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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김정현 작가
May 17. 2023
드럼의 'ㄷ'
배운다는 마음 속에는 겸손함이 저절로 생긴다.
가끔 내가 꾸는 꿈 '드러머'
쿵쿵 따따 쿵쿵따따따 따리리리, 트리리릭..
쿵~쿠웅 차라라
차라라락~~치이익...창창차아앙~~
1층계단에서부터 울려퍼지는 소리에 이끌리어 계단을 올랐다.
소리의 원점인 3층에 도착했다.
그 곳 문을 열었다.
실용 음악연습실이었다.
연습실 밖에서 들리는 드럼 소리의 간헐적 진동이
내 가슴에 동동동 부양하기 시작한다.
"와~어느 정도 연습하면 저렇게 잘 칠 수 있을까? "
신세계로 들어가는 문!
마음 속에 흠뻑 젖은 나의 드럼 사랑은 우주의 어느 시간에 멎어 있다가,
별안간 내 마음을 사로 잡더니,
새초롬히 마음 속 또아리를 금새 틀고 말았다.
내 모든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긴 생머리 여자 드러머가
박자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비트 속 박자에 맞추어 자유롭게 리듬을 타며,
긴 머릿결이 흐느적 댈 때마다 그녀는 더 아름다워 보인다.
그녀가 쥐고 있던 스틱은 새의 날개짓 보다 빠르게 북과 심벌 사이를 오가며
공명으로 화답하고, 제비뜨기 물살 가르기 신공의 몸짓이 작동 중이다.
기예에 가까운 그녀의 예술 행위는 마지막까지
창창대는 심벌과 북소리의 교감이 몇 번 공중 돌기를 하다가 끝이 났다.
나의 마음 속 탄복은 거의 신음에 가까웠다.
대학 4학년 따뜻한 봄 날 오후,
처음으로 전문 드러머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대면했다.
대학 동아리 합창 단원이던 과 선배 언니가 우연챦게 나를 데려갔던 곳이었다.
선배 언니의 지인이 그 곳 연습실을 사용하고 있었고,
그날 언니는 그분을 만나기 위해 연습실로 가는 중이었다.
도중에 언니를 만난 나는,
우연인지 필연 인지, 알 수 없는 인연의 줄에 이끌리어
언니가 가는 연습실을 쫄레 쫄레 따라가고 말았다.
30년 전 즈음, 실용 음악 연습실은 완벽한 방음과 흡음 시설이 돼 있지 않아서 일까,
1층 계단에서 부터 간헐적으로 새어 나오는 음악 소리에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흩날리는 생 머리와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스틱을 본 이후로 나는 언젠가 악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단연코 드럼이다 라고 마음 먹게 된 날이기도 하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그날 이후,
나는 드럼을 아주 잘 치는 드러머가 되어
신 들린 듯한 연주를 하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꿈을 꾸고 나면, 나도 한달음에 드럼 연주자의 꿈이 한 뼘 쯤
자라났고, 금방 이라도 드럼을 배워서 멋지게 연주할 수
있을 것 만 같기도 했다.
일종의 버킷 리스트 만들기가 한참 유행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나도 '드럼 배우기'라고 버킷리스트에 올려 놓고,
미래의 언젠가를 기약하기도 했다.
선배 언니 따라서 실용 음악 연습실 문턱을 넘은 지 17년 쯤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드럼에 대한 생각의 진전은 단 일보도 없었다.
또한
, 삶이 그리 녹록치 않아서 인지 드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일렁이지 않는
저
심연의 바다에 누워 있었다.
하얀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 바람에 하염없이
무너지던 사월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우리 동네를 지나가다가,
어느 날 처럼, 차 창가로 비췬 건물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무념무상 속,
내 눈에 들어 온 '** 실용 음악학원'이 쏘옥 들어왔다.
"아~ 이곳에 실용 음악학원이 있었던가?"
언제부터 생겼는지 알 수 없는 기억에 멈칫하다가,
생경한 풍경에 낯설기까지 하다.
"이건 분명 내가 드럼을 배워야 할 때가 된 건가? "
무심코 지나치는 풍경과 생각에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드럼의 '
ㄷ
'자도
생각나
지 않았던 지난 날이 삽시간 밀려오는 밀물처럼 와락 가슴에 안기었다.
그날, 나는 17년 전 내 가슴에 온통 울려 퍼졌던
드럼을 소환하기로 했다.
어제 지나쳤던 동네 실용 음악학원을 다음날 오전 11시 쯤 방문했다.
학원장이 나보다는 10살은 더 연배가 있어 보이는 여자 분이었다.
우연하게 학원을 발견했고,
17년 전, 묵혔던 드럼 사랑을 사알짝 내비치면서
상담을 시작했다.
악기 다루기에는 왠지 서툴것 만 같은 중년 아줌마 포스의 원장님은
의외로 웬만한 악기를 두루두루 잘 다루는 만능 엔터테이너이자, 그 학원에 제격인 보스였다.
상담은 신속히 이루어졌고, 등록은 일사천리로 마무리됐다.
일주일 중에서 내가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한 날로 조정해서,
주 3회 레슨에 요일과 시간을 정했다.
모 대학 실용 음악과에 강의를 나가는 강사 선생님께 레슨을 받기로 했다.
'드디어 나의 버킷 리스트가 실행되는 순간이다.'
가슴 설레고, 벅찬 감정!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 만으로도
그 자체가 주는 희열과 내재된 힘은 대단한 것 같다.
나이 들어서, 새로운 것을 배우기 전부터 드는 생각은
대부분 '이 나이 먹어서, 배운다고 뭐 달라지는 게 있다고..' 라는
생각이 나의 행동을 제지하고, 망설이게 하며
적정한 순간이 되어도 단행할 수 없게도 한다.
용기는 이럴 때 내는 거다라고 생각하고 진행하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시작은 그럴싸 한 동기부여로 시작했지만, 만만치 않더라.
굽은 등과 엉거주춤 한 자세 부터 교정을 받고,
처음 시작하는 비트 주법이나 스틱을 어떻게 쥐어야 하는 것이며,
가죽패드에 스틱을 칠 때 느끼는 감각을 잘 알아채야 하는 등..
기본기 연습을 거의 한 달 동안 했다.
드럼 장비가 모두 갖춰져 있는 곳을 사용할 수 있었던 시기는
가죽 패드로 박자 연습을 익히고, 악보를 보는 법을 배우고
다음으로 발에 북을 치는 연습,
발을 어떻게 바닥에 딛고 있어야 하는 등의 연습을 필연적으로 거쳐야 만
드럼장비가 모두 갖춘 자리에 착석해서 앉을 수 있었다.
일주일 동안 연습하면서, 쓰지 않던 근육들이 반란이라도 일으킨 듯,
온 몸이 뻐근하고, 요동치는 전쟁을 거쳤다.
그리고, 3개월 동안 무릎 위에 둔 가죽 패드 만 두들겼다.
연습하는 동안, 강사 선생님이 리듬감을
캐치해서
제법 잘 치고 있다는
칭찬을 들으면서 늦은 나이에도 배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드럼은 밴드 마스터처럼, 모든 악기의 리더 역할을 하는 거라서,
항상 박자 감각을 익혀서 리딩을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박자를 놓치게 되고, 결국 음악은 망해요."
라고 강사 선생님이 드럼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드럼을 배우기 전에는 미쳐 몰랐다.
드럼은 그저 베이스기타나 신디사이저의 박자만 따라
가면서,
보조 역할로 비트에 맞게 흥을 돋구워 주는 그림자로 만 생각했다.
드럼의 의외성은 '드럼이 악단의 리더라는 것!'이다.
약 5개월 정도 아주 꾸준히 열심히 학원을 다녔다.
아쉽게도 그
이후로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더 배우진 못 했다.
언젠가 한 번 쯤은 밴드와 함께 연주를 했어야 하는데 말이다.
대학 4학년 때 선배 언니 따라 우연히 구경한 실용음악연습실의 여자 드러머의
로망을 잠깐은 실행 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 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위안을 삼기도 한다.
배움에는 그 세계의 언어를 새롭게 배우고 익히는 단련의 과정이 필연적이지만,
그 세계의 루틴을 받아들이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습이 되고,
그 세계의 자유함을 누리게 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17년 전 드럼은 이제 어두컴컴한 서랍장 저 아래 칸에
면포 속 스틱 자루로 생을 마감할 것인지,
혹은 스틱 주인의 나이가 육십 즈음,
다시 태어날 것인지
, 이 모든 것은
주인의 결정에 달려 있다
.
나는 이제 다시 '드럼배워서 공연하기'로 버킷 리스트를 바꿔야 하나?
오랜만에 서랍 속 면포에 숨겨진 스틱을 보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주인님! 당신의 생각은 어디쯤에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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