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든 Jul 08. 2018

로또를 샀다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해보는 것

어젯밤에는 독수리 꿈을 꿨다. 배경은 서울의 우리집이었고 얼굴은 흐릿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크고 매섭게 생긴 독수리를 건네주었다. 꿈이 얼마나 실감났는지 그 독수리를 넘겨받을 때, 발톱으로 내 팔을 강하게 움켜쥐는 악력과 독수리 자체의 무게감이 대단하여 '독수리는 역시 다르구나'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순간 독수리의 주인이 된 나는 먹이를 주었고 비행 훈련을 시켰으며 그 독수리가 순식간에 푸른 하늘로 날아올라 자유롭게 나는 것을 바라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신기하게도 점이 되어 높은 하늘을 날던 독수리는 도망가지 않았고 다시 돌아와 내 팔에 앉았다. 그렇게 눈을 떴다. 그 장면들이 너무나 생생해서 잠을 깬 후에도 쉬이 잊히지 않았다. 나는 꽤 자주 꿈을 꾸는 편이지만 '내가 왜 이런 꿈을 꿨을까'하는 말도 안 되는 스토리를 가졌거나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휘발되는 꿈들이 대부분이라 해몽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뭔가 느낌이 다른 꿈들이 있고 이 꿈은 그러한 강렬한 꿈 중 하나였다. '독수리 꿈을 꾼 적이 있었나? 이렇게도 생생하게?'라는 생각에 네이버에 그 의미를 찾아보았다. 새들의 왕이라는 별명답게 독수리가 나오는 꿈은 길몽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특히 직업적이나 금전적으로 좋게 해석되는 글들이 보이니 조금 들뜨기 시작한 것이 사실. '복권이라도 사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불쑥 들어 나갈 준비를 하면서 영국에서는 처음으로, 평생 살면서 한두 번 사봤을까 한 복권을 사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사실 나는 별자리, 사주팔자, 타로, 미신 혹은 징크스 등 약간은 현실성이 부족하거나 어쩌면 끼워 맞추기 나름인 것들을 그리 믿지 않는다. 관심이 아예 없지는 않아 우연히 발견한 운세나 누가 보내준 내용을 대충 훑어는 보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금세 잊어버리기 일수다. 어렸을 때는 곧잘 믿었었다. 시험을 앞두고 머리카락을 자르면 좋지 않다고 해서 시험 전에는 미용실에 가지 않았고 밤에는 손톱이나 발톱을 깎지 않았다. 타로카드 점을 배워보고 싶어서 책을 산 적도 있으며 신문에 있었던 일별 운세란을 찾아보기도 했다. 어느 순간, 점차 관심이 사라지고 아무래도 맞는 것보다는 안 맞는 경우가 예삿일이니 믿지 않게 된 것이 당연할지도. 같은 맥락으로 복권도 마찬가지다. 성공 확률이 희박할지라도 본인의 본능과 직관을 쫓아 올인할 수 있는 이상주의자가 아닌, 나는 돌다리도 수차례 두드려 보고 건너며 혹여나 나의 계획이 잘 못 됐을 때 바로 작전을 바꿀 수 있도록 'plan B'를 준비해두는 현실주의자다. 그렇기에 현금을 건네었을 때 그에 상응하는 재화가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은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식, 복권 그리고 도박 등에 관심이 없는 이유다. 운이 좋아 한 달 월급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돈을 벌 수도 있다지만 나라면 그렇게 쓸 돈이라면 좋은 곳에서 외식을 하거나 재밌는 것을 보러 가거나 여행을 하는 것을 추구할 뿐. 그런 내가 복권을 사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나에겐 꽤나 의미 있는 사건인 것이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남자 대학생이 있었다. 대화를 하던 중 복권에 대한 이야기가 우연히 나왔는데 자신은 매주 복권을 산다고 했다. 10파운드였는지 20파운드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게 비록 5파운드일지라도 이 살인적인 생활비의 나라에서 매주 그렇게 돈을 쓴다니. '미안하지만 그건 낭비 같은데요'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본인이 떳떳하게 벌어 쓰고 싶은 곳에 돈을 쓴다는데 한 개인의 선택을 내 가치관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니 그 대신 이렇게 말했다. "물론 당첨된다면 좋겠지만 거의 그럴 확률은 희박하니 돌아오는 가치가 확실한 것,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옷을 사는 게 낫지 않나요?"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물론 그런 것은 알고 있지만 혹시나 하는 그 결과를 기다리는 기대감에 한주를 즐겁게 사는 것 같아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무엇을 하든 간에 돈과 에너지, 시간을 쓴 만큼 거두어야 한다는 굳은 철학으로 살아온 나는 적어도 손해 보는 삶을 피해왔다. 투자의 100%에 상응하지 않는 결과물을 받을지언정 아예 빈손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눈앞에 예상되는 실리에만 급급해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을 수도 있었을 기회들을 놓쳐온 것은 아니었을까. 모 아니면 도의 마인드로 너무도 불확실하고 쉽지 않으리라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중심으로 거침없이 뛰어들어 모든 것을 쏟아내 보는 것. 성공했을 때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짜릿함과 성취감을 가져다 줄 일들이 내게 있었던가라고 생각하면 어쩐지 아쉬운 중간 성적표를 받은 느낌이다. 혹시나 그런 기회가 가까운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니 내 안에 한 번도 깨우지 않았던 모험가의 모습을 찾아볼 생각이다. 어쩌면 5년 뒤, 가깝게는 1년 뒤에 나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추신: 복권 얘기로 시작했으니 그 마무리를 짓자면 정말 로또를 샀다! 홀로웨이 로드 역 옆에 있는 작은 가판대에서 용지를 하나 골라 랜덤으로 숫자를 골라주는 3 게임을 선택하고 6파운드를 지출했다(평소의 나라면 6파운드를 그렇게 쓸 바엔 샌드위치나 커피를 사 마셨겠지만). 마침 꿈을 꾼 날이 토요일이고 로또의 추첨일이 수요일 아니면 토요일이라 모든 상황이 너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이건 정말 뭔가 큰일이 터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밤에 집에 돌아와 설레는 마음으로 결과를 확인했으나 역시나. 꿈보다 해몽이라고 독수리는 로또의 행운과 함께 돌아오지 않았다. 아쉬운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개인의 취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