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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UU Jan 06. 2024

여전히 행궁동

이곳을 미워하지 않기위해, 떠나지 않기위해 몸부림치는 중

내가 행궁동을 선택한 이유


2015년에 온 행궁동, 이제 9년을 채워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 긴 시간을 지내왔구나 아니 버텨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몇개 없는 카페, 예술가의 공방들과 레지던시, 또 거리를 채운 신당집에 펄럭이는 깃발과 방울소리들... 나를 채운 낮선 풍경들이었다.  고즈넉했고 한산했지만 열정과 꿈이 가득한 크리에이터들이 꿈틀되는 가능성을 시험하던 곳. 그 것이 내가 행궁동을 선택하게 된 이유이다. 



2015년 행궁동에 처음와서 아내가 그린 행궁동, 이 그림을 볼때마다 이 동네를 더 재미있게 변화시켜야 겠다고 희망에 부푼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2024년의 행궁동


2024년으로 돌아온다. 한동안 많은 가게들이 자리를 채우고 나가길 반복하다가 지금은 인생땡컷등은 포토부스와 사격장, 토이크레인가게 등이 이 동네를 살풍경하게 만들고 있다. 주민들은 떠난 가운데 평일은 텅 비고 주말은 주차자리 시비로 고성이 오가는 인정없고, 매력없는 곳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뒤늦은 서울 상권 트렌드의 답습과 또 그 대세에 환호하는 플랫한 감각의 대중선호는 몰개성한 지역으로 가는 길에 박차를 가하고 말았다.


내 잘못도 있다. 하지만 늦지 않았다.


행궁동을 찾는 이유를 함께 고민하기 보다는 중간에 만난 '코로나판데믹' 동안 생존을 위해 동네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요즘 버거집 오피큐알을 닫고 거리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시아가 열렸다. 보잘것 없는 내가 뭐라고 이런 이야기를 할까 싶겠냐만 그런 나라도 좀 더 무언가를 했어야 했다는 일말에 죄책감과 후회에 사로잡혔다. 그러다가 문득 후회는 접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멋진이웃들이 남아있다.


이 동네를 나보다 더 긴 시간 살아온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동네에 대한 자부심만큼이나 큰 '지금의 변화에 대한 안타까움'을 공감했던 시간이었다. 이 곳을 더 오래도록 사랑받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이웃들과 연대, 그리고 매력적인 브랜드와 크리에이터를 발굴하고 알리는 일, 그게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행궁동을 사랑하며 이곳을 미워하지 않기위해, 떠나지 않기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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