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한달살기
“짹또로로롱….뾱뾱뾱…..쪽쪽쪽…….”
커튼 사이로 빛이 스며들기보다 고막을
간지럽히는 새소리가 더 빠른 곳.
이곳의 아침이다.
또 하루가 밝았다.
두 시간이라는 얄팍한 시차 때문에
아침형 인간이 되는 줄 알았다.
첫 일주일의 아침에는 분명 저 멀리서
수탉이 우는 소리도 들었다.
휴양지에서 아침형 인간이 된다는 것은
휴양에 반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 후론 정신은 들었지만
눈뜨기를 거부한다.
난 쉬러 왔다고.
절대 이 시간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결심을 한다.
혹시나 손발에 힘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뇌신경을 통해 명령을 내린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뇌에 전원이 들어오니
온갖 잡생각들이 순서도 없이 달려든다.
'아...... 생각 싫다고……'
저항하는 동안 그 생각들은
이상한 꿈이라는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
오전 8시.
커튼 사이로 깊이 찌른 햇살에
눈이 떠졌다.
더운 곳이라 북향집을 택했는데도
아침은 멈출 수 없다.
“꿈꿨어요”
“무슨 꿈?”
“산 꼭대기에 당신이랑 있었는데
사람이 엄청 많이 탄 썽테우에
당신이 올라타고 가버렸어요."
“나 혼자?...... 당신 놔두고?”
“네”
“기분 나쁘지 않았어요?”
“아니요. 그냥 혼자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절벽이 너무 무서워서
덜덜 떨고 있었어요.”
“그래서?”
“마침 지나가던 부부가 구해줘서
같이 시내로 내려왔어요.”
어제 볼트 택시 운전기사들의
바가지 딜을 거절하고 포기한
도이수텝이 아내의 잠재의식 속에서
무언가를 한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 썽떼우를
혼자 타고 내려간 걸까?
바쁠 것도 없는 아침.
다리에 힘을 주어
첫 방문을 하는 곳은 화장실이다.
양치를 하면서 수도꼭지는 양쪽으로
돌아가는데 물의 온도가 조절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눈치챈 건 어제다.
왜 이때까지 몰랐지?
하기야 이곳은 더운물도 필요 없고
찬물도 필요 없을 정도로
적당한 온도의 물이 나왔다.
불편하지 않았으니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올드 시티 쪽은 수돗물이 좋지 않아
난리라던데 다행이야.
물은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처럼
물에 민감한 사람들도 없다.
중국 북경에서도 샤워필터 없이 지냈다.
석회가 섞여서 그다지 상쾌하진 않았지만
4년 반을 사는 동안 건강문제는 없었다.
물론 그곳도 신축 건물이었고
신도시 지역이기는 했다.
이곳의 화장실이 생각보다 커서 좋다.
샤워부스도 따로 있고
벽면 타일도 센스 있다.
벽 안쪽으로 음각된 샤워용품을
놓아둘 공간도 충분했다.
샤워할 때는 그래도 더운물이 나온다.
샤워기 옆 온도 조절 장치가 있는
보일러 같은 것이 장착되어 있다.
샤워를 마치고 침구 정리를 했다.
매트리스가 나에게는 조금 딱딱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데카트론에 가서
요가매트를 사자고 했지만
아내는 괜찮다고 했다.
사람마다 느끼는 건 다르다.
그걸 인정하면 된다.
이불의 두께는 적당했다.
겨울 건기를 나고 있는
치앙마이의 밤기온처럼 딱 좋았다.
덮고 있으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았다.
커튼을 젖혔다.
밤새 바깥 기온은 좀 쌀쌀했는지
창문 안쪽으로 물방울이 맺혀 있다.
이렇게 얇고 간단한 새시로도
불편함 없이 겨울을 나는
이곳 날씨가 부러웠다.
창문을 열자 수영장이 내려다 보인다.
앞 동 남향집은 벌써 해가 한가득이다.
동쪽으로는 기다란 사각형 모양의
수영장과 테이블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해가 낮아 수영장
수면을 비추지 못하고 있었다.
응달은 수영장 바닥 타일을 더 짙은
코발트블루로 만들었다.
깊은 바닷속 같이.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자주색 오키드 꽃이 줄지어 피어 있다.
그 분홍 혹은 보라 같기도 한 꽃잎이
수영장에 떨어져 떠다니는 장면은
보면 볼수록 조경사의
시그니쳐 나무 선택을 감탄하게 한다.
앞동 왼쪽으로 보이는 GYM에서
벌써 누군가가 Trade mill을 뛰고 있다.
시선을 더 멀리 던지면 자동차 광고판이
가리고는 있지만
저 멀리 산새가 웅장하다.
딱 보기에도 2천 미터는
가뿐히 넘을 높이다.
조금 더 명확하게 보이면 좋으련만
어디 가나 미세먼지가 문제다.
그래도 이곳은 올드타운 쪽보다는
공기질이 훨씬 낫다.
올드 타운을 걸어 다니다 보면 미세먼지와
스모그가 뒤섞여 목이 칼칼해진다.
빨리 중국처럼 오토바이를
전기로 바꾸어야 한다.
옷을 갈아입으려고 붙박이 장을 열었다.
제일 좋아하는 화장대 옆에 있는
붙박이장은 구성이 참 알차다.
벽 쪽으로 선반이 있어서 15킬로짜리
작은 여행가방들이 한 칸에
쏙쏙 들어간다.
장 안쪽 면적은 넓지는 않지만
이런 더운 나라에서는
충분히 지낼 만한 숫자의
옷을 걸 수 있다.
남아도는 쿠션들을 위칸에
올려놓아서 그렇지
수납상자를 준비하면
충분히 옷을 더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은 장이 필요하다.
고추장 된장뿐 아니라 장롱말이다.
계절 별 옷도 많고 두꺼운 이불부터
얇은 이불까지 필요한 것이 늘 많다.
미니멀 라이프가 안된다.
장롱이 필요하고 그걸 놓으면 방이
좁아지니 방이 커야 한다.
뚜렷한 사계절로 춥고 더운
온도차가 크니
집을 만드는 자재도 좋아야 한다.
더운물 찬물 다 잘 나와야 하고
냉난방도 잘되어야 한다.
필요한 게 많으니 늘 신경을 쓰고
열심히 일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경제가 발전하고 선진국이
되었을지 모르나
사람들은 늘 피곤하고 졸리다.
억지로 깨어있으려고 커피를 너무
사랑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말도 있다.
붙박이장 옆으로도 수납공간을 만들고
문짝 안에 전신거울을 달아 놓았다.
산시리의 디콘도린 디자이너도
열심히 일한 사람 같다.
방을 나와서 냉장고 옆을 지나
거실 겸 주방으로 나온다.
곳곳에 SAMSUNG 마크가 보인다.
냉장고, 안방과 거실 TV, 전자레인지,
심지어 도어 록까지……
어린 시절 SONY가 HIGH END
brand였던 옛날 사람에게
삼성 브랜드에 싸인 집에 살 것이란
상상은 쉽지 않은 것이었다.
도어 록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매일 아침 들르는
커피 가판대에 가기 위해서다.
5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A동 로비가 나온다.
전체적인 인테리어는
깔끔하고 따듯한 느낌을 준다.
파란색 수영장을 나무벽과
페브릭으로 감싼 소파가 주는
아늑함 속에서 바라볼 수 있다.
키 카드를 접촉시켜야만 열리는
풀사이드로 통하는 측문을 열었다.
수영장을 둘러싼 관목들이 파랑에서
초록으로 색의 온도를 훌쩍 건너뛴다.
POOL을 둘러쳐 있는 식물 중에서는
구미호의 여우꼬리처럼 생긴
붉은 잎을 가진 것이다.
꼬리가 아홉 개 보다 많이 달렸다.
정문 바로 앞에 세븐일레븐이 있다.
문 앞에 편의점과 커피숍이
있다는 것도 특별한 행운이다.
커피를 들고 오는 길에 천천히
GYM으로 올라가 보았다.
누가 그렇게 아침부터 뛰고 있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담하지만 천장이 높고 거울이 있어서
훨씬 넓어 보이는 체육관은
주로 밤에 간다.
Trade mill 3개, 자전거 1개, 가젤 1개,
등 운동할 수 있는 기구,
그리고 덤벨과 덤벨 벤치가 있다.
아담하지만 공기청정기, 에어컨 등 꼭
필요한 것은 다 있어서
매일 즐겁게 들리는 곳이다.
체육관 맞은편에는 공동 키친이 있다.
정말 조용한 곳을 찾을 때는
주로 이곳을 이용하는데
입주자들이 같이 모여서 요리교실을
하거나 소모임 등을 갖는 장소다.
조리도구와 키친 용품이
갖추어져 있어서
미리 신청하면 멋진 10인용 식탁에서
함께 식사할 수도 있다.
언젠가 주특기인 모닝글로리를 요리해서
이웃에게 대접할 날을 꿈꾼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