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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답 Sep 21. 2017

바다 매혹

무이네 한 달 살기, 8일째

일과가 비슷하다. 일어나면 오믈렛, 돼지고기 반미를 각각 하나씩 사러 나갔다 온다. 혹은 쌀국수를 먹고 반미를 하나 사 온다. 인근에 맛 좋은 반미 파는 식당을 발견한 게 행운이다. 사 온 반미에 과일을 더해 아침과 점심을 해결. 요리하지 않고 삼시 세끼를 사먹는 것도 곤욕이다.


9시부터 4시까지는 물 속에 들어가는 것 외엔 바깥 출입을 하지 않는다. 더우니까. 딱히 나갈 일도 없다. 글을 쓰다가 해리 포터를 읽다가 수영을 하거나 먹는다. 닷새째엔 무이네 와서 처음 하늘과 바다가 새파랬다. 글을 쓰다가 풍경을 버틸 수 없어서 바다로 뛰어 들었다. 


아무도 없는 바다, 물결이 사방에서 초록빛으로 부서졌다. 물빛이 비슷해서인가, <문라이트> 속 바다 장면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아이에게 처음 사랑을 보여준 사람이 그 바다 같다. 다시 오지 않을 시절에 대한 달큰한 기억, 슬프지만 그보단 따뜻한 온도다. 무이네의 바다는 오래 들어가도 오래도록 얕아서 키 작은 나로서도 바다 한복판까지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옅은 구름이 낀 날에는 한낮,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순간이 있다. 한낮 밀물 때, 파도가 마당 바로 앞까지 다가오면 바다 위에 떠 있는 호텔을 타고 있는 것 같다.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모른 채 꿈 꾸는 기분으로.


오후 4시가 넘어가면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해 나돌아다닐 만하다. 어선들이 주로 정박해 있는 Fishing Village나 해가 떨어지는 반대편 중심가 쪽으로 해변을 따라 산책한다. Fishing Village에는 관광지와는 다른 식의 사람 사는 활기가 있다. 동네 아이들은 바닷물 먹은 모래 위에서 공을 찬다. 아기와 젊은 아버지도 파도 위에 앉아 논다. 해안을 놀이터, 일터, 거실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원하는 만큼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녁은 내키는 식당에 들어가 먹는다. 집에 돌아오면 밤 수영을 하거나 해리 포터를 읽는다. 잠들기 전에는 <소프라노스>를 한 편 본다. 글 쓰는 것 빼고 다 열심히 하고 있다. 먹고 걷고 읽고 수영하는 것만으로 하루가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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