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gs i like
전고운 감독의 영화 '소공녀'를 뒤늦게 봤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미소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너무 궁금해서 감독에게 메일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에는 다양한 청춘이 등장한다. 대학시절 밴드 동아리 멤버로 청춘의 한창을 보내던 이들은 졸업을 하고 각자의 길을 간다. 미소는 담배와 위스키, 그리고 남자친구만 있으면 행복한 3년 차 가사도우미다. 불안정한 주거를 갖고 있고 일당 4만 5천 원으로 꾸역꾸역 살아가는 가난한 청춘이다. 미소는 세상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담배 가격이 올라 생활비가 빠듯해지자 차라리 살고 있는 월세방을 빼기로 결심한다. 친구의 집을 청소해주고 친구에게 쌀을 빌려야 할 정도로 가난하지만 미소는 정착하는 삶 대신 떠도는 삶을 선택한다. 그리고 자기 몸만 한 1인분의 짐을 끌고 하루 묵을 장소를 찾아 오래된 친구들을 한 명 한 명씩 찾아간다. 그리고 누군가에겐 한없이 불안정하고 한심해 보이는 그 삶을 '여행'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마치 유럽 배낭여행을 떠난 대학생이 매일 다른 숙소를 찾아가는 것처럼.
영화 속 미소는 마치 은은한 표정으로 혼자 세상과 맞짱 뜨고 살아가는 사람 같다. 그녀의 움직임, 짐을 끌고 거리를 걷는 모습,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고독하게 수련하는 복서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영화는 미소와 미소가 만나는 친구들의 삶을 대조적으로 비춰준다. 미소의 친구들은 집이 있고 안정되고 기반이 잡힌 생활을 하고 있다.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다. 그러나 밝게 웃는 친구들의 표정 뒤에는 무엇인지 모를 묘한 불안감과 어둠이 슬쩍슬쩍 고개를 내민다.
영화 속 미소의 친구들은 미소가 맞짱 떠야 하는 대상은 아니지만 미소에겐 피할 수 없는 삶의 도전이다. 어딘가 조금씩 왜곡되어있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미소보다 괜찮게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들. 사람에겐 안정적인 직장과 집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사람처럼 살 수 있다고, 이렇게 남의 집 전전하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고. 미소가 만나는 밴드 친구들은 미소에게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작은 사회다. 그러나 이내 미소는 미소답게 돌아온다. 오히려 단단하고 튼튼해 보이는 친구들의 삶에서 균열을 발견하고 친구들을 위로하는 존재가 된다.
영화 속 미소는 요란하고 화려한 청춘이라기보다 집이 없어서 걱정도 하고 생활비에 쪼들려 한숨도 쉬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평범한 청춘이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담배 가격이 올라 생활비가 쪼들리자, 담배를 끊기보다 집을 빼는 선택을 하는 미소는 분명 다른 삶의 가치관과 소신을 지녔다. 하지만 조금만 영화에서 벗어나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에서 취향만으로 살아가면서 존엄까지 지킨다는 것이 가능할까? 질문하게 된다. 그래서 미소의 삶을 정말 '여행'이라고 불러도 괜찮은 걸까? 미소는 그래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예쁜 미소를 지닌 미소는 정말 행복할까? 계속 묻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청춘이라 불리는 한 시점을 통과해온 나에게 삶의 최소 단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 '집'이라고 말할 것 같다. 최근 영화 노마드랜드 소공녀처럼 집의 개념을 고찰해보는 콘텐츠들을 자주 발견하게 되는데 다소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되뇌며 예쁜 미소가 선택한 삶을 응원해야 할까. 오랫동안 곱씹고 생각하게 되는 영화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수많은 미소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우리 모두에겐 미소였던 시절이 있고 미소가 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