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쭝 브런치 Mar 01. 2022

머리가 복잡한 날엔 그곳이 그립다

해야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좀 낫지 않겠나. 


이런 날이면 엘살바도르에서의 삶이 그리워지곤 한다. 그냥 단순했던 삶들 말이다. 열심히 일하고, 푹 쉬고, 잘 놀고,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 하고, 가끔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휴가를 갖고, 하는 그런 삶이었다. 일 년 내내 해가 내리 쬐는 날씨도 좋았다. 물론, 5개월 정도는 우기였지만, 뭐 그렇다고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니었다. 


4,5월에는 어딜가든 달짝지근한 망고향이 났다. 내 손보다 더 큰 망고가 중력을 못이겨 나무에서 떨어졌다. 차 위에 떨어져 경보기가 울릴 정도로 커다란 망고였다. 사먹을 필요도 없었다. 그냥 주워서 먹거나, 사람들이 주는 망고를 받아만 먹어도 망고가 넘쳤다. 처음에야 껍질을 벗기고, 격자로 칼집을 내어 먹었지만, 나중에는 그냥 껍질째 입으로 베어 먹었다. 껍질 밖으로 새어나오는 찐득한 과즙 때문에 손바닥 전체가 끈적끈적하던 그 촉감이 떠오른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씨에도 그늘에 들어가면 더위는 금세 가신다. 시원한 바람이라도 불면 금세 낮잠이 몰려온다. 잠이 오면 잠시 해먹에 누워 낮잠을 자기도 했다. 쌓여있는 일도 없고, 굳이 당장 해야하는 일도 없었다. 일이 있다고 해도 잠시 미루면 그만이었고, 그런다고 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길을 걷는 아무나와 인사를 하는 것도 좋았다. 처음보는 사람이라도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를 했다. 처음엔 주로 상대쪽에서 먼저 인사를 건넸는데, 나중에는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도 모르는 사람이 부엔 쁘로베쵸(Buen provecho: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했고,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재채기를 하면 살룻(Salud: 건강하세요),하고 외쳐줬다. 그 밖에도 참 많은 것들이 생각이 난다. 


분명 기억은 미화된다. 그곳에 살 때는 그곳이 싫어서 당장 짐을 싸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래도 아무렴 어떤가, 이렇게 머리가 복잡한 날 잠시 그곳을 그리워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 희미해지는 기억들 하나하나에 위로받는 오늘이다. 

Chalatenango, El Salvador. ©김철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