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답 Sep 26. 2017

무이네 묘 선생

무이네 한 달 살기, 13일째

닷새째 밤이었나, 바람이 유난히 거세던 밤에 테라스 문을 열었더니 고양이 한 마리가 쪼르르 들어왔다. 난입이란 게 실제에 가까운 표현이겠다. 마치 내가 약속 시간에 늦게 나타난 것처럼, 빨리 뭔가 내놓으라는 듯 쉼 없이 빼애액 댔다. 그 전날 밤에 사람은 과하고 고양이 한 마리 정도는 같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잠들었는데, 다음날에 바로 고양이가 찾아오다니! 선물 같은 녀석, 제 처지를 아는지 굉장히 뻔뻔했다.


계속 앵앵대길래 배가 고픈가 싶었다. 방에는 먹을 게 과일 뿐이고 고양이가 먹어도 괜찮은 건 바나나 뿐이래서 바나나를 드려 보았지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저 내 뒤만 울면서 따라다녔다. 얼마 후 깨달았다. 녀석이 바라는 건 손길과 애무라는 것. 잠깐이라도 몸에서 손을 떼면 또 꺅꺅... 


목걸이도 달고 있었고 당당하게 방에 들어오는 게 이 호텔이나 근방 어딘가의 누군가가 키우는 아이인 듯했다. 더럽지는 않지만 깨끗하지도 않았다. 미안하지만 너를 침대에 들여 하룻밤을 보내는 건 못하겠다 싶어서 겨우 내보냈다. 천둥 번개가 많이 치는 날이었는데 혹시 무서워하는 건 아니겠지, 기우를 하면서... 

나중에 보니 녀석은 딱히 내 방에서 자고 싶은 생각도 없었던 것 같다. 해질녁 바다 앞에 앉아 있거나 선베드에 누워 책을 읽고 있으면 녀석이 어디선가 꼭 나타났다. 자연스레 제 자리인 양 무릎 위로 폴짝 올라와서 고개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가슴까지 기어 올라와 살포시 기댈 때는 심쿵.


녀석은 그렇게 길면 20~30분 내 곁에 있다가 또 다른 투숙객들에게로 쪼르르 가버리곤 한다. 그이들에게 가서도 당연한 권리인 양 부비부비. 우습게도 처음에 그 모습을 보고 좀 섭섭했다만, 이곳에서 친구라곤 너뿐인 나의 을로서의 위치를 떠올리며 그저 제게 또 다시 와주십사 바랄 뿐이다. 


그제 밤에도 문을 열었더니 녀석이 냉큼 들어왔다. 그간 정도 들었겠다 침대 시트는 갈면 되지, 오늘은 너와 침대를 나누마 결심했다. 그런데 무릎 위에서 잠시 잠들었던 녀석은 일어나선 쪼르르 나가 버렸다. 저기, 저기 나비야? 뒤에서 불러봐도 돌아보지도 않고. 

이토록 자연스럽고 뻔뻔한 태도로 애정을 요구하는 녀석이라니. 처음엔 황당하다가 결국은 간이고 쓸개고 홀랑 내주게 되어 버린다. 물론 고양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사람은 어떻게 해도 고양이만큼 사랑스러울 수는 없으니까. 바닷가에 사는 녀석이니 당연하지만 안고서 물 가까이 다가가도 아무 두려움의 기색이 없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도 신경도 쓰지 않는다. 사람도 바다도 두렵지 않으니, 넌 세상에 무서울 게 없겠구나.


무이네의 바다에 들어가 있노라면 육지에 아직 생명체가 살기 이전의 시절, 원시의 바다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물론 그 때의 바다를 나는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지만 그냥 그렇다.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를 떠올리게 한다. 생각해보니 무이네의 바다를 설명할 때, 영화 속 바다를 곧잘 리퍼런스로 삼고 있는데 요상한 일이다. 여기는 목포 앞바다 같아, 애월 앞바다 같아 처럼 실제의 바다가 아니라, <문라이트>의, <트리 오브 라이프>의 바다 같아 라고 비유하게 된다는 게.


작가의 이전글 바다 매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