한켠이 슬프기도 다.



올해 2월 초에 엄마의 팔순잔치를 기족끼리 모여서

조촐하게 치뤘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여동생 네를 제외하고,

4 남매로 연이 맺어진 가족 모두가 함께 했다.

뜻 깊은 자리에서 가족 모두의 기쁨은 지금까지 크게 탈 없이

모두가 건강하게 모여서 엄마의 팔순 생신을

축하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감사했다.



20년 전 먼저 가신 아빠의 자리가 비었지만,

아빠 병수발로 수 십년 간 고생하셨던 엄마의 몸과 마음의 짐은 없어졌다.

이후로 훨훨 털어 보내셔서 오히려 몸과 마음은

더 편하실지도 모른다.

5 남매 모두 혼사 치루고,  자식들이 어른 노릇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하시느라,

당신의 건강은 늘 뒷전이라서 이제는 약을 달고 사신다.


그래도 자식들과 통화하면, 언제나 자식 걱정이 먼저다.


그것이 어미의 마음일까?

당신의 건강이 안 좋아서, 아프고 힘들다 하시면서도

결국은 자식이 나이 먹고 늙어간다고 생각하기 만 해도

슬프신가 보다.


이 땅 모든 부모의 마음이기도 할게다.


나도 엄마의 그 마음을 손톱 만큼 알 수 있을 것 같다.


오즘은 불현듯 엄마의 빈자리가 두려워지기도 한다.


작년 11월부터는 스스로 마음을 먹었다.

매일 저녁마다 엄마에게 안부 전화 드리기로 작정했다.

자식으로써 당연히 해야 할 도리를 마음을 먹는다는

생각에 내 자신이 스스로 못 마땅하기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이제라도 한 것에 대해서는 잘 한 일이라 생각한다.

지금껏 거의 매일 빠뜨리지 않고, 엄마에게 밤마다 안부 전화를 하고 있다.

그리 사근사근 하지도 않고, 애교스럽지도 않은 둘째 딸이 매일 전화한다는 것이

내 스스로도 조금 간질거릴 것 같은 일이기도 하지만..

막상 엄마에게 매일 안부 전화하고 보니,

왜 이걸 이제서야 하는지, 지난날의 내모습에 반성하기도 한다.


매일 전화하면, 엄마에게 할 말이 없을 것 같지만

이 일상이라는 생활을 매일 나열하다 보면,

오히려 할 얘기가 더 많고, 더 깊고 진지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더 없이 감사하기까지 하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엄마는 늘 통화 말미에는 내게 그러신다.

"딸아! 전화해줘서 고맙다."


아~ 나는 이 말에 또 한 번 목 메이기 시작한다.

가슴 찡한 엄마의 안부 말미 인사에 코끝이 아린다.

엄마 안녕히 주무세요! 사랑합니다.


'깊은 강물은 소리 나지 않는다. 자식이 그 깊이를 모를 뿐이지'

류영옥 선생님의 이 글이 오늘도 자식의 모름을 깨우치고 있다.

고맙습니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라서, 엄마에게 오전 안부, 저녁 안부

두 번의 전화 인사를 드렸다.


마음이 두 배로 따뜻해진 햇살 가득한 5월이다.


2023.05 08.

어버이날에는 부모님 한 번더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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