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sun AN Mar 07. 2019

기다림과 책임감으로 지은 '책 농사'

열화당 이기웅 대표 인터뷰 

예술과 기획을 업으로 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잡지를 내기 시작한지 2년이 넘으면서 어느샌가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이 나의 일을 설명하는데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잡지를 내게 된 것은 사실 어떤 큰 사명보다는 지극히 취향의 문제가 더해진 자연스러운 선택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었지만, 글이라는 것은 그리고 책이라는 것은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가벼울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이 잡지를 이렇게 만들어가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일까', '잘하고 있는 것일까' 

어느새 이러한 고민이 내 마음을 조금식 잠식하고 있을 때, 열화당 대표님과의 시간은 여러모로 울림이 있었다



열화당 이기웅 대표 인터뷰 

기다림과 책임감으로 지은 '책 농사' 


“건축은 인간에의 찬가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 굴러가고 있는 나를 다시 끌고 가기 위해서는 건축가들의 많은 자기반성이 필요합니다. 내가 애걸하고 싶은 것은,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끌고 가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끌고 가는 것은 문화가 끌고 가는 것이지 문명이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깊은 친착입니다.”

<김중업 다이얼로그> 중, 열화당     


<김중업 다이얼로그>의 책 앞머리에 적힌 김중업 건축가의 메시지이다. 건축 뿐 아니라, 문화예술을 다루는 대부분의 일에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 다시 단어 하나하나를 되새겨 읽어 보았다. 특히 집을 짓는 일과 책을 펴는 일은 닮아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건축처럼, 책은 삶에 대한 위대함을 담고 있다. 좋은 건축물에는 예술과 질서가 공존하듯이 좋은 책에도 예술과 질서가 있다. 어느 건축가의 책을 보며 출판인의 이야기가 떠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흔치 않은 선택이었다. 많은 이들이 미술 전문 출판사는 살아남기 어려울 거라 했다. 이기웅 대표는 1971년 출판사 <열화당>을 열어 전통문화와 예술분야의 서적을 만들어왔다. ‘미술문고’와 ‘미술선서’를 펴면서 미술 전문 출판사의 토대를 다졌고, 이후 ‘한국의 굿’, ‘한국의 고궁’, ‘한국 기층문화의 탐구’, ‘한국의 탈놀이’, ‘교양한국문화사’, ‘한국문화예술총서’  등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미술과 전통예술에 대한 가치인식이 높지 않고, 관련 분야의 전문 책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었던 때부터 우리의 예술을 꾸준하게 다뤄 출판 뿐 아니라 문화예술에 대한 가치를 높이는데도 큰 몫을 했다.      


그는 지금까지도 원형이 잘 보존되어 아름다운 우리 전통가옥으로 손꼽히는 강릉 선교장(船橋莊)에서 자랐다. <열화당>에서 선교장, 명재고택 등 우리 집의 책을 펴낸 것은 그가 자란 집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의 5대조인 오은(鰲隱) 이후(李厚) 선생은 그 공간을 거주의 공간으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도서관과 같은 책과 예술을 전하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그 공간의 이름이 ‘열화당’이었다. 중국의 시인 도연명이 관직을 지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읊은 시 ‘귀거래사’ 중 친척 이웃들과 기쁘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열친척지정화(悅親戚之情話)’ 글귀의 앞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딴 것이었다. 선교장에서 가까운 이웃들과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정신이 담겨있다.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함부로 없애면 안 된다 생각해요. 선대가 만든 것을 소홀히 하지 않고, 이 가치를 이어가고 싶었어요. 처음 출판사 이름을 지었을 때만 해도 한글 전용 표기가 시작할 때여서 이 이름을 인정받지 못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잘 지었다, 대단한 이름이다 평가를 받았어요. 무언가를 새롭게 만드는 것 보다 지키는 것, 수성이 얼마나 어려운지. 오랜 시간을 지켜서 열화당의 뜻을 발견하도록 하고, 이어갈 수 있어서 뿌듯해요. 열화당이 가지고 있는 이름의 에너지로 이렇게 이어올 수 있었어요. 전 이름에 에너지가 있다고 믿고, 언어가 함유하는 힘이 있다고 믿어요.”


선교장에 있던 열화당은 그 당시의 출판사이자 도서관이었다. 장서들을 쌓아놓고 책을 보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책을 만들기도 하는 곳이었다. “지금은 판권이 어떠하네, 누가 편집인이고 마케터네 하며 여러 부속이 많지만 그 시절엔 ‘어느 해, 어느 계절에 나왔다’ 정도로 기록하고 책을 냈어요. 그 당시 무슨 출판사가 있었겠냐 하지만 부속에 사로잡히지 않고 핵심을 보면 시간을 거슬러 작은 역사도 알 수 있어요.” 선교장 열화당에서의 시간은 그가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었고, 예술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름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28살에 냈던 ‘열화집’이라는 시집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쁜 이야기를 모은 시집이라는 의미로 시집을 낸 적이 있었어요. 미당 서정주 선생이 서문을 적어줬었죠. 사실 그당시에 쓴 글을 보면서 왜 이렇게 멋을 부리려 했는지 부끄러워요. 그래서 얘기를 잘 안하는데, 미당 서정주 선생이 서문도 적어줬었어요. 또 ROTC 시절에 만난 사단장의 가르침에 감동해서 자서전을 낸 적도 있었죠. 그 분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고전이었어요. 고전의 이야기를 인용한 말들이 많았는데, 고전의 정신이 느껴졌죠. 이때도 언어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런 글들을 통해서 우리말을 지키고자 했어요.”      


열화당이 운영하고 있는 책 박물관에는 열화당의 도서를 비롯하여 국내외에서 발간된 예술 서적이 분야별로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고전부터 전통예술, 현대 디자인까지 폭 넓은 장르를 다룬다. 또한 예술 작품 전시가 함께 진행된다. 가구 작품부터 미술 작품, 디자인 작품 등 책과 예술의 어울림이 자연스럽다. 

“문화가 다 통섭되고 있습니다. 한옥, 한복, 한식, 국악. 이런 문화들이 전부 어울려서 존재하는 것이지, 분리해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당시의 한옥의 원천을 보려면 한옥과 더불어 한복과 한식을 봐야 하죠. 무형과 유형도 함께 존재해야 하는 것이에요. 유형 속에 무형이 숨어 함께 하는 것이죠. 이런 것들을 모두 분리하면 의미를 잃게 되요. 이런 통합의 시각으로 문화를 바라봐야 해요.” 


국립무형유산원이 구성한 무형유산 정책 전반에 대한 자문기구인 ‘무형유산 창조협력위원회’의 위원장이었던 그는 공동체 단위에서 해야 할 일과 민간의 전문가가 해야 할 일은 구별되어 있음을 강조했다. 동시에 전통을 기억하는 것은 정책자들의 몫이 크고, 공동체 단위에서 해야 할 일이라 하였다. 

“우리 전통을 이해하기 위해 오늘을 재현하는 문제와 원천을 지키는 문제를 별개의 문제로 바라봐야 합니다. 지금 시대에 맞는 한옥의 모습과 전통 그대로를 따르는 한옥은 다를 수밖에 없죠. 이런 것들을 모두 하나의 시각으로만 통일시키려하면 싸움만 나요.”     


사실 그를 인터뷰 하게 된 것은 전통문화와 고건축이라는 연결고리도 있지만 책을 만드는 곳으로써, 문화예술을 다루는 곳으로써 한 길을 걸어온 상징적 인물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50년 동안 책을 만들어온 이에게 책은 어떤 의미인지, 책을 만드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증으로 귀를 기울였다. 

“열화당이 가지고 있는 소명에 대해서 매일 아침 기도하듯 리마인드 하곤 합니다. ‘과연 내가 해도 되는가’, ‘젊은 세대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가’ 가다듬고 가다듬어서 말하기 위해서 항상 다시 생각하곤 해요. 시간도 귀하고, 종이도 귀한데 귀한 시간과 종이를 써서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 안 되니 언제나 긴장감을 갖고 있어요.” 언어에 대한 긴장감을 이야기하는 그의 말 속에 지금의 시대에 책이 갖는 역할과 힘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출판이라고 하는 것은 농사와 같습니다. 5년에 한번 풍년이 드는 농사가 있어요. 그만큼 기다려야 하고, 이겨낼 수 있는 자 만이 책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선택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선택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내 인생의 오랜 숙제였습니다. 책 농사야 말로 이런 선택에 지침을 주는 위대한 힘을 담아야 합니다.” 담백한 말 속에서 그에게도 풍작을 이루기까지 여러 고난과 역경이 있었음을 헤아린다.      



파주 출판도시는 이러한 말이 주는 가치와 책의 가치를 이어 좋은 책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책을 농사짓는 도시’, ‘책의 농장’을 정체성으로 삼아 만들어졌다. 출판도시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균형을 이루며 성장의 동력이 된 곳이다. 출판도시의 개념은 건축가 승효상과 영국 건축가 프로리안 베이겔(Florian Beigel) 만들었다. 이들은 출판단지를 계획하며 선교장에서 머물기도 하였다. 한옥 이야기를 하고, 한식을 함께 즐기며 도시 자체를 한국적 풍토에 맞도록 구성하였다. 서구적인 분위기로 연출이 되었지만 사이니지 하나에서도 한국의 정서를 내포할 수 있도록 만들려 노력했다. 열화당의 사옥은 모델하우스 개념으로 시범 건축한 건물이다. 선교장의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어 한옥의 지붕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 뿐만 아니라 주변의 환경을 최대한 살리고 기존 경관을 부각시킬 수 있는 건축물을 짓기 위해 건축가와 설계자들이 노력한 결과 다양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파주출판도시를 이끌어 온 이기웅 대표는 ‘영혼 도서관’을 추진하고 있다. ‘영혼 도서관’은 그의 생에 대한 따뜻한 관점과 그가 평생 해온 기록이라는 업이 만나는 지점이다. 

“영혼 도서관을 짓는 게 내가 짓는 매듭과 같은 것이라 생각해요. 누구나 자신의 삶을 기록할 수 있는 곳이고, 그 기록을 통해 기억을 만드는 곳이에요. 가장 중요한 기록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기록되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기록하고 이를 책을 통해 보존하고자 합니다.” 

기억의 창고가 풍부한 사람들을 만날 때 즐겁다는 그는 그 기억을 함께 나눌 사람들과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다.



안유선

curator@hanexpo.co.kr


ⓒ월간한옥 

사진과 글의 저작권은 월간한옥에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흙과 불이 예술이 될 수 있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