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개들의 고민과 함께한
하늘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일은 2022년 봄에도 계속되었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지만 코로나 상황은 동트기 시작인가 하면 또 다른 터널이 시작되는 경기도 북부의 외곽순환도로 같았다.
재능기부 형식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된 멘토링에서 가장 많이 만난 사람들은 대학의 항공운항과 전공자들이었다. 군 제대 후 다시 복학이 예정된 학생들은 이런 코로나 상황에서 파일럿이 되겠다고 이 전공을 붙잡고 학교로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다른 길로 접어들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미 졸업한 선배들은 조종사로서의 꿈을 접고 취업을 위해 다른 길을 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고 했다.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지 막막했다.
2020년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그동안 가장 빠른 조종사의 성공루트라는 중국의 메이저 항공사에서 일하던 베테랑 기장들도 회사로부터 복귀명령을 받지 못한 채 대기하다가 결국 계약해지 통보를 받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터널은 끝날 줄을 모르고 그 이름만 바뀌는 상황에서 이 길을 빠져나갈지 계속 달려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갈림길에 선 멘티들이 많았다.
멘토로서 여러 방면으로 리서치를 했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코로나 발생 이후 2년 이후에는 2019년 이전의 항공시장으로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새로운 변이가 등장하면서 아무도 그런 전망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과거에 있지 않았던 현상에 대해 전례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멘티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신빙성 있는 타임테이블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까지 자신의 상황이 그 세월을 견딜 수 있는지 따져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2년 정도의 코로나 회복과정과 1년 정도의 경력직들의 소진기간을 더해 나는 3년을 제시했다.
멘티들은 선선발 과정에 있거나 재학 중인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신입부기장의 리쿠르트 시장이 열리기까지는 항공시장이 회복하더라도 교육기간이 짧아 바로 현업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직
위주의 채용이 먼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신입조종사의 채용기회가 열리는 시기는 2023 상반기 이후가 되는 것이다.
2021년 하반기에 있었던 갑작스러운 대한항공 부기장 채용 소식은 사실 조종사가 되려고 준비하던 취준생들에게는 더욱 큰 혼란을 주었다. 이런 시기에도 채용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나긴 하면서도 실제로 그 관문을 통과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희망고문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포기할 만하면 돌아보게 하고 계속 붙잡고 있자니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개인별 재정상태나 졸업 전까지 남은 기간이 문제였다.
멘티 A는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항공운항과로 복학하려는 학생이었고 아직 졸업까지 2년 이상이 남은 상태여서 바로 복학해도 될지 아니면 어학연수, 아르바이트 등 다른 준비를 하면서 복학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었다. 코로나 회복시기에 대한 가이던스가 없다면 결정하기 어려운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멘티 B의 경우가 가장 어려웠던 멘토링으로 기억한다. B는 군에서 정비사로 일했다. 그리고 조종사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된다. 큰 결심을 하고 B는 제대를 결심하고 퇴직금을 모아 미국으로 떠났다. 비행학교에서 전력을 다해 자가용 면장을 비롯한 각종 취업에 필요한 자격을 취득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취준생이 되어 입사 지원을 하던 차에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그렇게 세월은 무심하게 가고 있었고 나이가 있어 더는 미룰 수 없던 결혼도 해야 했다. 그의 나이는 30대 후반이 되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의 아픔이 전이되어 먹먹한 마음으로 참으로 어렵게 멘토링을 이어간 기억이 난다.
단호하게 비행에 대한 미련을 접으라고 말한 적도 있다. 멘토 C는 명문대를 졸업한 공학도 출신으로 대기업에 입사해서 회사생활을 하다 파일럿이 되고 싶어 멀쩡히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멘티 B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비행학교에서 사업용 조종사까지 취득하고 귀국해서 항공사 입사를 준비하던 중 코로나 사태가 벌어졌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서 전직의 경력을 살려 또 다른 대기업의 핵심사업부문에 입사했다. 직장생활이 안정되자 마음 한켠에 접어놓은 날개가 다시 퍼덕거리기 시작했다. “언제쯤 채용시장이 다시 열릴까요?” 마흔이 되었어도 그는 꿈을 버릴 수가 없었다. 정말 비행은 마약과 같은 것일까.
국내의 항공전문인력 양성기관이나 미국의 비행학교를 알선하는 유학설명회를 들을 적이 있다. 조종사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다소 과대 포장된 미래와 가능성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장으로 근무하고 퇴직하면 몇 십억 대 자산가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등 황당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누구나 쉽게 중국으로 진출해서 일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학생 유치를 위한 비즈니스적 입장인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미 지나 온 길을 돌아볼 수 있는 경험자인 멘토의 입장에서는 멘티들에게 긍정적인 측면만 부풀려 부각시킬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파일럿이라는 직종의 특성과 장단점을 충분히 제공해서 한 사람의 인생과 미래가 달린 진로에 대한 결정을 보다 신중하게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만 했다.
가장 반가운 멘티들은 역시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젊은 멘티들이다. 그들에게는 고민하고 상황을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여학생들의 경우에는 오히려 부기장을 지원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어린 상태가 아니냐며 졸업을 미루고 휴학하면서 취업 전까지 조종사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다른 활동들은 무엇이 있는지 문의할 정도였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그들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매우 전문적인 일을 하는 스페셜리스트의 약점이 이번 코로나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났다. 조종사는 비행기가 날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9/11, SARS 등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상황이 단기적인 상황에서는 이런 생각까지 확장되지 못했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는 과연 2019년 이전처럼 세계화가 지속적으로 확장해 갈 것인가 의심하게 만들었다. 각국은 문을 걸어 잠그고 재지역화가 진행되면서 관광과 수입에 의존한 국가들은 큰 위기를 맞이했다. 화물의 이동은 오히려 증가했다고는 하지만 사람의 이동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조종사, 항공기 승무원이라는 직업의 특수성은 이러한 질병사태가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일상이 된다면 이 직업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의 전공을 항공기 조종으로 하는 운항학과로 정한다는 것은 조종사의 비전에 대해 굉장히 낙관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실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위험한 배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누구나 위험이 닥치면 모든 경우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조종사가 될 수 있는 방법 중에 굳이 전공을 하지 않아도 될 수 있는 방법도 있기 때문에 전과나 편입을 고려하는 멘티들도 있었다. 실제로 나와 가까운 기장들의 경우 그들의 전공은 체육학과, 생물학과, 법학과, 유전공학과, 자동화공학과 등 실로 다양하다.
2022년 6월이 되면서 인천공항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전무했던 검은색 전광판에 이착륙 항공기들의 편명이 리스팅 되고 출국을 위한 긴 줄이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 상하이의 봉쇄가 끝나고 연말로 가면서 일본의 공항들이 다시 오픈했다. 티브이에서는 해외로 출국해서 찍는 프로그램들이 늘어났다.
10월에는 인천공항에서 대규모의 항공업 JOB FAIR가 있었다. 이곳에서도 멘토링을 지원했는데 단시간에 많은 멘티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에어프레미아‘라는 신생항공사의 신입부기장 모집공고가 나왔기 때문에 취준생들은 다시 한번 흥분했었다. 에어프레미아는 국제선 운항에 필요한 경력직 부기장을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 누구도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하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찌 되었건 신입 조종사에게 기회가 열린 것은 잘된 일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멘티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은 여러 번 멘토링을 요청했고 꼭 둘이 같이 상담을 진행했다. 모두 입사할 수 있는 수준의 자격을 모두 갖추고 있었고 비행시간은 300시간 정도였다. 코로나 기간에 경쟁력의 갖추기 위해 제트 레이팅까지 취득하면서 항공사 입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삼십 대 초반의 성격도 밝고 긍정적인 친구들이었다. 매우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비행지식을 갖추고 있어서 준비해온 질문의 수준에 놀라기도 했다. 에어프레미아의 신입부기장 모집공고가 나온 후 그곳을 지원한 두 멘티와 지속적으로 진행상황을 주고받았다. 누구보다도 입사에 성공하길 진심으로 바랐고 필기시험과 시뮬레이터 평가를 거쳐 최종면접심사까지 진행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 면접에서 그 도전은 멈추고 말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가능성을 충분히 증명했기 때문에 조금만 더 상황이 나아져 채용시장이 넓어진다면 그들은 문제없이 어느 항공사라도 입사할 수 있는 재원들임이 분명하다.
멘토로서 그들이 왜 최종면접관문을 넘지 못했는지 고민해 보았다. 최종 합격된 지원자들의 연령대가 30대 중후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신생항공사의 입장에서 젊은 자원들은 경력을 쌓은 후 더 좋은 조건과 이직의 기회가 있다면 회사를 떠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은 그 회사의 기장들과의 코디네이션을 고려함과 동시에 이직을 하지 않고 꾸준히 부기장 생활을 한 후 기장으로의 승격을 염두에 둔 인재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일본여행의 봇물이 터져 투어가이드가 부족하고 유럽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새해에는 항공여행시장이 빠르게 회복되어 재능 있는 인재들이, 그동안 자격을 갖추고 비행시간을 쌓느라 모든 열정과 시간과 금전적 투자를 아끼지 않은 그 젊은 날개들이 마음껏 날개를 펴고 날아오를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