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늘 벗어나고 싶던 최초의 집을 나와 독립한다. 스물두 살이었다. 집을 나오는 건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일이지만 개인 공간을 갖는 건 그렇지 않다. 그녀는 결국 20대를 다 보내도록 개인 공간을 갖지 못한다.
한 뼘만 한 창문도 없는 대학로의 한 고시원이 첫 번째 방이다. 그다음으로 간 원룸텔은 창문도 있고 침대도 더 넓다. 세 번째는 원룸이었는데 개인 욕실과 주방이 있다. 이곳에서는 커튼이 필요할 만큼 큰 창문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통돌이 세탁기는 공용이다. 서울에 직장을 얻으면서 다시 원룸텔로 돌아간다. 1년 6개월 후 친구와 돈을 모아 집을 구한다. 방에서 벗어나 집에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온전한 개인 공간은 아니다.
공동생활은 바퀴벌레 득실대고 늘 시끄러웠던 최초의 집과는 또 다른 불편함을 준다. 맡기 싫어도 다른 사람의 냄새를 맡아야 하고, 듣기 싫어도 옆방의 전화 통화를 들어야 한다. 이것도 모자라 설거지를 하고 잠시 주방에 두었던 그릇과 수저는 도난당한다.
'조금 더 집다운 집에 살았다면 삶이 좀 더 살만해졌을까. 덜 아팠을까. 상관관계야 있겠지만 몸이 사는 집만큼 마음이 사는 집이 어떤 상태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았다. 녹록지 않은 생활을 버텨냈더니 나는 나에게 좀 더 잘해주고 싶어졌다. 적어도 몸이 사는 집이 누추하다는 이유로 마음 집까지 해치고 싶진 않았다. 마음이 건강하면 누추한 집의 삶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96쪽
그 후 복도를 이동할 땐 숨을 참고, 옆방에서 통화 소리가 들릴 댄 벽에서 멀리 떨어지고, 설거지한 그릇과 수저는 물기가 있는 채로 방으로 가지고 돌아와 키친타월 위에 얹어 말린다. 이건 순응이 아니라 성장이다.
그녀가 거쳐 간 방들은 비록 구겨진 기분이 들 만큼 작지만, 그 방들이 모여 그녀 안에 커다란 호수湖水를 만든다. 그녀는 더 이상 중국인들, 어떤 인디가수에 대해서 편견을 갖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옆방 여고생의 통화를 듣고 속으로 그녀의 대학 합격을 기원한다. 같은 고시텔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방을 고르고, 매니저에게 흥정해 월세도 깎는다. 그리고 외로움을 반려감정이라고 부를 수도 있게 된다. 이제 그녀의 마음은 웬만한 크기의 돌에도 쉽게 요동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호수湖水 하나쯤 가지고 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호수는 어떤가, 내 삶을 품을 수 있는가,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요동칠 만큼 작고 얕은 건 아닐까, 스스로에게 돌멩이 하나를 던져본다.
*본 글은 헬로인디북스의 서평단 모집을 통해 받은 책을 읽고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