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츠쿠로이 도자기
"작가님의 상처는 훌륭한 자산이에요! 화이팅!"
오랜만에 한 강의가 끝나고 한 참석자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에, 이렇게 어여쁜 말이라니.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저렇게 따뜻한 응원의 말을 해줄 수 있다니. 내가 모르는 그 분의 시간들 속에서 그분은 얼마나 차곡차곡 따뜻함을 쌓아오셨을까.
나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아니, 이건 정확한 느낌이 아니다. 내 상처는 균열에 가깝다. 상처는 둘 중에 하나다. 딱지가 앉은 뒤 잘 회복이 되거나, 혹은 곪고 썪어버려 생명을 위협한다. 하지만 내가 받은 상처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자면 둘 중 어느 상태도 아닌것만 같다. 피가 멈추지 않거나 썪어 문드러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상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 아물어서 덤덤한 흉터와 함께 회복된 상태 또한 아니다.
그저 그곳은 온전치 못한 상태로 영구적인 금이 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벌어져있는 실금 안으로 시린 바람이 계속해서 숭숭 드나드는 것을 나는 느낀다. 그 균열에 나부끼는 바람은 꽤 자주 느껴지고, 그래서 불안하고 서글프다. 혹시 이렇게 산산조각나기 직전의 상태처럼,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금이 가 있는 상태로 계속 가는 것은 아닐까.
나는 온전치 못하다.
그래서 그날 들은 그 말씀에 눈물이 찔끔날만큼 위로가 되었다. 내 상처가 훌륭한 자산이라니. 이 상처만 없다면, 나를 흉물스럽게 만드는 징그러운 금만 없앴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을 정도인데. 이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자랑스럽게 내보일만한 무엇이라니.
완전히 다른 관점이었다. 그리고 일견 맞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내가 받은 상처가 무엇인지, 그 금들이 내 삶에 어떤 무늬를 그려왔는지 정확히 들여다보려 치열하게 노력해왔다. 상담사 선생님의 말마따나 나는 나의 상처를 존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삶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할수 있게 되기도 했고, 또 끝까지 저항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히 가치있는 자산이었다.
그 분은 양 손을 힘차게 모아쥐는 포즈와 미소로 힘차게 화이팅!을 외치시면서 귀여운 농담도 덧붙이셨다.
"작가님이 아직 풀어내지 않은 상처가 아직 한참 남아있으면 좋겠어요. 그 상처를 받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작품을 좋아하게 되셨는지 더 알고 싶거든요!"
그래, 이 정도면 내 상처는 정말 훌륭한 자산이 맞을 것이다.
그 말씀을 마음에 품고 며칠을 기분 좋게 보내던 중에 책에서 한 사진을 보게 되었다.
특이한 느낌을 주는 검은 도자기였다. 전통 도자기라고 하면 보통은 아예 민무늬이거나 혹은 꽃이나 용, 아니면 반복적인 무늬가 그려져 있는 것이 정석이다. 그런데 이 도자기에서는 매우 불규칙한 선과 점의 무늬가 있어 이질적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 주변으로 실금 같은게 보이기도 한다. 일본의 킨츠쿠로이 도자기라고 한다.
킨츠쿠로이. 킨(金;금) 츠쿠로이(繕い;수선하다) 라는 말로 곧 ‘황금 이음새’ 혹은 ‘금으로 고친다'라는 뜻이 된다. 깨져서 파손된 도자기를 금가루 등을 섞은 옻칠로 수리 복원하는 일본의 전통공예기술이라고 한다. 킨츠쿠로이의 시작은 화려하지 않다. 깨진 그릇을 그냥 버릴 수 없어 붙여서라도 써야했던 빈곤한 시대의 기술이었던 것이다.
깨진 조각들을 모아 붙인다 해도 조각들의 사이에는 완전히 가루가 나버려 절대로 메울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들을 금을 섞은 접착제로 메우기
시작하면서, 깨진 부분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그 부분을 도드라진 무늬로 승화시켰다. 그 과정에서 깨진 도자기는 그만의 고유하며 독특한 무늬를 가진 예술품으로 다시 태어나고, 그 작업이 바로 킨츠쿠로이가 된 것이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균열과 상처의 아름다움. 부서지고 박살이 난 뒤에 이루어진 금빛의 재탄생.
백만 개의 킨츠쿠로이 도자기가 있다면 백만 개의 무늬가 있을것이다. 우리는 온전히 태어난 뒤에 모두 금이 가버리고 또 그것을 자신만의 접착제로 이어붙이며 살아가고 있다. 나의 상처는 훌륭한 자산이 맞고, 그것을 알아봐준 그 분에게도 빛나는 상처의 이음새가 있을것이다.
'세월이 연마한 고통에는 광채가 따르는 법이다.'
박완서 선생님의 <세상의 예쁜 것>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20대 였기에 고통의 의미를 찾기는 커녕 그 안에서 허부적거리며 숨을 겨우 쉬기에도 벅찼다. 하지만 이 문장은 오랜 시간 나를 쫓아왔고, 그래서 언젠가 한번쯤 이 아름다운 문장과 꼭 맞는 작품을 찾으면 글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짝궁이 될 작품을 찾을 것 같다.
세월로 연마된 금빛 광채가 흐르는 상처. 그건 킨츠쿠로의 도자기의 그 균열을 꼭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