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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쭝 브런치 Jul 22. 2024

사이몬 Simon

엘살바도르에는 집집마다 반려동물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이 개이지만 새나 고양이도 많았다. 치안이 안 좋아서 그런지 큰 개를 키우는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모두가 개를 키우는 건 아니었다. 내가 개를 두려워해서 그런지(어릴 적에 물린 기억이 있다) 내 주변에 그러니까 나와 친했던 사람들은 반려동물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반려동물이 있는 집은 잘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니아의 집은 예외였다. 시니아 Xinia의 집에서는 약 7~8개월 정도 홈스테이를 했는데, 그녀의 집에는 사이몬 Simon이라는 시베리안 허스키가 한 마리 있었다. 앞발을 들고 서면 성인 남자 만했고,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털도 멋졌다. 하지만 사이몬은 나이가 많았고 병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이몬이 조금 무서웠다. 사이몬은 나를 보고 딱히 짖지도, 나를 깜짝 놀라게 할 만큼 여기저기 뛰어다니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사이몬은 대부분의 시간을 시원한 타일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보냈다. 그러다 밥을 먹거나 아침에 시니아와 함께 산책을 할 때만 커다란 몸을 움직였다.


사이몬이 가장 행복해 보일 때는 시니아가 애정하는 자동차인 티부론Tiburon을 탈 때였다. 상어라는 의미의 티부론은 흰색 투도어 자동차였다. 선글라스를 쓴 시니아가 차를 몰고 조수석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바람을 맞는 사이몬을 보면 그가 느끼는 행복이 어떤 종류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은 로드무비의 한 장면처럼 낭만 있었다.


한 번은 주방으로 가는 길목에 사이몬이 앉아있었다. 시니아가 주방에서 저녁을 만들고 있었고, 나는 사이몬을 피해 주방 냉장고를 열려고 했다. 그때 사이몬이 나의 손을 물었다. 순식간이었다. 나는 어릴 적 기억이 떠올라 너무 놀랐고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얼어있었다. 곧바로 시니아가 "사이몬!" 하고 크게 소리치자 사이몬이 나의 손을 놓아주었다. 2,3초 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내게는 세상이 멈춘 듯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나는 물린 손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상했다.  그 나름대로는 아주 세게 문 것 같았는데 나는 별로 손이 아프지 않았고 피도 나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사이몬은 성한 이빨이 거의 없다는 것을. 나는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사이몬이 밉거나 두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이몬은 시니아를 지키려고 나를 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사이몬은 그 후 1년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사이몬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엘살바도르에 없었다. 시니아의 딸인 바네사가 SNS를 통해 그 소식을 내게 전했다. 나는 시니아부터 떠올랐다. 얼마나 큰 상실감을 느꼈을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저 시니아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혹은 자식이나 다름이 없었던 사이몬이 이제 없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에 뜨거운 것이 고였다. 그리고 오른손이 욱신거렸다. 1년 전 사이몬이 물었을 땐 전혀 아프지 않았던 그 손이 그제야 욱신거렸다. 손에 사이몬의 흔적 같은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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