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누구인가. 바로 배달의 민족이 아니던가? 나 역시 배달 음식을 먹는다. 몇 년 전까진 배달 음식 먹는 게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일명 ‘치팅데이’ 때 만 먹고 싶던 음식을 시켜 먹었다. 지금은 햄버거, 족발, 디저트 등. 음식에 자유로운 사람에겐 선택지가 많다. 많은 선택지 중, 예나 지금이나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카테고리가 있다. 바로 한식이다. 한식을 만들어 먹은 지는 얼마 안 됐다. 밥보단 빵이나 고구마, 감자를 먹거나 볶음밥이나 덮밥 같은 한 그릇 요리를 즐겨 했다. 이렇듯, 예전엔 한식보단 양식을 좋아했기 때문이고 지금은 내가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도 배달 앱을 켰다.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주문 많은 순’으로 설정 후 찬찬히 살폈다. 상위에 위치한 김치찜 가게가 눈에 띄었다. ‘얼마나 맛있길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 가게 메뉴만의 시그니처가 있었다. 삼겹살 김치찜 위에 뽀얀 순두부 한 덩이. 조용히 내 새벽 배송 장바구니에 순두부를 담았다.
김치찜은 쉽고도 어렵다. 만드는 방법은 쉽지만 맛있는 묵은지를 구하는 게 어렵다. 그 어려운 걸 엄마가 해냈으니 내 김치찜은 시작도 전에 반 이상은 성공했다. 냄비 바닥에 썬 양파를 깔고 돼지고기와 묵은지를 차례로 올린다. 계량스푼으로 설탕 한 티스푼, 다진 마늘 한 스푼, 국 간장 한 스푼, 고춧가루 한 스푼 올린다. 끓으면서 퍼지기 때문에 섞지 않아도 괜찮다. 물은 살짝 잠길 만큼 부어주는데 쌀뜨물이나 멸치 다시다 육수를 사용해도 좋다. 시중에 파는 사골 국물 사용한다면 간장 양을 줄여도 된다. 센 불로 팔팔 끓으면 뚜껑을 덮고 약한 불로 충분히 끓여 준다. 김치찜이 푹 끓여지면 오늘의 주인공 순두부를 반으로 잘라 두 덩이 살포시 얹어준다. 모양 그대로 올라가 있는 게 포인트다. 순두부를 섞지 않기 때문에 뚜껑을 덮어 끓여줘야 따뜻한 순두부를 맛볼 수 있다.
저녁에 퇴근한 친구를 불렀다. 김치찜 위에 당당히 올라간 순두부에 호기심을 보였다. 김치찜을 몇 번이고 먹어 봤지만, 순두부와 조합은 초면이었기 때문에 나 역시 기대가 됐다. 밥을 떠 국물부터 맛봤다. 전날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해장이 된다고 느낀다면 정말 맛있는 거다. 순두부는 고기와 묵은지의 존재감을 뛰어넘었다. 냉장고에 순두부가 한 팩 더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게 만들었다. 두부에 ‘순’ 한 글자 붙어 특별해졌다는 게 용했다. 친구는 안 시켜 먹고 직접 만들어 먹는 내가 더 용하다고 했다. 물론 어제도 치킨을 시켜 먹어 민족성은 변함없으나, 이날 이후 나에게 배달 앱은 쓸만한 요리 연구 서적 역할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