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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dgemaker Jan 09. 2023

사랑하는 일을 하라는 이상과 허구 사이

일에 대한 예술가적 고뇌 그리고 회사원

사진출처 : https://news.nate.com/view/20221112n07388?mid=e1200


일에 대한 예술가적 고뇌 그리고 회사원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시기를 계속 보냈던 것 같다, 랩을 할수록 '내가 랩을 사랑하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건 맞는 것 같은데, 랩에 불같이 뜨거워질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다, 전 도전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다, 참가 자체가 주는 깨달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영지-

얼마 전 쇼미더머니라는 프로에서 래퍼 이영지가 랩에 대한 사랑과 고민을 토로하는 장면을 보았다. 비단 래퍼뿐만 아니라 수많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일과 창작물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한다.


예술가들은 현대사회의 직업군중에 목적지향성이 가장 강한 사람들이다.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 죽을 때까지 자신의 창작물을 통해 내면의 울림을 이야기로 남겨야 하는 소명의식이 그들을 이끈다.


그들을 이끄는 동인은 자본주의 세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인생이라는 배를 자본주의 바다 침몰시키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조타해나가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사실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겪는 일(창작물)에 대한 고뇌는 자본주의 최전선에 있는 회사원들에게도 다르지 않게 적용될 수 있지만, 회사원들은 삶의 목적을 "더 많은 연봉과 더 높은 직급"으로 치환해 버리면 깔끔하게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에 예술가들만큼 존재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멍하게 하루를 보내도 때가 되면 월급이 나오고 인생의 목적은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직급을 향해 달려가면 그 자체로 인생이 보람차게 느껴지게 된다.


자본주의 세상이란 그런 것이다.


참고 : 이영지, 화제의 '쇼미11' 지원…"내가 랩을 사랑하나?" [RE:TV]




"사랑할만한 일"이라는 단어 안에 숨은 이중성과 르상티망의 감정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으십시오. 당신이 연인을 찾을 때에도 그렇듯이 당신의 일에서도 이 말은 변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일은 당신 삶의 커다란 부분을 채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이 위대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 스티브 잡스(Steve Jobs) -

스티브 잡스는 우리에게 연인을 찾을 때처럼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찾으라고 이야기했다. 돈이 목적이 아닌 사랑하는 일을 기준으로 일을 찾아나가라는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회사원들에게 사랑하는 일을 찾으라는 말은 큰 울림이 될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중성이 숨어 있다.


첫째로, 사랑이라는 말은 노동과 보수를 분리시키킨 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감히 금전과 관련지어 이야기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랑할만한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노동은 정당한 보상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건 없는 사랑의 행위로 치환되기 때문에, 노동의 실제 가치를 깎아내리거나 노동자를 비인간화시켜버릴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자신이 제공하는 노동을 스스로를 위한 일이라고 믿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곤 르상티망의 감정으로 자기 합리화하게 된다. "저 일은 돈을 많이 받지만 사랑할만한 일이 아니야 그러니까 내가 지금 적은 보수에도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이 충분히 더 가치 있는 일이야"와 같은 합리화로 오늘도 수많은 박사 과정 학생들은  적은 보수에도 학문적 열정을 쫒기 위해 좀 더 쉬운 돈벌이 기회를 포기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여있다.


르상티망 : (ressentiment)은 원한 (resentment)의 프랑스어 번역이다. 철학과 심리학에서는 실존주의 철학자들에게 특별히 관심 있었던 개념이다. 실존주의자들에 따르면, 좌절감은 좌절감의 원인, 즉 자신의 좌절에 대한 책임 부여로 확인되는 것에 대한 적대감이다. "원인"에 직면한 약점이나 열등감, 그리고 질투심은 불만의 원인을 공격하거나 부정하는 거부/정당화 가치 체계 또는 도덕성을 만든다. 이 가치 체계는 선망의 원천을 객관적으로 열등한 것으로 식별함으로써 자신의 약점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며, 분개한 사람이 자신의 불안정과 결함을 극복하지 못하게 하는 방어 기제로 작용한다. 자아는 자신을 보잘것없는 것으로부터 단절시키기 위해 적을 만든다.

 

둘째로, 사랑이라는 말은 그 단어 자체로 사랑할만한 일과 사랑하면 안 되는 일의 분별을 만든다. 니체의 주인도덕 노예도덕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주도권이 많을수록 일에 애착을 갖게 되기 때문에, 지배구조의 최상위에 있는 사람들 일수록 주도권이 높기 때문에 자신의 일을 사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스티브잡스가 사랑했던 일들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사랑하면 안 되는 일에 동원되고 갈려나갔는지를 생각해보면 잡스가 말한 사랑할만한 일이라는 건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창의적이고, 유명하고, 지적인" 사랑할만한 일들과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차별점이 없는" 사랑할만하지 않은 일 같은 것들 말이다.


참조 : In the Name of Love(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라는 주문의 허구)


사랑과 금전 사이


인간이 인간으로서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 사랑하는 일을 찾는 여정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 모두는 돈과 높은 지위가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삶의 목적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랑 없는 일에 인생을 허비해서도 안 되지만, 사랑이라는 말로 노동의 가치가 폄하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자신이 제공하는 노동의 가치를 스스로 정의하고 그에 기반한 마지노선을 알 고 있어야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사랑의 대상을 객관화하기 위해 생산물로써의 가치와 조직에 줄 수 있는 영향력을 분석해야 한다. (간단한 방법으로는 내가 제공하는 노동물을 고용주의 입장에서 얼마 정도의 가치를 주고 구매할 것이지 생각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콩깍지가 벗겨진 상태에서 대상에 대한 객관화가 된다면 노동의 가치를 산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내가 속해있는 회사와 조직의 비전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목적이 일치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시스템으로 이뤄진 거대한 조직 안에서 세분화된 단위일만 본다면 의미 없을 수 있지만, 내가 속해있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일의 단위들은 유기적으로 얽혀있고 그 시스템이 향하는 목표가 내가 사랑할만한 것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루고자 하는 이상과 그 이상을 위해 사소한 행위들을 연관시키는 종교적 특징과도 유사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일을 하라는 이상을 따르기 전에, 딴지를 걸어보자.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라"는 말이 가진 이중성과 자본주의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도구에 반항해보자. 만약 우리가 모든 일을 우리들의 주도성 아래 일로써 인정할 수 있다면 사랑하는 일의 적절한 한계와 마지노선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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