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 스웨덴에서 유학을 하는 이유
스웨덴으로 석사 유학을 가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많이들 가는 북미, 독일, 프랑스 냅두고 왜 스웨덴이야?"
1) 영어로 공부할 수 있어서
막연하게 대학원에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유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뀐 것은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시점이어서 마음이 다급했고, 그 와중에 다른 언어(독일어, 프랑스어 등)를 배워 새로이 도전해보겠다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알아보던 중에 스웨덴에서는 석사 공부를 영어로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코스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의 석사과정은 영어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영어도 유창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15년 가까이 봐왔다는 익숙함이 괜히 마음에 위안을 주는 것 같았다.
물론 공부만 영어로 할 수 있고(교재랑 수업만.. 근데 이것도 아직 개강을 안 해서 잘 모르겠다...) 공용어는 스웨덴어이기에 밖에 나가 일상생활을 하는 순간 문맹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는데.. 아니 문맹은 읽고 쓰기만 안되지만 난 읽말듣쓰 하나도 건질 수 없다.. 그래도 구글 번역기와 함께라면 샴푸와 린스는 구분해서 살 수 있다.
2) 소문이 무성한 복지국가를 경험하고 싶어서
'스웨덴'하면 '복지국가'가 저절로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학부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했기에 장애인들의 생활과 권리, 교육과 관련된 이슈들은 언제나 동기들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였고, 덕분에 선진 사례를 알아보게 되었고, 더 좋은 모델을 원하게 되었다. 학부에서 배운 선진 사례의 대표적인 예는 미국이었는데, 미국의 복지관은 '조기에 적절히 중재하지 않으면 추후에 발생하는 비용이 막대하다'라는 연구에 따라 영유아 및 학령기의 장애인들에게 양질의 의료 및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굉장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과로서의 복지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물론 양질의 교육과 서비스를 받는다는 결론은 변하지 않지만, 그 출발점이 내가 생각하는 '복지'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졌고, '국가는 국민을 위한 좋은 집이 되어야 한다'라는 이념으로 행해지는 스웨덴의 복지는 어떻게 다른지 내 몸으로 경험하고 싶었다.
물론 내가 공부하는 동안 나는 이 집에 방문한 손님이겠지만, 일주일 동안 경험한 이 집의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따듯한 사람들이었고, 나는 손님으로서의 예의를 갖추고 이 집을 방문하고자 한다.
이 외에도 스웨덴이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을 추구한다는 점, 한국에서는 잘 모를 수 있지만 IT 강국이라는 점(그래도 인터넷은 한국이 빠르다.), 혁신적인 연구를 위한 투자가 크다는 점 등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하였다.
스웨덴에 가는 이유에 대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들 했던 얘기는 '그럼 어디, 스톡홀름?' 이었다. 아니, 사실 스웨덴의 수도가 스톡홀름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그냥 막연히 수도로 가겠지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북쪽 저 끝에 간다고 하니(사실 끝은 아니다) 왜 하필이면 골라도 그 추운 곳으로 가냐는 말들이 많았다. 실은 우메오를 골랐다기보다는 먼저 내가 배우고 싶은 HCI를 먼저 고른 것인데, 이 코스를 가르치는 학교는 별로 없었고, 내 선택지에 들어온 것은 웁살라와 우메오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웁살라 대학교의 역사도 길고(1400년대에 설립되었다.) 남쪽에 있어 더 따듯(...) 해서 좋은 선택지였을 수 있지만, 우메오는 짧은 역사(1965년에 설립되었다.)가 무색해질 정도로 연구성과도 높고, 덩달아 대학과 도시의 성장률이 굉장히 높은데, 이는 실험적이고 실제적인 공부와 연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깊은 학문적인 연구보다도, 당장 내가 만났던 아이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던 나에게 더욱 끌리는 학교였고, 이렇게 우메오에서의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럼 나는 왜 저 이름도 낯선 공부가 하고 싶었던 걸까...
학부에서 4년 넘게 배운 특수교육은 내 인생에 큰 전환점이었다.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해준 공부였고, 너무나 많은 다양성과 가치, 가능성을 보게 해준 사람들을 만났고,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면서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특수교사는 차마 할 수가 없었는데, 전혀 교사로서의 그릇이 안될뿐더러, 장애학생들의 성인기 전환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자꾸만 이 아이들이 학교를 나가서 겪게 될 상황들이 눈에 밟혔고, 봉사활동을 끝내고 학교를 나오면 장애인 만나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사실이(이는 장애인들이 집 또는 시설과 학교 외에는 나올만한 곳도, 또 있다고 하더라도 그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학교 말고 바깥의 사회에서 무언갈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하였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내 결론이 머무른 곳은 컴퓨터였다. 단 하루도 인터넷 없으면 살 수 없는 시대에(정말 스웨덴 내 기숙사 방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은 공유기 설치하는 거였고, 유심을 살 때까지 답답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우리 아이들은 스마트 기기 구경도 못 해본 애들도 많았고, 있다고 한들 전화하는데 그치거나, 바르게 사용하지 못해서 나쁜 정보를 그대로 흡수하기도 하고, 온라인 윤리는 전혀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4차 산업혁명이니, 정보화 사회, 정보격차 등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우리 아이들이 빠져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고, 어쩌면 이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학교 바깥에서 무언가를 바꾸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Human-Computer Interaction. 말 그대로 사람이 어떻게 컴퓨터와 상호작용하는가이다. 이 'Human'의 범위가 성인, 그것도 사무직의 직장인에 머물러 있었던 때에서 청소년, 노인, 어린아이까지 확대되었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이 패러다임에 장애인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비록 허황된 소리라, 너 혼자 그걸 어떻게 할 거냐 힐난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무지개를 쫓는 것이 허황된 일이라 하지만 무지개가 없는 것은 아니듯,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이라 한들 그게 꿈이 아닐 수는 없다. 꿈 찾아 이곳 오로라 뜨는 곳까지 쫓아왔으니 꿈 이룰 때까지 오로라 쫓는 일은 그만둘 수 없을 것 같다.
커버 사진 출처:Carolina Romare/imagebank.swed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