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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시형 Jul 13. 2016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처음으로 떠났던 여행,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은 순서상 맨 앞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설렘, 두려움, 희망, 기회, 용기, 경험, 실패, 가능성 등과 같은 다양한 감정과 단어들로 표현된다. 


같은 무언가를 경험해도 '처음'은 다르다.

즐겁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한다. 

서툴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하다. 때론 그 다음보다 더 잘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그 '처음'은 다음 차례로 다가오는 것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내 첫 여행이 딱 그랬다. 

스무살의 첫 여행, 국내 무전여행.


첫 무전여행, 통영 어딘가 언덕이었던 것 같다.



사실 내 첫 여행은 여행을 위한 여행은 아니었다.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한 멋진 피사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수단이 여행이었을 뿐이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내 관심사는 온통 '사진'에 쏠려있었다.

손의 감각에만 의존해 필름을 뜯어 현상통에 돌돌 끼워 넣고

주문을 외우듯 시간을 정확히 재가며 현상액을 채운 통을 흔들고

또다시 그것을 세척하고 말리고 확대기에 끼워 인화지를 태우기까지 두어 시간,

시간이 얼마간 지나야 겨우 무언가 희미하게 느껴질 정도의 어둠 속에서 만들어 내는 결과물.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 내 감각, 내 기술로 탄생하는 흑백 사진의 매력은 대단했다.

암실이라는 공간 역시 사진에 매력을 더했다. 




한 장씩 아껴 찍을때 마다 들리는 셔터소리가 좋았다. 



사진의 매력에  빠지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진이 좋았다.

모든 일이 그렇듯, 좋아하니 잘하고 싶었고 잘하려면 우선 카메라가 필요했다. 

사진전을 보러 가고, 선배들 카메라를 빌려 사진을 찍는 건 한계가 있었다. 


멋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한 여름, 화덕이 두 개나 있는 인도 레스토랑에서 하루 종일 설거지를 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한 달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생각한 한 달이 지났고 알바비가 통장에 입금됐다. 

충분한 돈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맘에 드는 필름 카메라를 사고 남대문 시장에 가서 배낭을 샀다.

침낭, 매트리스, 버너. 필요한 물건이 왜 이렇게나 많은지 돈은 계속 줄어들었다.

남아 있던 돈은 여행을 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속리산인지 지리산인지 문경이었는지 어딘가 산을 오르다 만난 계곡에서

    


그래도 난 포기할 수 없었다.

이대로 포기하기엔 멋진 사진을 찍겠다며 기대했던 시간, 땀으로 샤워해가며 버텼던 시간이 아까웠다.

결국 돈 없이 떠날 결심을 했고 두 명의 친구가 뜻을 함께 했다.



첫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첫 여행 루트


 

2002년 여름, 8월 12일.

지금은 흔들리는 기차 안이다. 저녁 6시 10분 출발..
수원, 평택, 천안 등을 지나 충주 8시 59분 도착기차이다.
출발부터 어수선했다. 도착하면 이미 어두워져서 충주 시내에서 잠자리를 구하기도 힘들텐데..
비는 내리고 암튼 닥치면 대 해결할 수 있을거라 믿고 있다. pm 6:19     

- 일기장 中



말 그대로 어수선하고 준비되지 않았던 첫 출발,

얼떨결에 시작한 무전여행.

노숙을 몇 번 하고, 마을 이장님들을 찾아 가고, 친척, 친구들을 찾아 전국을 누볐던.

이 여행에서 멋진 사진은 단 한장도 건지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것들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비가 올 땐 돌아다니지 않고 집에 있는게 최고라는 것,

자동차는 정말 빠르고 편리하다는 것,

맘씨 좋은 사람들이 아직 많다는 것,

우리나라가 정말 작고 산과 들이 대부분이지만 참 아름답다는 것,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물, 따뜻한 샤워, 휴지 같은 사소한 것들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살아있음.


여행을 하며 매일매일이 즐거웠고 살아있다는 기분이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참 성공적인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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