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ukui Aug 10. 2017

로스쿨 1L

끝과 마무리는 다르다는 것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1L이 끝났다. 마지막 시험을 마친 후 차에 시동을 걸고 캠퍼스를 벗어나던 날이 생각난다. 홀가분하고 나 자신이 얼마나 기특하던지. "욕봤다. 욕봤어." 혼잣말을 하며 자동차 창문을 끝까지 내렸다. 남들 시선이 뭐가 중하리, 내가 지금 그 악명 높은 로스쿨 1학년을 마쳤는데. 늘 하던 데로 스피커 볼륨을 27에 맞추고 집까지 가는 길 내내 Ayokay 의 Kings of Summer를 반복 재생했다.


누군가는 그깟 대학원 일 년 마친 게 뭐 대수라고 남들 다 하는 거 너도 한 거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25.5 년 내 인생을 통틀어서 느껴본 가장 큰 성취감이었다. 살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빨리 끝내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했지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적은 없었는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만둘까' '정말 잘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을 의심하고 또 의심했던 기나 긴 9개월의 여정이었다.


지난 두 학기 동안 난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버렸을까.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당장 보스턴을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에 짐 싸랴 집 청소하랴 정신없이 한국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떠나고 나면 생각정리가 쉬울 거라고 믿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시간이 많을수록 생각을 많이 한다. 반면 바쁜 삶을 사는 사람들은 기필코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어쩌면 여름 두 달 반이면 멘탈 회복과 생각 정리를 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서였을 수도 있다.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도착하자마자 이틀 후면 중국으로 떠나야 하는 촉박한 일정 덕에 급하게 사람들을 만나 해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을 일일이 다 만나려다 보니 이틀의 시간은 너무나도 부족했고, 결국 대충 안부만 물을 정도의 짧은 만남들을 몇 차례 가지고는 중국 북경으로 떠나게 되었다.



막상 지난 일 년을 정리하려니 어디서부터 글을 써 내려가야 할지 모르겠다. 이래서 사람들이 일기를 쓰는가 싶다. 당장 어제 있었던 일도 가물가물 한데 어찌 일 년의 여정을 한 편의 글로 정리할 수 있을까.


먼저 로스쿨 입학 시기부터 되짚어본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착각이었다. 로스쿨은 애초부터 내 꿈이 아니었다.  나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로스쿨에 가기로 결심을 했다. 그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 내가 오랜 시간 고민하고 기도하며 선택했던 길이 로스쿨이었을 뿐이었다. 사실 일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내가 어떤 분야에 종사하는 변호사가 될 것인지 조금도 가늠할 수가 없다. 여기서 드러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착각은 목적지가 뚜렷하면 앞으로의 여정이 순탄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인 것이다.

 

삶의 목적이 뚜렷하기 때문에 기도하기를 멈추는 것은 방향 잃은 나침반을 의지하고 길을 걷는 것과 다름이 없다.


목적지를 분명히 안다는 것은 말 그대로 목적지가 어디인지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었다. 정말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목적지를 아는 것 외에 99%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곳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 가는 길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났을 때는 어떻게 넘어설 것인지, 어느 시점에서 쉬어야 하는지, 어느 시점에서 참고 기다려야 하는지, 어느 시점에서 극복하고 밀어붙여야 하는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시작하는 사람은 결코 앞에 다가올 시련들을 얕보아서는 안된다. 물론 이 또한 경험을 한 후에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는 9 개월이라는 시간을 깨달음 없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꾸역꾸역 버텨내기만 했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지 싶지만, 흔히 말하는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아쉬운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내가 다시 기도를 시작한 것은 고작 열흘 전이다. 학기가 끝난 지 두 달 반이 지났는데 이제야 1학년을 마무리 짓는 기분이 드는 것은 아마도 내가 끝내는 것과 마무리 짓는 것의 차이를 알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오늘 할 일들에 쫓겨 살다 보면 오늘의 감사와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매일 을 오늘만 열심히 살다가 보면 언젠가 삶을 돌아봤을 때 그래도 열심히 살았구나- 안도하게 된다. 이력서에 한 줄씩 늘어날 때마다 뿌듯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매일 오늘만 만족하며 살다가는 놓쳐버리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모르는 것이 많은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고 산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지식의 견해가 넓어지고 깊어질수록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은 사람인지에 대해 성찰했다고 한다.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달려왔는지 모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는 벙법도, 알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여정 동안 나를 스쳐가는 모든 좋은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은 확실하다.


새 학기가 시작하기 이 주 전인 이 시점에서 다시 마음은 차분하게, 생각은 단순하게,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으로 내 나침반을 고치려 한다. 처음 가는 길이라 조금 돌아왔다 생각하고, 초심으로 돌아가되 더 겸손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한 발짝씩 걸어가자. 어찌 되었든, 지난 일 년 동안 정말 정말 고생 많았다. 욕봤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