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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차 Oct 26. 2019

소셜 디스턴스, 적당한 거리감

송곳 같은 여자. 당신과 나의 이야기

[Instagram] lacha_studio



하나. 그녀 이야기


"오늘이 생일이시네요. 축하드려요! 잘 지내셨어요? 

요즘 너무 보기 좋아 보여요. 애들은 잘 지내요?"

"네 잘 지내요. 고마워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와 짧은 대화 속에는 축하와 안부가 담겨있었다.

문자로 나누는 안부의 한계인 걸까. 난 그 문자 속에 그녀의 생각을 계속 시뮬레이션 하기 시작했다.


'뭐야. 얘 결혼하나? 뜬금없이 연락하는 거지?'

'나 보란 듯이 잘 살고 있어. 왜 이제 와서 친한 척이야?' 

'바쁜데 답장은 해야겠고..'


머릿속이 바빠지면서 난 금세 시들해졌다.


예전의 그녀는 감수성이 풍부하며 소신이 강한 사람이었다.

감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싫은 소리도 잘할 줄 아는 멋있는 사람이었다.

난 그런 그녀가 어른 같아 보였고 그래서인지 조금 어려웠다.

짧은 대화 속 그녀는 왠지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아 보였다.

푼수같이 호들갑 떨던 나는 서둘러 마무리 인사를 했다.

예전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자니 나의 추측은 더욱 확신이 되었고 그녀가 더 어려워졌다.


내가 불편하구나.




둘. 내 이야기


" 유진!

 그것보다는 이 색이 좋지 않을까. A, B, C 중에 이게 더 어울려 보이는데?

 지금 이 버전에서 수정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내 생각은 그래. 

 업데이트되면 첨부해서 보내주세요~"


쾌활한 성격의 그녀는 비슷한 또래이다.

예전에 같이 일 할 기회가 생겨 적당히 인사만 하는 사이에서 점차 친숙해졌다.

그런 그녀가 은근슬쩍 말을 놓는다.

상관없다. 난 그리 보수적인 사람이 아닌 요즘 사람이니까!

근데 자꾸 거슬린다.

그녀가 내 영역을 자꾸 건드리는 것 만 같다. 

겉으로 자유롭게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객관화시키고 있다. 

친근함을 무기로 수정사항을 술술 이야기하고 있다. 거기다가 공손함을 방패 삼아 반격을 막고 있다.

'친근함' 아이템은 경계 방어벽을 무너뜨리는 힘이 있다. 보안 해제된 상태에서 공격을 받은 것이다.


'비상이다! 저 여자를 조심해. 자칫 말릴 수 있겠어. 웃으면서 조종하는 능력이 있어!

더 이상 벽이 무너지면 안 돼! 각자 자리에서 경계태세를 갖추도록!'


온몸의 촉이 곤두섰다. 

웃으며 얘기했지만 난 더 이상 그녀를 순수한 마음으로 대할 수가 없었다. 


불편하다.



내가 그녀에게 느끼는 거리감.

그녀가 내게 느끼는 거리감.

돌고 도는 이것이 어른의 인간관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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