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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K Feb 02. 2023

치앙마이 도이 인타논

치앙마이 한달살기


“저기……그냥 옆에서 귀동냥 좀 해도 되겠습니까?"


희고 검은 수염이 반반씩 섞인 젊잖은 노신사 한 분이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다가오며 말했다.




 ”그럼요” 


너무 자연스럽고 빠르게 응대를 마친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넓은 금테 안경을 낀 그녀는 

맛집과 추천관광지를 쉬지도 않고 나열했다. 




그녀와 우리도 그 신사분이 말을 걸기 5분 전에 

어둑어둑해지며 해가 기울어 

마지막 여명을 비추는 왓 체디 루앙 사원의 

북쪽 모서리에서 만났다. 




“사진 찍어드릴까요?”  

“네? 네……고맙습니다.” 

그녀는 우리 부부의 사진을 고맙게도 

여러 장 찍어 주었다. 




혼자 벤치에 앉아 누구를 기다리는 모습에 

투어 가이드인 줄 알았습니다." 

 “아니요. 저도 여행 중이에요. 

여러 번 왔다 갔고 이번에도 장기간 있을 뿐이죠.” 




이곳 치앙마이의 무엇이 그녀를 

계속 다시 오게 만드는지 몹시 궁금했다. 

시간만 된다면 싱하 한 잔 앞에 놓고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잠깐 동안 동포 간 정보교환의 시간을 가진 후 

우리는 쿨하게 헤어졌다.

 “좋은 여행 되세요!”




사원 서쪽 4~5미터 나무 위로 옆으로 누운 초승달과 

그 옆에 토성이 같은 높이로 빛나고 있었다.

사원의 모습은 사각 기초를 토대로 튼튼하게 

그 각진 형태를 이루고 있었지만 

묘하게도 그 꼭대기로 갈수록 그 붉은 벽돌은 

검은색을 띠며 형태가 뭉그러져 있었다. 




오래전에 무너진 사원은 그렇게 

조금씩 복원되고 있었다. 

출입구를 지키는 용의 조각과 붉은 벽돌이 이루는 

사원은 달과 별이 짙어질수록 그 색이 더욱 붉어졌다. 



그때 사원 출구 방향에서 방금 전 보았던 노신사 분의 

아내 분이 방향을 돌려 돌아와 말을 건넸다. 



“혹시 도이 인타논 가실 생각 있으면 같이 가실래요?”
















여행이 만드는 우연도 빠질 수 없는 설렘 중의 하나다. 

그렇게 관광에는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던 

우리 부부는 며칠 후 숙소인 디콘도를 빠져나와 

북동쪽 고지대로 올라가고 있었다.  




태국인 드라이버는 영어를 곧잘 했다. 

2시간 반 정도의 잘 정비된 도로를 달렸다. 

금세 교외의 한가한 풍경이 펼쳐지고 

도심에서 떨어진 고급빌라 주택 지역을 지나쳤다.




농장지대가 나타났다. 

깔끔해 보이는 카페들도 보였다. 

Carp cafe라는 비단잉어들을 키우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 치앙마이의 카페들은 어떤 면에서는 한국보다 더 특색 있는 카페들이 많다. 

한국의 카페들은 두 가지 방향으로 경쟁한다. 

얼마나 큰가 하는 것 하나와 얼마나 instargramable 한가 하는 것이다. 

서울의 외곽 지역으로 초대형 박공지붕을 가진 베이커리 카페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그러지 않으면 인스타 사진이 얼마나 예쁘게 나오느냐가 관건이다. 

하지만 이곳 치앙마이는 아예 테마를 달리하는 카페들이 있다. 




차 안에서 여행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서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은 즐겁다. 

이제 막 은퇴하신 노부부는 그런 점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센스 넘치는 분들이셨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이 훌쩍 가고 Doi Inthanon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입장료는 개인 당 300밧였고 차량 한 대당 30밧을 추가가 받았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다시 차에 올라 한 시간여를 고불고불 커브길을 달렸다. 




분홍색의 벚꽃 같은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

 2,500여 미터의 높은 곳까지 오르는 길은 스모그로 희뿌연 대기권을 뚫고 

성층권으로 돌입하는 듯했다. 


갑자기 시야가 트이고 대기가 맑아졌다. 

선글라스가 필요했다. 




우리는 태국에서 가장 높은 곳인 2,565미터 지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이슬이 내뿜는 한기가 몸을 감쌌다. 

챙겨 온 가벼운 웃옷을 걸치고 정상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실 높은 곳을 좋아하진 않는다. 

중국의 쓰촨 성을 여행할 때 고산병까지는 아니었지만 

머리의 두통과 어지러움을 느낀 적이 있어서 약간의 두려움이 있다. 




그래도 윈난 성의 옥룡설산 투어처럼 산소통을 팔거나 

하지는 않아서 크게 겁먹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곳은 늘 조심해야 한다. 

갑자기 앉았다가 일어서거나 뛰는 행동을 하면 

핑하고 머릿속이 돌면서 쓰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영적인 장소가 없을 리 없다. 

특히 코끼리 조형물이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2시간 트레킹을 할 시간이다. 

KEW MAE PAN TRAIL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트레일의 길 안내원 요금을 징수했다. 





갑자기 중국 커플이 다가오더니 한 그룹당 아홉 명까지 길잡이의  안내를 포함한

입장료가 200밧이니 자기 둘을 우리 그룹에 포함시켜 달라고 했다. 

역시 중국인은 이재에 밝다. 





그렇게 또 우연한 만남이 겹쳐졌다. 

타이완에서 온 커플은 친구관계라고 했는데 

이곳에서 만난 친구인지 원래 친구인지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오토바이로 투어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태국은 오토바이 천국이다. 

베트남 보다는 덜 하지만 바이크가 너무 일반적이어서 

남녀노소 모두 바이크를 이용한다. 

물론 이곳에서도 200cc가 넘는 바이크는 흔하지 않다. 

가끔 골드윙이나 트라이엄프, 할레이 데이비슨 같은 

고배기량 하이엔드도 보이긴 하지만 대부분 운전하기 쉬운 스쿠터가 많다. 






2종 소형면허가 있어서 도전해 보고 싶기는 한데 

바이크는 빌리더라도 헬멧을 따로 사야 하고, 

주행 방향이 한국과 반대여서 엄두가 나질 않는다. 


어쨌든 그 젊은 커플의 용기가 부러웠다. 훗날 BMW GS를 끌고 


태국의 치앙마이에서 푸껫까지 북남 횡단을 꿈꿔 본다. 




한 30여분의 오르막 트레일의 끝이 났다. 

가는 길에 나무 계단이 사실은 조금 불편했다. 

그냥 흙을 밟았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평지가 나오더니 나무 숲이 사라지고 사방이 뻥 뚫렸다. 

무지막지한 광량이 온몸을 덮쳤다. 

그 어떤 방해물도 없이 나에게 부닥쳤다. 





2,500미터의 산 위에서는 구름을 아래로 바라볼 수 있었다. 

운해가 펼쳐졌다. 

그리고 그 위로 하늘색의 다른 명도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이래서 산을 올라오는지도 모르겠군’하는 생각이 스쳤다.

 마치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을 보는 듯했다. 

이럴 때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그렇게 많은가? 

적당한 기온과 햇살, 그리고 맑은 공기와 따뜻한 음식이면 안될까?' 




구름 위로 솟아 오른 바위를 배경으로 

빨간 카네이션 같은 Rhododendron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강렬한 보색 대비를 만들고 있었다. 




내려가는 숲 속에는 eagle fern이라고 하는 

삼각형 모양의 크리스마스트리 같이 생긴 양치식물이 많았다. 




고사리 잎같이 생긴 것으로 공룡시대에서부터 있었을 법하다. 

아마도 익숙한 것을 보니 어느 나라의 숲에서나 볼 수 있나 보다. 

숙소인 디콘도 린의 정원에는 Fox tail fern이라는 

정말 여우꼬리 같이 생긴 모양의 식물이 있다. 

볼 때마다 귀엽다고 느꼈는데 이것이 양치식물이었다는 것을 이렇게 또 배운다. 

여행은 우연히 펼쳐보는 책의 한 페이지 같다. 




Pra Mahatat Noppamethanedon and Pra Mahatat Nopphonphusiri라는 

왕과 왕비의 60세 생일을 맞이해 건립한 파고다에 왔다. 




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왕과 왕비의 기념탑을 세우는 것은 매우 예측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파고다 안에는 부처님이 계셨다. 

부처님이 우선인지 왕이 우선인지, 

부처님을 숭상하는 왕을 존경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지만 파고다보다는

투명한 공기를 뚫고 내려오는 햇살에 빛나는 꽃들이 더 아름답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정원은 완벽했다. 

더 이상 뭘 더하면 좋겠다는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파란 공기와 붉은 꽃들에 맘껏 취했다. 

햇살 아래 앉았다가 일어나면 띵하고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확실히 취한 사람 같았다.




잠깐 멍족이라고 하는 이곳 소수민족이 운영하는 

관광객을 위한 시장에 들렀다.

길거리에 뒹구는 아이를 그대로 방치해 둔 집 앞에 발길이 멈추었다. 

작은 딸기가 먹음직해 보였다. 

한 컵에 20밧. 748원이다. 

왠지 모르게 미안해졌다.




커피를 직접 농사짓는 마을에 들러 커피 맛도 보았다. 

시내에서 도이 창 커피 브랜드를 마시기도 했지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태국의 전 국왕님이 마약을 키우던 북부지역에 

커피 농사를 하라고 장려하면서 커피 산업이 발전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다. 

베트남은 확실히 커피의 나라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태국의 커피 수준은 아직 모르겠다. 

앞으로 시내를 다닐 때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마셔봐야겠다.




숙소 바로 옆에 있는 대형쇼핑몰인 센트럴페스티벌 안에 스타벅스 커피가 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기준으로 115밧이다. 

두 끼 식사 값이다. 

매일 아침 들르는 로컬 커피 전문점의 커피는 50밧이다.

이곳 치앙마이의 소비 수준은 양분되어 있는 것 같다. 

로컬 마켓과 외국 마켓이다. 

외국 브랜드를 그대로 쓰면 값이 두 배 이상으로 뛰어 버린다. 

이 마을에서 만드는 커피를 한 봉지 샀다. 

한국돈 8천 원이다. 





이 여행의 피날레는 Wachirathan 폭포였다. 

전혀 알지 못하고 온 미지의 세계였고 기대하지도 않은 여행이어서 

왓치라탄 폭포의 풍경은 더욱 압권이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의 양이 엄청났다. 




태국에 대한 무지를 꾸짖듯이 백 톤의 물이 얼굴을 휘갈기는 듯했다. 

귀가 멍 해질 정도로 우렁찬 물소리는 

귓속의 왼쪽 이관을 통해 오른쪽 이관으로 흘러나왔다. 

태국에 대해서 뭘 알고 있는 거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조는 동안 

동서남북이 광활한 이 나라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냇물을 이루고 있었다.

곧 큰 낙수가 되어 굉음을 낼 것 같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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