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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UU Jul 16. 2023

COOL KIDS NEVER DIE  

소란스럽게 장사 접는 행궁동 버거집 이야기

오피큐알은 2023년 6월에 잠정영업을 중단했습니다. 매출하락과 원가상승 등 코로나 이후로 오히려 어려운 상황을 접했고 극복해 보려는 노력이 무의미할 정도로 행궁동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었기에 내린 좀 아쉬운 결단이었습니다. 고백하자면 단골을 많았으나 유의미한 매출이 어려웠고 네이버 맛집 순위조작으로 채워진 행궁동의 빠른 변화에 대항할 에너지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멈출 수 있을 때 멈추고 생각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아쉽지만 영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뒤 동료들과 의논 후 '정리하기 전 파티를 하자. 이곳에서 함께 일한 모두와 도움을 주셨던 모두를 초대하자'라고 생각해 파티를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포스터


개는 되고 사람은 안 되는 아이러니 - 쿨키즈 네버 다이의 뜻


행궁동 변화의 시작은 노키즈존의 범람이었습니다. 유행처럼 너도 나도 노키즈존으로 채워집니다. 심지어 스펠링도 'No Kind Zon'이라고 패기 있게 쓰신 공간도 보입니다.(친절을 기대하지 마라, 난 e조차 쓸 여유도 없으니) 그래서 우리는 Cool Kid Zone이라 캠페인을 했죠. 애견동반이 유행인지라 애견동반은 붙여 놓고 노키즈존이라 하는 곳도 생겨나더군요. 개도 되는 데 인간이 못 들어오는 아이러니가 우스웠습니다. 쿨키즈는 매너가 있는 모두를 뜻합니다 매너만 있다면 누구라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오피큐알이 쿨키즈였고 쿨키즈는 죽지 않는다 곧 다시 돌아온다는 메시지였죠. 




장사를 접는 판에 술과 고기 그리고 DJ까지 부른 오피큐알은 이 파티를 통해'원래 행궁동은 이런 곳'이라고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다음엔 더 좋은 일로 모셔와야겠죠. 


 




함께 했던 동료, 동네가게 사장님, 거래처 사장님 등 많은 분들도 이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찾아와 주셨습니다. 존앤진 대표님이 긴 시간 남으셔서 많은 사진 찍어주셨습니다.(감사합니다.)





그렇게 파티는 끝이 났고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그 오 년이라는 시간 동안 남은 것은 뭘까? 



찾아준 동료들에게 나눠준 오피큐알의 마지막 유니폼입니다. 


오피큐알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했던 이들이 이 그림에 들어 있습니다. 이 한 장의 사진에 오피큐알의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인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피큐알이 특별한 경험이고 추억이었던 사람들이 마지막 시간 다시 모였고 그렇게 의미를 함께 했습니다. 대학을 입학하자마자 알바를 했던 곳이자 대학을 졸업 후 대학원에 갈 때까지 일했던 1호 알바생, 여기서 일하다 앞에 있는 회사로 취업한 2호 알바생, 이곳에서 커플이 되어 결혼하면 제가 주례를 서야 한다 예약건 친구, 오피큐알이 좋아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데도 주말이면 내려와 이곳에서 알바를 했던 친구, 이곳의 1호 매니저로 잠깐 도와주다 근처에 비비큐레스토랑 '토미비비큐'를 차려 잘 된 사장님 등 기꺼이 오피큐알의 팬이 되어주었던 동료들의 이야기는 제 마음속에 잘 수집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해줬던 모두가 있었어 무의미로 끝났을 모든 일들이 다음 삶의 목표로 향하게 하는 강력한 재료가 되어주었다 고백하겠습니다. 


지금은 아트샵을 준비하며 스튜디오로만 사용하고 있는데 아직 매일매일 소식을 못 들으신 단골손님들이 찾아오셔서 문 닫았는지 몰랐다면서 아쉬움을 남기고 가십니다. 며칠 전 익숙한 표정으로 버거 2개 포장이요. 하고 아무 낌새도 못 차린 듯 들어오신 중년의 여성손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세상 슬픈 표정을 하십니다. 우리 딸이 제일 좋아하는 버거집인데... 하시며 말이죠. (미안한 마음과 때늦은 서러움이 파도를 칩니다.) 


이제 다시 다음시즌을 고민해보려 합니다. 브랜드를 하는 제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고 오피큐알의 존재가치를 찾았을 때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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