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조종여객기 시대
“여기 있는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말씀을 묻지 않을 수 없네요.
앞으로 이 아이들이 조종사라는 직업을 계속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인화와 자동화는 피할 수 없을 텐데요.”
곱슬머리에 상체가 발달한 40대 후반의 남자는 아이들의 선생님인지 학부모인지 알 수가 없었다.
눈 끝이 치켜 올라 모양이 머리모양과 잘 어울렸다.
학생들의 질문이 30분 정도 이어진 후였다.
캡틴Q는 답변하기까지 시간을 끌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 중에 보셨던 영화 『탑건』을 떠올려 주십시요.
사령관이 메버릭에게 하는 말을 기억하시나요?
‘너희 같은 조종사들의 미래는 정해져 있어. 곧 멸종되고 말거야’
그때 매버릭의 답변 기억하시나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그 답변을 저도 그대로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방향은 정해져 있습니다. 언젠가는 다가올 미래이고 그 시기가 문제일 뿐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적어도 2060년 이후가 될 것입니다.
그것도 급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조심스럽고 천천히 진행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이죠.
먼저, 실제 있었던 시도이지만 조종실의 최소 인원을 한 명으로 줄이려고 할 것입니다.
현업에 있는 조종사로서 말씀드리자면 지금의 항공기 조종석 시스템으로는 이 문제는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적어도 Siri가 작동될 수 있는 환경은 되어야 할 것입니다.”
Siri라는 말에 학생들의 큭큭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제가 미국에서 비행학교를 졸업하는 자리에서 학교장이 그런 말을 하더군요.
너희들이 기장이 될 때는 너와 개 한 마리가 함께 조종석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했죠.
너는 개에게 밥 주러 타고 개는 네가 아무 스위치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고 타는 거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29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첫 항공사에 입사하던 시절에는 항공 기관사가 있었던 보잉 747 클래식 점보가 점차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비행기를 젊은 기장들이 ‘쥬라직 점보’라고 부르더군요.
그렇게 조종석에서 3명이 일하던 시절이 끝난 지 거의 30년이 흘렀으니 이제 한 명 더 줄 만도 합니다.
하지만 크게 세 가지 벽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첫째는 사고율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획기적인 시스템의 혁신이 있지 않고서는 현재는 칵핏에 2명으로도 벅찹니다.
두 번째는 비용 문제입니다. 만약 그런 비행기가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만큼 항공기 가격이 높아질 것이고 항공사의 입장에서는 주판을 두드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어쩌면 조종사 두 명을 그대로 쓰면서 기존의 기재를 오래 쓰는 것이 목표하는 기간 내에서는 더 경제적일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는 법제화의 문제인데 무인 비행기의 안전이 확보되어야만 법이 마련될 텐데 자율주행 자동차와는 다르게 비용 문제가 크게 발생하기 때문에 시뮬레이션으로 대체가 가능할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만약 이 세 가지 허들을 모두 뛰어넘었다고 하더라도 다음 단계의 적용이 예상되며 이것은 많은 시간이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원격조종 시나리오입니다.
그러니까 조종사가 비행기에 직접 타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거나 회사에 출근해서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입니다. 이착륙 단계만 담당하게 되고 순항단계에 이르면 관제사에게 조종을 이양하게 되는 것이지요. 회사의 정비부서에서는 똑같이 생긴 비행기 모형이 연결된 비행편의 상태를 그대로 재현하게 되고 문제가 생기게 되면 정비사들이 모형에서 문제해결을 합니다. 그리고 처리된 데이터를 실제 비행기로 보내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죠. 조종사는 하루에 네, 다섯 편의 비행편을 맡아 이착륙을 원격 조종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식의 단계적 변화가 이루어지고 난 후 완벽하게 무인조종여객항공기 시대가 오려면 제가 지금 만나고 있는 이 친구들 시대까지는 조종사라는 직업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탐 크루즈의 대사처럼 NOT NOW입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내리쬐는 여름 햇살 아래 회색과 옥색이 섞인 듯한 바닷물이 짖은 채도를 띠고 있었다. 흰 콘크리트 기둥으로 만들어진 인천대교의 주탑들은 그래서 더 하얗게 빛났다. 21KM나 되는 다리가 바다 위를 달리고 있었다.
아파트 20층 높이의 주탑에서 뻗어 나와 다리를 붙잡고 있는 흰 케이블들이 오므려졌다 펴졌다 하며 지나갔다. 멋지게 휘어진 다리의 첫 번째 곡선에 접어들 때쯤 캡틴은 5년 전 동료 기장들과 항공기 무인화의 미래에 대해서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처음엔 고민하겠지만 결국 승객들의 선택이 조종사들을 쫓아낼 거야. 인천에서 LA까지 조종사가 모는 비행기는 좌석값이 300만원, 무인 비행기일 경우 100만원이라고 한다면 승객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MONEY TALKS EVERYTHING! BUDDY!” 그 말을 들은 누구도 반박하는 사람이 없었다.
인천대교의 북쪽으로 여객기들이 3도의 강하각을 그리며 활주로로 내려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