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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dgemaker Nov 01. 2020

똑똑한 김대리는 왜 형편없는 결정을 하는가

밀그램의 아이히만 실험과 대기업 관료제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좋은 학벌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팀이 회사의 전폭적인 지지와 엄청난 자원을 사용하면서도 형편없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경우를 종종 본다. 사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할 때는 제법 통찰력 있는 생각으로 자신만의 의견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러한 결과물을 내놓는 걸 보고 구차한 변명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얼마 전 밀그램의 아이히만 실험을 다시 보면서 구조적 시스템의 문제가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늘은 이와 관련해서 관료제 사회에서 개개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인간이 어떻게 바보가 되는지 스탠리 밀그램의 "아이히만"실험의 예를 통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권위에 대한 복종, 스탠리 밀그램의 아이히만 실험


밀그램과 실험에 참여한 학생들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은 다음과 같다. 기억과 학습이라는 연구에 참가하고자 하는 희망자를 모집하고 제비뽑기를 통해 그중 한 명은 선생님의 역할을, 다른 한 명은 학생의 역할을 명명한다. 실험에는 피험자 두 명과 실험 담당자가 참가한다. 제비뽑기로 역할이 정해지면 전원이 함께 실험실로 들어가고, 학생 역을 한 실험자는 전기의자에 손이 묶인 채 앉게 된다. 선생은 다른 방에 있는 학습자가 학습검사를 통해 올바르게 응답을 하는 경우 다음 항목으로 넘어가고, 틀린 답을 말하는 경우 전기충격을 가하며 틀린 단어가 많아질수록 전기충격의 강도를 높여간다.(예를 들어 15 볼트부터 시작해서 틀릴 때마다 15 볼트씩 전압을 높게 해서 마지막으로 450 볼트까지 전압을 높여가는 방식이다.)


사실 이 실험에서는 선생만이 진짜 피실험자이다. 전기 충격을 당하는 학습자는 고용된 연기자로, 실험자는 학생이 정답을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가하라는 지시를 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 실험자는 실험자의 지시에 따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거부한다면 어디까지 거부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놀라운 것은… 실험자의 지시에 너무나 기꺼이 따른다는 점이었다. 실험의 결과는 놀랍고도 당혹스럽다. 많은 피실험자들이 스트레스를 느끼고 실험자에게 항의를 하지만, 상당수의 피실험자가 전기충격기의 마지막 단계까지 계속했다." -권위에 대한 복종 중-


밀그램의 실험에서 40명의 피험자 가운데 65퍼센트에 달하는 26명이, 학생 역을 한 사람이 고통에 몸부림치다 기절한 것처럼 보임에도 최고 단계인 450 볼트까지 전기 충격을 가했다. 그리고 이 결과는 이어지는 국가와 세대를 초월한 후속 실험에서도 동일한 결과를 나타냈다.


이 정도로 사람이 잔인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단지 명령을  받고 집행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면서 명령을 내리는 실험 담당자에게 책임을 전가했을 것이다. 실제로 선생 역의 피실험자 중 많은 사람이 실험 도중에 주저하거나 갈등을 보였지만, 실험 담당자에게 뭔가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은 실험 주체가 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납득하는 표정으로 실험을 계속했다.


첫 번째 실험을 통해서 밀그램은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웠다. 그렇다면 비이성적  행동에 관여할 때 "권한을 가지고 자신의 의사로 무언가를 실행하는 자유의지의 발현 정도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까?" 밀그램은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 두 번째 실험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선생 역할을 두 명으로 늘리고 선생 역 중 한 명은 미리 연기자를 섭외하여 전압을 가하는 버튼을 누르는 역할을, 나머지 한 명은 실제 피실험자를 모집하여 대답이 맞는지 틀리는지 판단하여 전압 수치를 읽는 역할을 맡기고 시작했다. 첫 번째 실험보다 체벌에 관여된 책임이 축소되자 450 볼트까지 실험을 계속한 피 실험자는 40명 가운데 37명으로 93퍼센트까지 늘어났다. 이를 통해 밀그램의 가설이 검증된 것이다.


반면에 책임전가를 어렵게 하면 복종률이 낮아졌다. 예를 들어 실험 감독자 중 한 명은 학생이 괴로워하고 있기 때문에 체벌을 중지하라고 이야기하고, 다른 한 명은 상관없이 체벌을 이행하라고 지시했을 때는 더 높은 전압을 가해서 실험을 진행시킨 피 실험자가 한 명도 없었다. 

법정에선 아돌프 아이히만
아돌프 아이히만 : 2차 대전 중 나치의 첨병으로 600만 유대인 학살의 선봉장이었다. 그가 문서 한 장에 사인할 때마다 유대인 수천 명이 독가스실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는 전범재판 과정에서 자신은 상관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시킨 대로 했을 뿐 전혀 잘못한 것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은 나치 독일의 잔인한 유대인 학살의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시작했다.

위에서 시켜서 대량 학살을 저질렀다고 말하는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보면서 권위에 대해 복종하는 인간 심리에 대하나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유대인들을 죽이는 독가스를 살포한 사람들은 히틀러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일반 시민이었다. 



나치 독일이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할 때 독일 국민 개개인의 이성과 양심은 왜 작동하지 않았던 걸까? 여기서 밀그램의 실험과 같이 많이 이용되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책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아렌트가 예루살렘에서 본 아이히만은 책상 앞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일을 너무도 성실하게 처리하는 관료에 불과했다. 그에게는 어떠한 괴물의 모습도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한나 아렌트는 개개인의 독일의 국민성과 이데올로기에서 찾는 대신에 관료제적 분업화에 주목했다. 유대인 명부 작성, 검거, 구류, 이송, 처형에 이르는 과정을 세세하게 분업화했기 때문에 시스템 전체의 과정에서 개개인의 책임 소재는 애매해지고 대신 이러한 책임을 전가하기에 굉장히 수월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참고 : 밀그램 실험과 조작된 연구

참고 : 인간이 얼마나 쉽게 복종하는가, 실험해봤더니

참고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그래서 김대리는 왜 형편없는 결정을 했는가?

대기업 관료제의 구조

밀그램의 실험을 보면 회사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업무가 세세하게 분업화되고 결과물에 관여하는 범위가 줄어들수록 자신의 선택이 합당한 결정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권위에 쉽게 복종하게 된다. 모든 책임은 리더가 지고 개인의 역할은 한정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더라도 반기를 들지 않는다. 업무체계가 세분화된 대기업에서, 똑똑하고 전문적인 사람들이 모인 팀임에도 때때로 형편없는 결과물이 나오게 되는 이유다. 이와 같이 관료제적 시스템에서는 히틀러의 사례처럼 리더의 목표 자체가 잘못된 경우 모든 조직이 함께 침몰할 수 있는 부작용이 있다.  


관련해서 밀그램의 실험을 다시 살펴보면 우리가 보다 이성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실험에서 감독자의 다양한 의견이 있었을 때 대부분의 피 실험자는 체벌을 중지했다. 책임을 온전히 타인에게 전가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결정 중 자신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짐을 인지할 때 피실험자는 개인의 도덕적 가치관에 따라 이성적인 판단을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인은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다양한 방안중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질 때는 이성적인 선택을 하게 되지만,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일방적인 권위에 복종해야 될 때는 이성적 사고를 내려놓고 단편적인 일에 집중하게 된다. 회사가 구성원 개개인이 전문성을 발휘하기 원한다면 선택의 권한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개별 구성원에게 나눠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분업이 표준화되는 경우 개인은 자신이 하는 일이 잘못되었는지 조차 자각하지 못 한 채 거대 시스템에 가담하기 쉽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시스템 안에서 행해지고 영향을 주게 될지 시간적, 공간적으로 넓은 시야에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작은 함정이 하나 숨어있는데. 자유는 선택을 포함하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다. 관료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선택과 책임을 개인이 가져가는 것을 관료주의 시스템에 대항하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에 개인이 이를 감내하기가 쉽지 않다. 쉽게 말하면 "결과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결과물을 비판하는 것"이 관료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에 더 쉬운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일에 대한 오너쉽을 갖는 것과 책임을 회피"하는 것의 인지부조화 사이에 있을 때 더욱 심해진다.(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남을 비판하며 책임은 가져가지 않으면서 자신이 주체적인 삶을 산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유를 갈망함과 동시에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선호한다. 회사는 개인을 부품처럼 쓰기 위해서 관료주의를 만들어 직원들이 시스템에 종속되기를 원하고 개인은 책임으로부터의 도피를 선택하며 이를 따른다. 반면에 시스템적 유연성과 자유를 갈망하고 책임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인의 용기가 만났을 때 우리는 이성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삶의 가치를 어느 쪽에 두느냐는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삶이 더 주체적인 삶이냐 하는 것은 인류 역사가 이를 충분히 반증해준다. 샤르트르가 말한 앙가주망의 개념처럼 우리는 사회와 조직을 이루는 공동의 아티스트이다. 반복적인 일을 하다 수명이 다하면 교체되는 기계부품과 같이 살지 않기 위해서 자유를 두려워하지 말고 주체적인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무언가 잘못된다고 느껴지면 용기를 내어 이건 잘못된 결정에 반기를 들 수 있어야 한다. 


앙가주망(engagement) : 인간이 사회·정치 문제에 관계하고 참여하면서, 자유롭게 자기의 실존을 성취하는 일. 사르트르의 용어임. 사회 참여. 현실 참여. 자기 구속(自己拘束).



참고 : [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자리가 무능한 사람을 만든다는데

참고 : 자유로부터의 도피

참고 : 선택에 따른 불안과 책임은 인간의 숙명

참고 : 앙가주망_장폴 사르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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