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잘 사지 않는다.
이제는.
예전엔 선물도 곧잘하고
(쓸데없고 예쁘기만한) 기념품들도 꼭 사고
백이니 뭐니 샀었지만
이제는 별로 꼭 사야겠다는 생각이 안 든다.
그래서
식료품 소비 외에는
사랑인가 헷갈릴 정도로 마음에 드는 물건만 가아끔 산다.
엊그제는
물컵 하나를 샀다.
언젠가 무라노에서 유리 공방을 간 적이 있었는데
마음에 드는 물컵이 있었다.
비실용적으로 아주 얇았다.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입술에 닿는 그 부분이 살얼음처럼 몹시 얇고
쓸데없는 곡선을 넣는다던가
이상한 색깔이나 무늬를 넣는다던가 하는 짓을 하지 않은
순수한 물체였다.
일반 찬장에 밥그릇들과 함께 뒤집어 놓을 수도 없는 프레질한 물컵.
그리고는 내가 왜 그 물컵을 사지 않고
무라노 섬을 떠났던가 후회를 하기를 반복하다 이제 잊고 있었는데
어제 비슷한 물컵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샀다.
식기세척기에 넣을 수도 없고
사기 밥그릇 옆에도 깨질까봐 못 두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물컵이지만 샀다.
이제
내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희박한 일인 줄 아니까.
물 마실 때마다 마음이 간질거리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