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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외의 Jan 22. 2022

닭 한 마리



“닭 한 마리 드셔 보셨어요?” 처음에 이 질문을 듣고 1인 1닭 해봤냐고 묻는 건가 싶었다. 긍지에 차 있는 심플한 이름. 3차 백신을 맞은 다음 날, 아픈 팔뚝을 부여잡고 긍지의 닭 한 마리를 준비하기로 했다. 준비에 앞서 친구에게 전화했다. “오늘 닭 한 마리 해줄게.” “오 백숙?” “아니 국물 있는 거. 저번에 동대문에서 먹었던 거. 닭 한 마리 알잖아.” “아 삼계탕인가?” “아니, 삼계탕이랑 달라.”


우선, 닭 한 마리를 준비한다. 생닭은 흐르는 물로 불순물을 씻어낸다. 손가락으로 닭 내장을 파내고 지방은 가위로 잘라내야 잡내가 덜하다. 나는 절단육을 사용했지만, 식당에서는 통으로 나와 가위로 숭덩숭덩 잘라 주신다. 손질된 닭은 끓는 물에 3분 정도만 데쳐준다. 겉만 익은 상태로 건져 낸 닭을 물로 살짝 헹궈준다. 한번 데친 후 끓이면 누린내가 덜하다. 다시 물을 끓이고 육수를 준비한다. 육수를 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나는 다진 마늘 한 큰술과 통후추를 10알 정도를 다시 팩에 넣어 우려냈다. 큐브로 된 치킨 스톡도 반 개만 부셔 넣었다. 끓는 육수에 닭과 감자를 넣고 팔팔 끓이다 소금으로 간해준다. 닭 육수가 충분히 우러나고 맛이 들면 썰어 둔 버섯과 알배추를 양껏 넣는다. 미리 넣으면 흐물흐물해져 맛이 덜하니 배추가 살짝 투명해질 정도만 끓여주면 된다. 그동안 중요한 할 일이 있다. 소스 만들기.


닭 한 마리의 포인트는 곁들여 먹는 소스다. 원래 양배추와 부추가 들어가지만, 구비 된 양파만을 활용했다. 먼저, 진간장 두 스푼, 식초 한 스푼, 설탕이나 매실청을 조금 넣어 간장소스를 만들어 둔다. 고춧가루 두 스푼에 닭 육수 한두 스푼을 넣어 점토처럼 되직하게 만들고 간장 소스 위에 올린다. 그 옆에 다진 마늘 반 스푼, 연 겨자는 취향껏 양 조절해 올린다.



각자의 소스를 앞에 두고 앉았다. 감칠맛 도는 육수를 맛본 뒤, 닭고기에 소스를 담가 양파와 곁들여 먹었다. 소스가 중요하다. 치킨에 치킨 무를 안 먹고 피자에 피클은 안 먹어도, 닭 한 마리에 이 소스를 안 먹어선 안 된다. 금기시하는 게 또 하나 있다. 탄수화물로 마무리를 장식하는 공통의 버릇. 칼국수 사리는 없으니 밥으로 대체 했다. 남은 육수에 밥 한 공기를 넣고 끓이다 달걀 하나를 풀어 준다. 걸쭉해진 죽을 그릇에 옮겨 담아 통깨를 으깨고 들기름도 조금 부어줬다. 담백한 죽에서 나는 들기름 향이 코를 감쌌다. 완벽한 피날레.



죽까지 만들고 먹고 기나긴 식사가 끝이 났다. 긴 시간 동안 행복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빨리 먹고 치우는 식사에 허망할 때가 많았다. 요즘은 요리하는 시간 및 식사 시간을 줄여 생산적인 일을 하거나 계발의 시간을 갖는 사람이 많다. 이해와 납득이 안 가는 게 아니다. 가치 두는 것의 차이며 나 또한 그러고 싶을 때가 많았기 때문에. 끼니를 ‘때우고’ 싶었고 식사에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은 날도 많았다. 지금처럼 요리해 먹는 행위가 나에게 의미도 재미도 없어지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아무렴 어떠한가? 의무나 강요, 강박 없이 행복을 좇는 식사라면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현재의 나는 적절한 밸런스를 찾았고 즐겁게 식사하는 방법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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