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고 잔잔한 여행기
나와 동생의 여행은 그렇게 스펙타클하진 못했다. 흔히 말하는 '젊은이'의 여행이라기보다는 휴가에 가까웠다. 여행 계획도 바쁘다는 핑계로 구글맵에 핀만 꽂아두고 카톡으로 링크만 보내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답은 "미안.. 잤어..ㅠㅠ" 시차가 이렇게 무섭다..) 결국 제대로 된 계획은 우메오에 와서 하루 동안 카페에 앉아 라떼와 모카를 시켜놓고, 클라드 카카(스웨덴 전통의 초코 머드 케이크.. 꾸덕한 맛이 일품이다.)와 함께 검색 삼매경이었다. 그렇게 며칠 만에 '둘러보아야 할 곳'을 정하고 무작정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와 비행기를 탔던 이동기는 전 포스팅을 참조해주세요!)
혹자는 이 글을 보고 '아니 그 옆에 xx도 있고 oo도 있고 aa활동도 할 수 있는데..'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주로 발걸음 닿는 대로, 버스가 가는 대로 몸을 맡겼다. 겨울바람에 손가락이 삐그덕거릴 때면 적당한 카페에 앉아 Fika(스웨덴의 커피 또는 티를 달큰한 과자와 함께 '시간 내어' 마시는 문화. 일과 중에 반드시 한 번은 한다고 한다.)를 즐기고 겨울의 한적한 스톡홀름을 온몸으로 느꼈다.
이번 포스팅의 사진 또한 함께하신 사진작가님께 감사를 드리며..
스톡홀름에 도착하자마자 숙소 근처에 가니 11시 남짓한 시간이 되었다. 체크인은 세시인데.. 다른 걸 하더라도 우선 걸리적거리는 캐리어부터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숙소에 짐만 좀 맡겨달라고 하니 선뜻 맡아주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우리가 쓰는 방은 이전 투숙객이 없어 1시에도 체크인할 수 있으니 그 이후로 언제든지 오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체크인 시간을 확인한 후, 근처 빵집에 가서 브런치를 먹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베이커리였는데 베이글... 너무 맛있었다. 애플파이와 스트로베리 앤 치즈크림 머핀도.. 아직도 적응 안 되는 유리잔에 담긴 뜨거운 라떼와 함께 첫 식사, 첫 Fika를 즐겼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후 체크인하고 기차에서 못 씻은 얼굴도 좀 단장하고, 다시 사람의 몰골로 나오니 3시밖에 안되었는데 날은 어둑어둑 지고 있었다. 그래도 가로등의 예쁜 크리스마스 장식들과 함께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첫 목적지인 감라스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진만 보면... 전설이라도 얽혀있을 것 같지만.. 비 온 뒤 촉촉한 공기를 맡으며 걸으니 마음이 절로 차분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야경에 취했다. 목적 없이 가볍게 걷는 것만 해도 산책 나온 기분에 왠지 여기에서 우리가 사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선 역시 저녁! 골목을 돌아 돌아 찾은 곳은 (스웨덴 외식 물가에 비해) 제법 저렴한 가격에 조금 짰지만 맛있었던 저녁이었다. 이렇게 첫날은 저녁을 먹고 조금 더 산책할까? 하고 나서는 순간 비는 많이 오고 우산은 없고 날은 추워서 그대로 숙소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전날 밤부터 추위 속을 함께 뛰었던 서로에게 인사한 뒤 바로 잠들었다.
다음 날은 같은 풍경을 밝을 때 보자는 공동의 목표로 같은 곳을 다시 돌아보았다. 스웨덴에서 겨울을 지새며 느끼는 거지만, 좋은 날씨와 밝은 태양은 또 하나의 축복이다. (아마 여름에는 어둠이 축복이라고 염불을 외울지도 모른다..) 이미 봤던 풍경이지만, 태양광 아래에서는 색도 느낌도 그리고 감회도 새롭다. 둘째 날은 유일하게 맑은 하늘이 반겨주는 날이었어서 더욱 기억에 많이 남는 날이다.
그렇게 또 다른 감라스탄을 보고 우리는 쇠데르말름(Södermalm)으로 향했다. '스톡홀름'하면 떠오르는 그 사진을 찍기 위해서 걷고 또 걸었다. 사실 스톡홀름 시내 쪽은 꽤나 작은 편이어서 걸어서도 충분히 다닐 수 있다. 하지만.. 겨울은.. 추우니까.. 버스를 타도록 하자. 겨우 두세 정거장만에 목적지에 다다르기 때문에 좀 허무할 수 있지만 추운 날, 게다가 비 오는 날 걷기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아무튼, 우리는 다리를 건너고 알 수 없는 골목길을 따라다니다 최적의 장소를 찾았다.
오전에 비해 구름이 끼기 시작해서 엄청나게 맑은 사진은 아니지만, 물의 도시 스톡홀름을 잘 보여주는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이 곳에서의 사진을 건지기 위해 한 자리에 서있기를 몇십 분, 점점 추위가 느껴지는 탓에 우리는 포토그라피스카(Fotografiska)로 이동했다. 이곳 3층에는 전망 좋은 카페가 있는데, 이곳에서 간단한 Fika를 마치고 사진전을 둘러보았다. 사진전의 내용은 저작권의 문제가 있을까 찍지는 못했지만, 괜찮은 사진전이 많으니 어떤 전시가 있는지 홈페이지(http://fotografiska.eu/en/)에서 한번 확인 후 마음에 든다면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는 저녁으론 홍합요리와 연어 샐러드를.. 연어샐러드 시켜놓고 무시를 했는데 연어 스테이크 한쪽이 통째로 들어있어서 양도 괜찮았다. 직원에게 홍합요리와 어울리는 맥주를 추천해달라 하니 굉장히 굉장한 맥주를 추천해줬다. 맥주는 1도 모르는 내가, 300ml만 마셔도 얼굴 달아오르는 내가 맛으로 홀짝홀짝 들이킨 맥주.. 생각해보니 동생이랑 둘이 술을 먹은 적은 없어서 (둘 다 술을 별로 안 좋아하니..) 왠지 드디어 어른의 여행?을 다닌 기분이었다. 물론 이 이후로 그랜드 세일하는 화장품 매대에 가서 얼굴이 너무 빨개져서 발색을 확인할 수 없어 못 살 정도였지만.. 색다른 요리를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이곳의 홍합은 모두 스웨덴산이라고 하니.. 국내산? 홍합을 즐길 수 있다. 홍합은 탕으로 먹는 게 진리지만, 크림소스와 곁들인 요리도 제법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저녁 이후 우리는 간단히 쇼핑몰 구경을 하고 가야지 생각했는데.. 정말 '간단히'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 열어야 8시.. 우리는 8시 이후로 터덜터덜 걸어가 다시 숙소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대망의 마지막 날.. 이날은 다시 어두워져서 미스트 같은 비를 맞으며 다녔다. 안개도 아니고 비도 아닌 묘한 날씨에 스산한 기운이 돌았다. 퍼뜩 나는 꽤나 이런 날씨에 익숙해졌는데 동생은 기대한 여행에 못 미칠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나름 그 축축한 느낌의, 전형적인 겨울의 유럽 날씨를 경험하는 것 같아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 일을 안 하고 나와있으니 좋은 걸까? 그렇게 우리는 날씨를 즐기며 유르고르덴(Djurgården)으로 향했다.
유르고르덴으로 갈 때에는 트램을 탈 수도 있지만, 우리는 페리를 타기로 했다. 스톡홀름 교통카드 하나로 페리까지 탈 수 있다고 하니, 한 번쯤 타봐도 좋을 것 같다. 구글 번역기에 의하면 '아이들을 흥분시키는 배' 라는데 사실 배를 자주 타지 않았던 사람으로서 배는 언제나 설렌다. 페리 선착장에서 내리면 아바(ABBA) 뮤지엄을 바로 찾을 수 있는데, 그리고 꼭 가봐야하 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움직이고 싶어서 빠르게 스칸센으로 향했다.
스칸센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야외 박물관인데, 스웨덴의 다양한 문화와 의식주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고 근방에 사는 동물들까지 볼 수 있다... 고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너무나도 연휴기간이고 바깥은 추워서 많은 것들이 있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여행 후기들이 '스칸센은 역시 여름'이라는 평가였고 우리도 이에 동의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은 바로 스칸센 뒷문(.. 표현이 이것밖에 없다..)으로 나와 걸었던 한적한 거리들이다. 우리는 유르고르덴 성을 보러 가자며 뛰쳐나왔는데 해가 너무 빠르게 지는 데다가 배가 고파져서 이걸 계속 가야 하나..? 하는 마음에 다시 트램을 타러 노르딕 박물관 앞으로 향했다.
트램을 타러 가는 길은 해 질 녘의 묘한 분위기와 강과 야경이 어우러져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분을 들게 했다. 하늘은 회색에서 파란색, 보라색, 핑크색, 주황색을 넘나들었고 겨울 나뭇가지의 프랙탈과 하늘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그렇게 우리는 감상에 젖으며 다시 스톡홀름 중앙역으로 향했다. 크리스마스부터 새해 전까지 대대적인 세일을 해서 우리는 잠시 아이쇼핑을 즐기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은 깨나 근사한 곳에서 남은 돈을 탕진하며 먹었다. 마지막 날의 일정은 조식을 먹고 공항버스를 타는 것뿐이니 남은 돈을 쓸어버리자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여기 북유럽까지 왔는데 순록 고기는 먹어야겠다 싶어서 순록 스테이크, 그리고 정통 스웨덴 미트볼과 콩스프(이렇게 번역하니까 거의 콩국수 느낌..)를 시키고 맥주와 애플주스(.. 알쓰는 운다..)를 시켜먹었다. 한화로 거의 10만 원 돈...? 큰 지출이었지만 아끼는 사람끼리 각자의 스펙터클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서로의 새해를 응원하는 의미에서 정말 괜찮은 지출이었다. 하지만 미트볼.. 그냥 마트에서 파는 미트볼이랑 진짜 다르다.. 향이 엄청엄청 강한데 원래 향 강한걸 잘 못 먹어서 미트볼은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버렸다.. 하지만 순록 스테이크는 진짜 맛있었다. 둘 다 '질기거나 비린내가 많이 나면 어쩌지?'하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며 먹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없앴다. 스웨덴에 오신다면 꼭 한번 먹어볼 가치가 있다.
사진이나 글에 담은 것 이외에도 쇼핑도 커피타임도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지만.. 왠지 그런 것까지 다 담다가는 포스팅을 2개가 아니라 거의 4개로 나눠야 할 판이니.. 간단하게 잘 나온 사진들과 먹은 것들로 소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포스팅에서는 겨울의 스웨덴밖에 볼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겨울도 이렇게 근사한데 여름은 어떨까? 하는 기대가 있다. 여름 방학에 혼자 가볍게 가방 매고 한번 다녀와볼까 하는 생각이다. 엄청난 랜드마크가 있는 곳은 아니어도 걷고, 쉬고, 일상을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은 여행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