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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키 Apr 07. 2018

펍(Pub)에서 성교육을 받았습니다..

예..? 여기서요..? 지금이요..?

  여러분의 마지막 성교육을 언제입니까?

   중고등학생이라면 그리 낯설지 않은 단어일 테지만.. 대학생만 되어도 성교육은 갑자기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여대였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조금 시대를 엇나가서 그런지 성교육 또는 성희롱 예방교육도 안 받은 것 같다. (받았나..? 받았나요 나의 동기 여러분..?) 받았지만 내 기억에 없다면 그때 아마 또 게임하고 있었겠지... 사실 중고등학교 때도 스마트폰 없이도 별 요량을 다해서 그 시간에 다른 짓을 일삼았다. 중학교는 남녀 공학이라고 옆 자리 짝한테 괜히 창피해했었고, 여고에서는 후끈한 살색의 이야기들로 첫 15분이 지나가면 다들 엎드려 자기 시작했다. 나도 물론 성교육을 열심히 들은 학생은 못되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리듬스타로 피처폰 번호키를 부수던 그때를..) 나는 직장인이 된 경험이 없지만 회사에 취직한 친구들에 의하면 사내 성희롱 예방교육이 있다고는 한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의 정신은 강의실 밖에 있다고 하지만..

  요즘은 미투 운동과 함께 성교육 그리고 성희롱 예방교육의 중요성이 수면 위로 오르고, 형식적이고 시간 때우기에 급급한 교육 절차에 비판이 가해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딱 그 시기에 이역만리 스웨덴에 와 있어서 스스로 성교육에 대한 필요성도 못 느끼고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성교육을 맞닥뜨린 곳은... 정말 예상치도 못한 곳이었다.



범상치 않은 DJ의 선곡

  때는 봄 학기 첫 코스의 마지막 발표날.. 우메오의 스타트업 기업들과 협력하는 팀 과제를 마무리하는 날이었다. 팀플, 그것도 목표가 같지 않은 사람들(우리 학생들은 패스가 목표였고 기업은 마케팅이 목표여서 우리의 능력치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곤 했다.)과의 팀플은 잘 진행되든 안 되든 힘들었기에 드디어 오늘은 우리가 펍에 모여야 할 날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동안 한 학기가 넘게 같이 공부했지만 단 한 번도 모인 적이 없다.. 물론 이 날도 전부 모인 것은 아니다.) 19시, 시내의 한 펍. 10명 남짓한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자리에 앉아 각자 맥주를 시키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한 지 3~40분쯤 지나자 한 여자분이 나름의 DJ석에 앉아(별건 없고 전선이 조금 많은데 의자가 있고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가 켜져 있는 아이패드뿐..)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스웨덴어로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기나긴 설명이 시작됐다. 단 세 명뿐이었던 우리 그룹의 스웨덴 애들은 해석을 해주기 시작했다. "She said she will play songs that are related to sex." 

...?????

잘못 들었나?.. 친구는 해석을 계속해나가기 시작했다. DJ가 19금 노래를 틀기 시작할 텐데 이와 동시에 문제지를 한 장 줄 예정.  그 노래들의 제목을 맞추고, 사이사이에 다른 퀴즈들을 맞추면 된다. 가장 많은 문제를 맞힌 테이블은 무료 맥주를 상품으로 타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잔에 60크로나(약 8000원 돈) 하는 맥주가 공짜라니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이어서 귀를 때리는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리한나가 부릅니다. S&M.)


문제지도 전부 스웨덴어로 되어있었지만 고맙게도(..) 스웨덴 네이티브들이 모두 해석해주고 10명이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정답을 찾기 시작했다. 대충 생각 나는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스웨덴의 동성 결혼은 언제 합법화되었는가?"

"스웨덴 사람들의 첫 성관계 연령 평균은?"

"몇 퍼센트의 사람들이 자신의 HIV 보균 사실을 속일까?"

"다음 깃발들은 어떤 성적 지향을 나타내는지 쓰시오."

"여성의 질에 삽입하여 사용하는 콘돔의 이름은?"

"실제 여성의 클리토리스의 크기는 몇 cm 일까?"

"성 중립을 가장 잘 나타내는 스웨덴어 단어는?"

(말고도 많은데 솔직히 브런치 검열에 걸릴까 봐 못 올리겠다..)

그리고 이 사이사이 수많은 19금 노래들이 토론 시간을 메워갔다. (Florida가 부릅니다. Right round.)

(근데 고등학생 때부터 느낀 거지만 19금이 영어 네이티브에겐 19금 일지 몰라도 우리는 별생각 없이 듣는데..)

세상 진지한 손들.. 분명 같은 날 오전에 발표할 때는 눈빛이 죽은 동태 같았는데..

세상 가장 민망할 것 같지만.. 모두 진지하게 그리고 낯빛 하나 안 변하고 문제를 풀어나갔다. 동공이 흔들리는 건 나뿐... 애써 흔들리는 동공을 붙잡고 아는 지식 총동원해서 분위기에 묻어갔다. 여기서 또 하나 신기했던 건... 아무도 구글링을 하지 않는다는 것.. 솔직히 그 알록달록한 검색창에 한 단어만 치면 나올 텐데, 그리고 모르는 노래가 나와도 노래 찾는 어플을 쓰지 않는다. "sound hound 있는 사람?" 찾아대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농담ㅎ일뿐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아쉬워하며 다음 노래로 넘긴다.(순수한 영혼들..)

마지막 노래가 끝난 후 모두 문제지를 바꿔치기하고 DJ의 설명과 함께 정답을 채점해나갔다. 다들 정답을 맞혀가면서 '내 말이 맞잖아' '이걸 어떻게 아냐' '새로운 거 배워가네' 등등의 여러 감탄사와 함께 DJ의 설명과 함께 성지식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열을 올렸지만 우리는 순위권에도 못 들고 퀴즈를 마무리했다. 순위권에 못 들었어도 우리 테이블은 가장 시끄러운 테이블이었는 데다가 유명한 노래마다 따라 부른 약간 정신 놓은 테이블이어서 간단한 핑거푸드 안주를 받았다. 나초칩을 먹은 그제야 스웨덴 친구에게 물어볼 정신머리가 생겼다. "오늘 무슨 특별한 날이야?"

대답은 "아니"였다. 그도 그럴게 화요일이었다. 불금도 아니고.. 불토도 아니고.. 정말 난데없는 화요일.. 친구 대답이 더 어이없었다. "그냥 손님도 많겠다 이벤트 한 거 아닐까?"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니 애기 같은 얼굴의 갓 20살 넘은 것 같은 사람부터 60대 동네 어른들이 모인 테이블, 커플이 앉은 테이블, 친구들이 둘러앉은 테이블.. 정말 남녀노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그 분위기를 즐겼던 것이 보였다. 사람들 얼굴에는 신남이 가득.. 그렇게 약 1시간 반 가량의 이벤트가 지나가고 좀 더 둘러앉아 이야기하다가 자리를 파했다.


집에 와서 침대에 누우면서 '와 아무리 오픈마인드 북유럽 스웨덴이라지만 별걸 다 경험하네'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잠을 청했지만, 다음 날이 되어서는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또는 다른 구성원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한 성교육을 본 적 있었나?'

'어떻게 성 얘기를 하는데 쑥스럽거나 묘한 리액션(유후~ 이런 거..) 없이 모두가 참여할 수 있지?'

'동성애, 성중립, 성적 지향, 소수 젠더에 대한 사회적 동의(어쩌면 학교 교육)가 어떻게 되어있길래  그 모든 걸 거리낌 없이 불특정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 공유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똑같은 이벤트를 한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나라의 뉴스를 보고 있으면.. 아직은 이런 분위기, 사회적 약속을 기대한다는 것은 비행기로 13시간 걸리는 머나먼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존의 말뿐인 '성교육'이 아닌 색다른 방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만 있어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너무 거창한 이야기라고 느껴진다면.. 이 글은 "스웨덴 펍에서 당황하지 않는 방법" 정도의 역할만 해도 충분할 것 같다.



딴소리지만 브런치 키워드 '성교육' 넣고싶은데 왜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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