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클래식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 여자중학교 2학년 1학기 초, CA라는 클럽 활동 시간이 생겼다.
문예 및 예체능 관련 과목을 특화한 교내 특별 활동이었다.
누구든 관심 분야가 있으면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개방된 프로그램이었다.
문예반, 독서반, 무용반, 합창단, 다도반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나는 합창단에 들어가 보고 싶어서, 바로 지원했다.
클럽활동 첫 수업 시간에 간단한 오디션을 거쳐서, 성부를 결정 받아
소프라노 파트의 일원이 되었다.
음치, 박치는 애초에 관심 갖지 않은 곳이기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눈빛에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순수함이 가득했다.
아이들이 음악을 좋아하고, 대부분 음악적 재능을 가진 친구들로 구성됐기에 함께 하면
없는 재능도 내게 발휘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느 정도 기량을 위한 화음의 합을 만드는데 음악적 재능은 참으로 중요한 기본 요소이다.
재능을 갖춘 주변 친구들 덕에 별 재능은 없지만, 음악 듣기를 좋아하고,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는 믿음으로 시작된 나의 생애 첫
합창단 활동은 클래식이 발아하는 인생의 거국적인 시점이 됐다.
14살 사춘기 소녀의 음악 사랑은 이렇게 싹트기 시작됐다.
합창단 지휘자 선생님은 내가 여중학교 입학한 시기에 부임한
성악 전공 남자 음악 선생님이었다.
부리부리한 눈과 큰 덩치에
이리저리 방향 잃은 뻣뻣한 검정 머릿결이 흐느적대는 키가 큰 사나이!
돌쇠 같은 우락부락한 느낌의 외모와 달리
듬직한 어깨와 숨겨진 공명으로 만들어진
목소리의 울려 퍼짐은 환상적인 그의 반전 모습이자 매력이었다.
우리들의 귓가에 살포시 전달된
그의 목소리 만으로도
여학생들의 인기를 단숨에 거머쥘 수 있는 특장 무기였다.
그렇다고 내가 선생님을 흠모하거나,
짝사랑하는 여학생들의 무리에 끼지는 않았지만,
목소리 좋고, 노래 잘 가르쳐주는 음악 선생님의 매너와 인기는 넘버원이었다.
그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그의 목소리에 반한 여학생들이 줄을 섰고,
선생님께 선물 공세도 이어졌다.
그야말로 선생님의 인기 비결은 그의
빼어난 목소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합창을 할 때,
눈의 시선은 양미간 중심에서 살짝 윗 쪽 방향을 향해서 앞 방향을 지긋이 주시한다.
가슴과 어깨는 펴고 서서 양손은 달걀을 손안에 사알짝 쥐는 듯한
모양을 만들어서 허벅지 옆 바지 라인에 사알짝 붙여 놓는다.
바른 자세에서 시작된 복식 호흡의 '발성은 이렇게'
'자세는 요렇게' 몸소 보여주시는
센스 있는 선생님의 모습은 항상 열정이 넘쳤다.
기본적인 발성 및 얼굴 표정과 입 모양 및 바른 자세,
노래 가사에 대한 스토리텔링과
선생님의 빛나는 위트에 클럽 활동 시간은 내 사춘기 시절의 명약이었다.
합창단 수업에서 하하하, 호호호 웃음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특별활동 시간은 참 빠르게 지나갔다.
좋아하는 동요, 가곡, 외국 번안곡, 클래식곡 및 성가곡, 합창곡을 두루 배우면서,
즐겁게 부를 수 있는 시간이 마냥 좋았다.
일주일에 약 두 세 시간 정도 연습으로 뭐 얼마나 큰 발전이 있었겠냐고 할 수 있지만,
한 학기 정도를 마치고 나니, 기대할 만한 결과가 있었다.
그 해 전국 중고교 합창대회 지역 예선전은
9월에 있었다.
우리 합창단은 지역 예선대회에서
1위라는 기염을 토해냈다.
마침내 10월에 있을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게 되었다.
도저히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이런 경사스러운 일을
공동체의 하나 된 아름다운 화음으로 빚어낸
합창단의 결실에 모두가 감격의 시간을 맞이했다.
이제 본선을 앞두고 우리는 대회에 대한 설렘 보다는
두려움이 앞서 있었다.
이런 우리의 우려를 불식시켜 주는 용기의 발로는
오롯이 음악 선생님의 열정에서 시작되었다.
대회가 가까워 질수록 주말 시간에도 곡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본선 무대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치뤄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 모두는 정말 꿈 같은 일을 이루고 있음을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예감했다.
본선 대회 2주일 전 쯤,
우리들은 예쁜 단복을 받아 보았다.
하늘하늘 부드러운 화이트 블라우스는 목 리본 모양 매듭으로 더 우아해 보인다.
거기에 코발트 블루의 하이디 원피스는 단아함과
청초함과 청순함으로 우리를 돋보여 주기에 충분했다.
본선을 앞 둔 한 달 기간은 거의 매일 방과 후 몇 시간 씩 맹연습을 해야 했다.
선생님의 열정과 합창단원의 의지가 결합한
공동체의 시간은
오로지 아름다운 노래로 채워졌다.
대회 전날에는 무대를 들고 나는 기본적인
연습 및 자세, 시선을 어디로 고정할 지,
입 모양과 손동작, 입 퇴장시
걸음 하나에서 부터 무대 매너에 관련한
모두를 숙지했다.
결전의 날! 본선 대회 날이 밝았다.
저녁 7시부터 시작된 합창대회.
우리는 그 날 오후 4시 쯤 대회 장소에 도착했다.
준비된 김밥과 음료로 저녁을 함께 먹고,
리허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세종문회회관 대극장 무대에 서다.
10여개의 중고교 팀이 대결에 나선 무대는
경쟁이라기 보다는 지난 수 개월 동안 화음을
만들어서 아름다운 음악을 선물로 준비해서 객석에
모인 관객들에게 합창으로 선물하는 시간이라는게 더 어울렸다.
60 여명의 단원과 함께 한 시간. 약 3곡을 부르면서 지휘자와 하나가 된 우리.
10여 분 동안 무대에서 보낸 시간이 내 인생의
무대에서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내게 가슴을 뛰게 한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
인간의 소리가 화음이 될 때의 아름다움의 극치가 될 수 있다는 믿음.
그 날이 내 음악 사랑의 도화선이 되었다.
오로지 나의 능력 만으로 혼자 설 수 있는 무대가 아니었고,
혼자였다면 무대 울렁증으로 감당되지도 않았을
무대임이 분명한데, 60명 단원이 하나처럼 함께 한
힘은 내게 대단한 위력과 위로를 안겨다 준 사건이기도 하다.
그 시절을 뒤로, 20년 쯤 지났던 어느날,
내게 합창의 아름다움을 선물해 주신 음악 선생님의 소식이 몹시 궁금했다.
선생님의 근무지를 찾기 위해 교육청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198*년 모 여 중학교 제자였던 사실을 밝히고
선생님의 존함을 얘기하니,
몇 분후에 바로 선생님의 근무지를 알려 주었다.
(요즘은 개인 신상정보라는 민감한 부분과 프라이버시에 관한 이유 등으로 절차가 복잡할 수도 있는데, 그 당시에는 유선 상의 요청에도 가능했었다. )
연락처를 받아 든 나는 음악 선생님께 바로 전화드렸다.
수화기 저 너머에 또렷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중 시절 그 때 그 목소리 그대로다.
선생님의 목소리 만 들었을 뿐인데, 감격스러웠다.
나는 당시 여중학교 2학년 생이 된 기분으로 선생님과의 대화를 시작했고,
여전히 멋진 목소리 소유자인 선생님이 자신의 최근소식까지 모두를 알려주신다.
그때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계시는지와 추억의 합창단 시절을 기억하고 계시는지도 여쮰다.
선생님은 그 시절을 어제의 일처럼 읊으신다.
60명 중에 한 명이었던 나를 기억해 주신 것도 감사하고, 감개무량했다.
이렇게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열정 가득 후학을 가르치시는 선생님이 존경스러웠다.
모 고등학교 교감 선생님이 되셨고,
여전히 왕성한 음악 활동 중이셨다.
가끔 합창 대회나 동요제 심사 위원으로도 TV에 모습을 뵙기도 했다.
수화기 너머로 지난 시절의 추억을 쓸어 담으면서
언제 꼭 선생님을 찾아뵙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아직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있다.
선생님 덕분에 무대 울렁증도 없어졌고,
클래식 음악도 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지 못했지만,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만난 깊은 인연으로
아름다운 소리와 음악을 들을 때면,
그 시절 음악선생님과 합창단원의 하모니를 떠 올리곤 한다.
내 기억의 심연을 맴도는 합창단의 무대는
무대울렁증을 넘어 선 소녀가 우뚝 서 있곤 한다.
내게 클래식 사랑 원천의
첫째는
여 중학교 2학년 합창 단원이었던 것과
둘째는 목소리 좋은 남편이
옆에 있는 것이다.
목소리 좋은 남편!
그는 무대 울렁증을 넘어 선 성악가 청년이었다.
미국 유학 시절 콩쿨에 나가 입상을 하면서,
입선 상금과 카네기 홀 독창회를 개최할 수 있는 특권을 거머쥐었다.
그야말로 그는 무대 울렁증을 넘어선 소녀에게 신화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의 인생에서 클래식은 그에게 전부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내게 자주 같은 말을 반복한다.
"당신은 나의 전부야"
이런 거짓말 같은 참말을 믿으며 25년 가까이 그와 동지로 살아가고 있다.
거짓말이어도 좋다.
그 말을 들으며 오늘도 나는 그의 천사가 되어
열심히 날개짓 중이다.
앤드류 매리너(클라리넷)와 네빌 마리너(지휘-Academy od Saint Martin in the Fields) 부자 연주~~ 베버 클라리넷 협주곡 No.1&2 중에서
내게 클래식은 늘 진행형이다.
삶과 사랑이 진행형인 것 처럼~~~
2024.03. 27. 무대울렁증을 넘은 소년 옆에 소녀가 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