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나의 전성기
동네 카페.
노트에 열심히 펜을 끄적여본다.
홀로 고독을 즐기면서 거창한 근미래를 계획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딸깍 딸깍.
타닥 타 다다닥.
드르르륵 드르르륵.
펜 딸각이는 소리, 타자 치는 소리, 커피콩 가는 소리.
꽤나 조용한 카페에 소음이라면 소음인 것들이 들린다. 내 자리 바로 건너편의 남자는 양반다리를 하며 열심히 책을 읽다 턱을 괴고 졸기 시작했다. 적당히 생겨서 거북하진 않다. 왼쪽 테이블의 여자는 공부하는 듯하다가 신발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오른쪽 테이블에는 어린 남자 세명이 모여 공부를 하는 듯했다. 역시 함께 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인가. 이내 조용한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어렴풋한 대화 속에 '과제' 란 말을 들었다. 대학생인가 보다. 직장인인지 대학생인지 취준생인지 모를 어중간한 나이의 사람들이 나름 진중한 표정들을 지으며 무언가 열심히다.
나도 다시 노트에 끄적이기 시작한다.
딸깍 딸깍.
타닥 타 다다닥.
드르르륵 드르르륵.
올초 나는 무척 설레었다. 왠지 모를 일들로 가득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소하게 준비하던 작업도 있었고 연차가 쌓여 10년이라는 기념비적인 해이기도 해서 올해는 근사한 무언가를 나에게 줘야지 하는 다짐도 있었다.
빠그라졌다. 계획들이 다 빠그라졌다.
아... 또 등 어깨가 결리고 저려온다. 또 시작이네.
빌어먹을 목디스크.
올해에 의미부여를 해서였을까.
목디스크 때문일까. 코로나 때문일까. 회사 때문일까. 결국 나 때문일까.
잠시 가방에 파스를 꺼내 두장을 붙인다. 파스 냄새가 익숙하다. 껌 씹는 느낌이다. 되는 일이 없다.
다시 펜을 들어 끄적여본다.
딸깍 딸깍.
타닥 타 다다닥.
드르르륵 드르르륵.
나의 시간이 멈췄다.
밖의 날씨도 멈춘 것 같다. 다른 곳들은 장마가 시작이라는데 밖을 보니 여전히 무더위다.
허만하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제목이 생각난다.
고등학교 다닐 시절 비가 오는 날이면 문학담당인 담임은 수업 중 내리는 비를 보며 제목을 종종 읊어주었다. 의미는 알 순 없었으나 그때부터 뇌리에 박힌 문장이다.
수직으로 서서 비가 죽는다.
비가 계속 내린다.
살아서 또 죽으면 또 살아서 또 죽는다.
현역이구나.
한창 파릇파릇한 전성기.
내리는 비를 맞고 함께 뛰면 좋겠구나.
비나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