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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쭝 브런치 Jun 02. 2022

팬케이크

어머니의 생신

 인생에서 잊지 못할 케이크가 있다면 그건 바로 팬케이크일 것이다. 여지껏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팬케이크를 좋아하느냐고? 아니다. 오히려  반대라고 말하는  맞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즈음 우리 가족반지하에 았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 일하러 갔다 밤늦게 들어오셨다. 아버지는 대형 트레일러 운전셨는데,   일을 나가시면   며칠은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분은 쉬는 날이 정해져 있지 않았고, 있다고 해도 아버지는 하루 종일 주무시고, 어머니는 밀린 집안일을 하기 바쁘셨다. 나는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그전까진 매일 싸우다 의지할 데가 서로밖에 없어서 그랬는지, 이맘 때부터 사이좋게 지냈던 것 같다.


겨울이 막 시작한 11월이었다. 어김없이 어머니의 생신이 돌아왔다. 어머니의 생신을 일주일 앞두고 외할머니는 내 작은 손에 돈을 쥐어주시며 케이크라도 사서 가족이 함께 먹으라고 하셨다. 나는 당연히 내 용돈일 줄 알고 받은 그 돈에 어머니 생신 케이크라는 꼬리표가 달린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새로나온 디아블로2를 하기 위해 피시방에 갈 돈도 필요했다. 창피하지만 나는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가장 값싼 케이크를 살 수 있을까 고민했다.


고민 끝에 내가 얻은 답은 직접 케이크를 만드는 것이었다. 케이크를 만들어본 적은 없었다. 대신 믿는 구석은 있었다. 언젠가 마트에서 본 팬케이크 믹스가 떠오른 것이다. 게다가 나는 달고나를 집에서 만들어본 경험도 있었다. 달고나 만들기와 팬케이크 굽기가 관련은 없어 보이지만 달고나는 설탕을, 팬케이크는 밀가루로 동그란 형태를 것이라는 점에서는 닮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동생을 데리고 마트에 가 팬케이크 믹스를 샀다. 박스 겉면에는 여러겹 쌓아올린 팬케이크 사진이 있었다. 그 앞에 적힌 가격표를 보고 나는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값싼 케이크라는 걸 확신했다.


나는 박스에 적힌 레시피대로 물과 분말을 섞어 반죽을 만들었다. 그리고 프라이팬 위에 걸죽해진 반죽을 한 국자 올렸다. 잠시후 반죽이 갈색으로 변했고, 그럴듯한 냄새도 났다. 프라이팬은 테팔이었고, 계량 또한 완벽했기 때문에 작정하고 망치려고 하지 않는 한 실패할 일은 없었다. 나는 반대쪽도 익힌 후 옆에서 지켜보던 동생에게 한 입 떼어줬다. 동생은 호호 불며 팬케이크를 베어 먹었고, 이내 어떻다는 말도 없이 하나를 다 먹었다.


처음엔 들쑥날쑥했던 팬케이크의 모양도 횟수를 거듭할수록 일정해졌다. 나는 자신감이 생겼고, 어머니를 위해 요리하는 기특한 아들이 된 것 같아 기분도 좋아졌다. 그날 어머니는 밤늦게 집에 오셨다. 나와 동생은 어머니를 기다리다 잠들었고, 주방은 식용유와 팬케이크 분말로 어지럽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혼나지 않았다. 고된 몸을 이끌고 돌아왔을 때 어머니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초가 꽂힌 팬케이크였을 테니까. 


겹겹이 쌓아올린 팬케이크는 차가웠다. 그 위에는 시럽도 버터도 없었고, 생크림이 발라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신 초에 불을 붙이는 건 잊지 않았다. 아버지는 집에 오시지 않는 날이었다. 우리는 초에 불을 켜고 노래를 불렀다.


어머니는 한동안 사람들에게 이 일을 자랑처럼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때의 감동이 희석될까 아직까지도 그때 팬케이크를 만든 진짜 이유를 고백하지 않았다. 이렇게 글로 썼으니 이제 아시겠지만 그때 팬케이크를 만든 동기가 무엇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그날 우리는 모두 행복했고, 어머니와 나 사이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하나가 생겼으니까. 물론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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