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유 Nov 24. 2023

일본 미술관 테마 기행 3편

DIC가와무라 미술관-2 / <로스코관> 만으로도 갈 가치가 있다. 

'빛의 예술가'라고 불리는 화가는 많다. 빛은 오랜 시간 화가들이 작품 속에서 구현하고 활용하고자 했던 주제이자 도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렘브란트의 빛은 그만이 할 수 있었던 바로 그 방식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렘브란트가 그린 빛에 대한 표현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가 그린 빛은 '인간 영혼의 빛'이었다는 표현이다. 그만큼 그의 작품에서는 빛과 어둠의 대비가 작품 속 인물의 깊은 곳에 숨겨진 인품을 드러낸다. 그의 인물 작품을 가능한 많이 보고 싶은 이유 중에 하나도 바로 이것이다.


그런 렘브란트의 작품을 먼 유럽이나 미국에 가지 않고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거기다가 이 작품만을 위한 (물론 작기는 하지만) 독방이라니...! 그 독방에 나만 있다니...! 세상에 렘브란트의 작품을 내가 독점하고 있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초상화 속 그는 40대 중반 정도 된 걸까. 예전에는 사람들이 일찍 팍삭팍삭 늙었으니(?) 의외로 30대 후반일 수도 있겠다. 그가 입고 있는 옷과 모자 모두 흰색과 검은색의 깔끔한 색 조합이지만, 섬세한 디자인의 레이스 목카라와 보드라운 촉감이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구현된 옷에서 말 그대로 부티가 난다.


그 또한 렘브란트의 주 고객이었던 17세기 초 암스테르담의 부유한 부르주아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온화한 빛이 화면 왼편에서 그의 얼굴과 레이스 위로 잔잔히 흩어진다. 깊은 검은 빛깔의 눈동자와 단정한 입의 표정에서 그의 성격이 엿보인다. 


400여 년 전 이 작품을 주문할 때 그는 자신의 초상화를 이렇게 오랫동안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보게 될 줄 전혀 짐작하지 못했겠지.  삶에서 부와 명예를 쌓아가고 있던, 단단한 자신감을 표출하는 그와 조용히 눈을 맞춰본다. 부드럽고 따뜻한 빛으로 인간의 심연을 이렇게 잘 표현해냈다니, 40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 초상화다. 


이후 일본 미술관 기행을 하는 동안 가장 만족감을 주었던 부분이 바로 이점이었다. 아주 고요히, 나 홀로 작품과 독대할 수 있다는 점. 더 유명하고, 더 걸작으로 많이 칭송받고, 더 많은 수의 좋은 작품들은 사실 유럽에 가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럽의 유명한 대부분의 미술관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그 작품을 보기 위해 연중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모네의 수련 작품만을 위해 설계되었고 또 압도적인 규모와 작품 수로 가장 아름답게 전시된, 그래서 수련 작품을 가장 풍성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이론적으로는 아마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일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직접 갔을 때 나는 기대했던 만큼 작품을 만끽할 수 없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방 안에 가득했다. 그래서 어느 각도에서도 넓은 방을 품듯이 둘러싼 아름다운 작품들을 한눈에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소음도 많아서 정신이 없었다. 나와 모두가,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 세계인들이 몰려드는 유럽의 대규모 미술관과 일본의 미술관은 기본적인 평균 관람객수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작품 보유 수나 작품의 유명도에서는 당연히 차이가 있지만, 조용하고 쾌적한 미술관에서 인파에 밀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일본 미술관 기행의 아주 강력한 장점이었다.

그리고 같은 의미에서의 깊은 감상은 DIC 가와무라 미술관이 자랑하는 <로스코 관>에서도 이어졌다. 


Mark Rothko


마크 로스코는 영혼을 울리는 예술을 위해 온 생애를 바쳤다. 정말로 자신의 삶을 예술을 위한 제물로 바친 것처럼 느껴질 만큼, 그는 평생을 치열한 예술혼으로 분투했고 결국 안타까운 자살로 생이 마무리되었다. 예술의 숭고함을 종교처럼 믿고 있던 그의 예술관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건을 꼽자면 단연 <시그램 빌딩 사건> 일 것이다.

뉴욕의 시그램 빌딩


초기 뉴욕이 발전해 가던 시기. 그 마천루 중에 하나인 시그램 빌딩의 고급 레스토랑 벽면을 모두 장식하는 대형 작품 연작의 주문이었다. 현재로 따지면 2억이 훨씬 넘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의 커미션이었기에,  50대가 되도록 예술만을 쫓았던 가난한 예술가의 예술을 이제 막 세상이 알아주는 의미 있는 징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순수하게 예술의 힘을 믿었다. 자신의 작품이 레스토랑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어루만져 주고 공명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가 목격한 곳은 자본주의의 견고한 요새 같은 그 장소에서 자신의 작품들이 그저 비싼 음식값에 걸맞은 예쁜 벽화로 전락한 현실이었다.


이를 견딜 수 없었던 그는 열심히 돈을 모아 후에 자신을 작품값을 그대로 되돌려주고 계약을 해지해 작품들을 찾아왔다. 바로 그 벽화들을 DIC가와무라 미술관이 사들인 것이다.


사진 촬영이 불가한 관계로, Tate Modern의 작품 사진 참조


어두운 조명아래, 암갈색과 어두운 적색으로만 이루어진 작품들이 벽을 둘러선 채 우리를 내려다본다. 우리에게 생각하기를, 더 깊고 진하게 느끼기를, 자신들을 솔직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바라봐주기를 요구한다. 어쩐지 조금 숨이 막혀오는 기분이다. 


사실 <로스코 관>에 처음 들어가는 순간 느꼈다. 아, 이건 절대로 자본주의의 끝판왕인 레스토랑에는 어울리지 않았을 그림들이다ㅎㅎㅎ그만큼 무겁다. 밝은 색감의 로스코의 작품도 많이 보았었다. 밝은 그의 작품들을 바라보면 파스텔 색의 구름들에 둘러싸인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달랐다. 어둡고 깊었다. 물속으로 끌어내려지는 듯이 침잠하는 기분, 내 안에 가장 어두운 부분이 건드려지는 기분. 그 어두운 갤러리 안에서 나는 홀로 작품들이 내뿜는 에너지를 오롯이 빨아들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 또한 그 방안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면 느낄 수 없었을 감정일 것이다. 


이렇듯 DIC 가와무라 미술관의 방문은 <렘브란트 작품 독대>와 <로스코 관>, 이 두 가지 경험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외에도 몇 가지 이 미술관만의 멋진 점이 있었는데 이는 다음 마지막 편의 글로 정리해 두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본 미술관 테마 기행 2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