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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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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담킴 Dec 13. 2017

육아 1년 맺음말

육아휴직 및 복직 적응기간을 마치며.

약 1년의 육아를 경험하며 느꼈던. 하지만 미처 긴 글이 되지 못한. 이런저런 짧은 소회들을 정리하여 올려본다.



# 오만하지 않게


흔치 않은(동시에 매우 고된) 경험을 하게 되면, 어쩔수 없이 우쭐거리는 마음이 생겨나는가 보다. 예를 들어 군대가 그렇고, 예를 들어 출산과 육아가 그렇다. 몸소 해낸 그 경험 하나만을 근거삼아 다들 모인 자리에서 뭐라도 아는 양 뭐라도 되는 양 떠드는 누군가를 마음 깊이 미워한 적 있으면서, 어느샌가 내가 딱 그런 사람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한때 매우 부끄러웠다. 그래서 낳아보니 어떻고, 키워보니 어떻고, 하는 말들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고 싶어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구업 짓지 말라’는 불교 경전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조용히 입을 다문다. 다른 게 꼰대가 아니니 말이다.


주변 친구들에 비해 일찍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긴 하지만, 이 길이 유일무이한 길이라고 결코 생각지 않는다. 혼자만의 인생을 멋지게 꾸려나가는 친구들의 길도, 결혼 후 둘만의 시간을 즐기는 친구들의 길도 마음 깊이 ‘리스펙’한다. 내가 가는 이 길은 나만 가본 길이지만, 동시에 이 길을 제외한 모든 길들이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이라는 걸 늘 새기면서 오만하지 않게 살아야겠다고 새삼 다짐한다.



# 격동의 9개월


9개월의 굵고 짧은 육아휴직기간은 100% ‘타인을 위한 삶’이었다. 이런 삶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며 깨닫게 되었다. 단순하게는 먹고 자고 싸고 씻는 일부터 시작해서 나아가서는 집중의 대상이랄지 생활의 0순위 같은 것들이 완전히 타인을 향해 있는, 실로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믿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아이를 타인이라고 지칭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은 주춤거려지지만, 앞으로는 더 익숙해지려 한다. 나는 나로서, 아이는 아이로서, 서로가 좀더 건강하게 존재하기 위해서.)


그 시절은 때때로 서글프기도 했고, 때때로 경이롭기도 했다. 처음 겪어보는 질감의 삶은 나의 기분을 성층권부터 나락까지 오가게 만들었다. 초반엔 그 기복을 견디게 하는 힘은 ‘투철한 책임감’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것은 ‘사랑’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양육과 책임의 대상이었던 아이가 가족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시점부터였던 것 같다. 그러므로 다시 말해야겠다. 9개월의 육아휴직기간은 ‘타인을 위한 삶’이었지만, 매일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었다. 아이와 아침마다 생이별을 해야하는 요즘은 그 때가 무척 그립다.


우리의 두 번째 겨울.


# 가장 어려웠던 일 / 가장 쉬웠던 일


누가 깨우지만 않으면 12시간 이상도 너끈히 잘 수 있던 나였다. 모든 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잠을 선택하던 나였다. 그런 내게 2시간에 한번씩 깨서 우는 신생아의 존재는 너무나 버거웠다. 찾아보니 남의 집 애들은 100일도 되기 전에 통잠을 자기 시작한다던데, 우리 애는 200일이 다 되도록 새벽마다 서너번씩 꼭 깼다. 행여나 아기가 새벽에 우는 소리를 못들을까봐, 늘 귀를 열어두고 설잠을 잤다. '에엥-'하는 조그만 소리만 들려도 몸이 벌떡 일으켜졌다. 그렇게 자면서도, 꿈에서도, 밤낮없이 젖을 물렸던 그 오랜 밤 오랜 날들! 돌이켜 떠올리기만 해도 눈이 감겨오고 하품이 나올 것만 같다. 지금은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숙면의 왕자가 되었지만.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이 딱이다.


가장 쉬웠다...기보단, 생각보다 쉽고 즐거웠던 일. 출산 전, 아기와 단 둘이 있으면 무엇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는 글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보고 육아휴직 기간에 대해 지레 겁을 먹었다. 그런데 내 정신 수준이 아기와 딱 맞아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늘 아기와 노는 시간이 진심으로 즐거웠다. 날씨가 좋은 날엔 밖에서, 날씨가 궂은 날엔 안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것 같다. 특히나 호박이는 리액션이 훌륭해서, '지금 얘가 나랑 놀아주나' 싶을 때도 종종 있었다. 북북 종이 찢는 소리만 들어도 꺄르륵 소리내어 웃던 호박이의 동영상은 아직도 종종 들여다본다.



# 평일의 몇 가지 원칙


복직을 결심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가장 신경쓰고 있는 부분은 아이와 나와의 애착관계이다. 아무래도 함께하는 절대적 시간이 줄어들다보니, 자칫하면 아이와의 관계도 이에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정한 평일의 몇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아이가 아침에 눈뜨자마자 내 얼굴을 가장 먼저 볼 수 있게 할 것. 출근직전까지 최대한 많이 교감할 것. 있는 힘껏 일찍 퇴근할 것. 퇴근 후 아이가 잠들때까지 휴대폰을 멀리 할 것. 잘 지켜지지 않는 날도 더러 있지만 아직까지는 대체로 잘 지키고 있다. 아이도 다행히 밝고 건강하고 사랑스럽게 자라고 있다.



# 땡스 투 라디오


사실 아이가 리액션의 왕자가 된 건 8개월 즈음 부터였다. 그 이전엔 내가 애써 떠들거나 노래라도 부르지 않으면 집은 적막으로 가득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안좋다는 TV나 휴대폰 영상을 틀어놓을수도 없는 일. 그래서 나는 하루종일 라디오를 들었다. 당시 나의 라디오 루틴은 다음과 같다.


7:00~9:00 김영철의 파워FM (S)

9:00~11:00 이현우의 음악앨범 (K)

11:00~12:00 박명수의 라디오쇼 (K)

12:00~14:00 김신영의 정오의 희망곡 (M)

14:00~16:00 정재형, 문희준의 즐거운 생활 (K)

16:00~18:00 붐붐파워 (S)

18:00~20:00 배철수의 음악캠프 (M)


라디오는 온종일 아이만 들여다보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노래를 들려주고, 날씨를 일러주고, 세상을 보여주는 다정하고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덕분에 나의 독박육아는 덜 외로워졌고 더 유쾌해졌다. 요즘 누가 라디오를 듣냐고들 하지만, 여전히 라디오만이 건네 줄 수 있는 위로와 따뜻함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 어떤 매체로도 대체불가능한.




# 엄마가 된 나


낯설었다. 엄마가 된 나는. 새로운 나를 스스로가 받아들이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보다 많은 상황들이 기존의 나와 엄마인 나를 대치상태로 몰아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잠 많은 나와 밤중에도 일어나서 아이를 봐야하는 나. 귀차니즘에 젖은 나와 좋은 재료로 직접 만든 이유식을 먹여야하는 나. 맥주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와 수유를 해야하는 나. 근래 애독중인 웹툰 '유미의 세포들'식으로 표현한다면, 내 머리 속에서 엄마세포와 본능세포의 대결이 시도때도 없이 벌어진달까. 그것도 아주 요란하게. 막 서로 치고 박으면서.  


그런데 놀라운건, 싸움의 승률은 엄마세포 쪽이 월등히 높았다는 것. 이건 나 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엄마가 된 나는 이런 모습이구나, 하는 어딘가 관조적인 태도 마저 생겨나면서 싸움은 현저히 줄었고 그제서야 '엄마가 된 나'의 달라진 모습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 같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영원히 몰랐을, 또 다른 버전의 나. 다음 버전은 언제 공개될지, 어떻게 생겨먹었을지, 은근히 기대되는건 왜일까. 모쪼록 내년엔 스스로가 더 단단해지고 건강해지길 소망해본다.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위해서.


<유미의 세포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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