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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쭝 브런치 Feb 07. 2024

엘살바도르 현지적응훈련

엘살바도르에 파견되면 우선 약 2달간 현지적응훈련이라는 걸 한다. 코이카는 단신부임을 원칙으로 하지만 이 기간 동안에는 같은 기수의 단원들이 함께 생활하며 현지의 기후, 언어, 음식, 문화 등에 적응하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 기수는 총 6명이었다. 한국에서도 이미 1달간 합숙을 하며 국내훈련이라는 걸 했기 때문에 서로 잘 아는 사이었다. 




현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신분증을 만든다. 손바닥 만한 녹색 카드인데, 책처럼 펼쳐지고 하드커버다. 겉에는 에스꾸도Escudo라고 하는 방패 모양의 엘살바도르 문장(紋章)이 그려져 있었다. 여권은 사무소에서 관리한다. 잃어버릴 수도 있고, 말없이 국외로 나갔다 올지 모르기 때문에(실제로 그런 사람이 간혹 있다는 소문을 듣곤 했다) 관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건 나라마다 또 다르다. 전해 듣기로 여권을 단원 개인이 소지하는 나라도 많았다. 각 나라의 사무소 방침 같았다. 


신분증이 나오면 이후에는 휴대폰을 개통하고 은행에 가서 계좌를 하나 개설한다. 백지 수표도 받고, 체크카드도 발급받는다. 인터넷 뱅킹도 된다. 이제 단원 생활을 하는 동안 주거비나 생활비 등 사무소를 통해서 받는 돈은 대부분 이 계좌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현지 적응 훈련 기간 동안 쓸 돈은 현금으로 받았다. KOICA라고 쓰여 있는 봉투에 미국 달러로 돈을 받았다. 엘살바도르의 현지 통화는 미국달러다. 원래는 콜론(Colon)이었는데, 2001년에 바뀌었다. 현지인들 중에서는 아직도 달러를 콜론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1달러를 1콜론이라고 말이다. 미국과 같은 화폐를 쓰면서 화폐의 안정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지만 국민들은 갑자기 물가가 너무 많이 올랐다며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 




현지적응기간 동안에는 수도 산살바도르(San Salvador)에 있는 유속소에서 생활했다. 도보로 15분에서 20분 정도 걸리는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3층짜리 단독주택이었다. 


처음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는 시차가 적응이 안 돼 시도 때도 없이 졸고 초저녁에 잠들어 새벽에 일찍 깨는 새벽형 인간이 되었다. 다른 동기 단원들도 시차는 누구나 느꼈지만 적응 기간은 각기 달랐다. 대부분 빠르게 시차에 적응했다. 나보다 늦는 사람은 없었다. 


시차에 적응하고 현지 생활이 조금 나아졌다 싶으면 물갈이가 시작된다. 물이 안 맞던가 어떤 음식을 먹고 탈이 나는 것이다. 설사를 몇 번 하고 끝나는 경우도 있고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역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이런 일들을 겪다 보면 한 달이 금세 지나간다.




현지적응훈련 기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부분은 바로 현지어 학습이다. 유숙소 근처에 있는 아카데미아 에우로페아(Academia Europea)라는 외국어 학원에 가서 1대 1로 수업을 듣는다. 이 학원은 현지에서 가장 유명한 외국어 학원 체인이다.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를 가르친다. 우리는 현지어인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첫 수업은 이름 짓기였다. 나의 담당 선생님은 하비에르(Havier)라는 이름의 몸집이 크고 수염이 덥수룩한 백인 남자였다. 그는 화이트보드 위에 다양한 스페인어 이름을 나열해 적은 후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걸 고르라고 했다. 디에고, 알레한드로, 엔리케, 마우리시오, 안드레스, 호세 등 아주 많은 이름들이 있었다. 고민이 됐다. 딱히 매력적인 이름은 없었다. 하비에르는 내게 안드레스라는 이름을 추천했다. 안드레스가 자기 아들이 이름이라나 뭐라나. 나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싫은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오늘 처음 만났고, 앞으로 두 달간 함께 지내야 하는 스페인어 선생님이 자신의 아들 이름이라며 추천을 하지 않는가.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맞을 거 같았다. 그렇게 나의 스페인어 이름은 안드레스가 됐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다른 동기 단원들과 서로의 스페인어 이름을 공유했다. 마리오, 제시카, 우고, 멜리사, 엘레나였다. 모두 그런대로 괜찮았다. 서로 상대방의 이름이 잘 어울린다며 칭찬을 했다. 하지만 내 이름은 아니었다. "안드레스?" 모두 '풉'하고 한 번 웃음을 참더니 이내 큰 소리로 웃었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 고급스럽다고 했다. 이때부터 나는 조금 심난해졌다. 이름을 바꿔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수업은 하루 종일 계속됐다. 아침에 학원에 가서 오전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고 다시 오후 수업을 듣고 귀가했다. 나는 한국에서 한 달 정도 스페인어를 배운 게 전부였기 때문에 완전히 초보자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한국어로 설명을 들으며 스페인어를 배웠지만 이곳에서는 아니었다. 스페인어 원어민 선생님이 오로지 스페인어로만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는 내게 스페인어를 가르쳤다. 


하비에르는 수업 내내 내 표정을 유심히 살폈고, 표정과 몸짓을 이용해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스페인어를 설명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수업 때마다 한 편의 연극을 보듯 재미있게 수업을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주였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재미보다는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문제는 하비에르가 아니었다. 문제는 나였다. 스페인어가 전혀 느는 것 같지 않았다. 잘 들리지도 않고, 입도 잘 떨어지지 않았다. 실수하면 어쩌나, 문장을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부터 앞섰다. 그렇게 스페인어는 내게 좌절만 안겨주었다. 




주말엔 현지 탐방을 떠났다. 엘살바도르 현지에 가볼 만한 곳들을 관리요원님과 현지 사무소 직원들과 함께 다녔다. 엘살바도르의 검은 해변, 화산, 집라인 같은 레크레이션 프로그램, 온천, 박물관, 쇼핑몰, 유적지, 성당 등 다양했다. 아주 좋은 경험이었지만 평일엔 하루 종일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주말엔 문화탐방을 하는 게 피곤하고 부담스러웠다. 그냥 유숙소에서 늦잠을 자며 쉬고 싶었다. 


2달간의 현지적응훈련이 끝나갈 즈음 OJT(On the Jop Training)를 떠난다. 앞으로 파견되어 일을 하게 될 기관에서 일주일간 지내보는 것이다. OJT는 매우 중요했다. 단순히 파견지에 대한 궁금증 해소가 아니라 코워커가 누구인지, 내가 하게 될 일이 무엇인지도 파악해야 했다. 일에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임기 동안 살아갈 집도 알아봐야 했다(코이카 사무실이 구해주지 않는다. 단원이 직접 구해야 한다). 나는 걱정이 조금 됐지만 한 달간 스페인어도 열심히 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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