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식가이다.
예전엔 특대식가였는데
요즘엔 그냥 대식가로 바뀌었다.
어제 아쉬탕가 사람들과 여름시즌 수업 끝나는 기념으로
포트럭 파티를 했다.
선생님이 자기가 직접 만든 IPA, 흑맥주 같은 것을 가져와서 함께 먹었다.
그러고는
오늘 아침 늦잠을 잤다.
냉장고를 열었는데
다행히 문어 한 마리가 있어서
급하게 삶아서
반은 생토마토를 갈아 소스를 만들어 카르파쵸를 해 먹고,
반은 한국식으로 초장에 찍어 먹었다.
어떤 감정을 진심으로 느끼게 되면
입 밖으로 그 말이 튀어나오는 것 같다.
나 혼자 있는 주방에서
신들린 것처럼
맛있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와서 놀랬다.
문어는 여름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오래 전 한여름에 산토리니에 갔었다.
작은 보트를 타고 산토리니 섬의 절벽에 숨겨진 작은 해변 마을에 도착했다.
거기에 잠시 정박을 하고
물가의 허름한 식당 겸 카페에서
점심으로 문어 구이를 먹은 적이 있었는데
행복했다.
여름이면
엄마는 감자를 삶아주시곤 했는데
감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그 여름 감자는 잘 먹었다.
작은 소금 결정들과 함께 껍질이 일어난 짭조롬한 감자.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납짝한 주먹만한 감자.
김과 함께 올라오는 구수한 냄새...
다음 날이면
감자는 쫀득한 떡처럼 더 맛있게 변해 있었다.
또 여름 어느날이면 딸기쨈 냄새가 집 안에 진동을 했다.
나는 딸기도 딸기쨈도 좋아하지 않는데(호불호가 있는 대식가...)
그 냄새가 좋아서 병에 담아두면 겨울에도 이 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엄마가 한 바구니 씻어놓은 골 부분이 희끗한 자두,
혹시 시지는 않을까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다
손바닥에 코를 대어 봐도 자두 냄새가 진하게 올라왔다.
요리하다 말고 달다고 먹어보라고 엄마가 입 속에 넣어 준 생 가지,
수동 제빙기로 직접 만들어 주신 간혹 얼음이 씹히는 팥빙수,
삶아진 닭다리 살을 발라 접시에 놓아 두면 살이 더 쫄깃해지는데 그걸 소금에 찍어 먹으면 참 맛있었다.
시칠리아의 작은 섬에서 먹었던 올리브가 적당히 들어간
문어 스튜나 포슬한 문어 샐러드... 살짝 시큼한 와인...
여름은 미워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