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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정숙 Mar 20. 2018

자살시도자의 변명

얼마전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았던 두 명의 환자는 공통점이 있다. 가스 배관에 노끈을 묶어 목을 맨 92세 할아버지, 경운기 의자 뒤 지지대에 천을 묶어 목을 맨 70세 할머니, 두 고령의 환자는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었다.  죽고자 스스로의 몸을 자해한 자살시도자인 것이다.

“가만 계셔도 돌아가실 날이 얼마 안남았을텐데 왜...” 모두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노인자살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뉴스를 본 적 있는데 실제로 우리병원 응급실로 실려오는 자살시도자 중에 고령환자가 꽤 있는 편이다. 외로워서, 아파서, 괴로워서, 배고파서 방바닥에 널려있는 혈압약 당뇨약을 모아서 드시거나 끈을 구해 목을 맨다.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이 전체 자살률보다 2배 높다니...아무리 나이가 많이 들어도 단 하루의 생이 살 의미가 없다면 죽고자 하는 강열한 열망으로 바뀌는 것 같다.

나는 올해부터 응급실 기반으로 한 자살시도자 관리를 하고 있다. 관리란 말은 실제 하는 일에 비하면 너무 거창하고 자살재발방지를 위해 정신건강상담센터 연계를 해서 사회안전망을 확보하자는 취지로 사회복지사가 개입한다.

자살시도자가 오면 응급실에서 전화가 온다. 실제로 내 근무중에 자살시도자를 면담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들은 대부분 퇴근 후인 컴컴한 저녁이후 시간이나 휴일에 죽으려고(?) 한다. 상황이 심각해서 3차병원으로 옮겨졌거나 중환자실에 입원하거나 사망해서 영안실로 내려가는 환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자살시도자는 자신의 마음이 들킬까 두려운듯 얼른 자의 퇴원을 해버린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응급실에서 자살시도자 명단을 받는데 기록을 훑어보니 자살시도 방법이 다양하다. 목맴, 번개탄, 투신, 손목자해, 약물중독... 의학전문가가 아니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목맴, 번개탄, 투신이 손상위험율이 높은 것으로 보였다.

그들은 거의 충동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데 특히 손목 자해나 약물중독은 미리준비하기 보다는 술을 마신 상태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것 같다. 약물 중독은 탈취제나 락스나 세제같은 중독물질을 음독하거나 혈압약,당뇨약, 수면제 같은 약 종류를 많이 먹는데 주로 청소년, 20대, 노인분들이 시도한다.

자살시도자는 간절하게 죽고싶은 열망으로 자살을 시도했더라도 살아났을때 살았다는 안도감,  '양가감정' 교차한다. 또 수치심, 실패감, 자괴감, 불안감까지 스며든다. 남들이 자살을 시도한 것을 알까봐 두려워하고 가족간 갈등도 심해 더 고립된 생활을 한다.

그래서 자살을 시도한 것만으로도 고위험 군으로 분류된다. 실제로 자살 사망자의 50%가 이전에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하고 자살시도와 자살사망간의 시간은 1년이내가 54%로 가장 많다고 연구되었다.

정말 그 연구를 뒷받침(?) 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다리에서  낙동강물로 투신하여 사망한 채로 응급실에 실려온 여성이 있었다. 깜짝 놀랄 일은 꼭 1년전 그 여성은 다리 밑으로 뛰어내렸었다. 허리가 부러져 당시 정신과 협진이 가능한 3차 병원으로 옮겨 허리 수술을 했다고 들었다. 그토록 간절하게 죽고 싶었던 이유가 뭘까.

평소 우울증이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자살을 시도한다고 추측하지만 실제로 평소 자살을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충동적으로 자살하는 확률이 높다고 한다.

어제는 의도적으로 락스를 여러 모금 마신뒤 제 발로 응급실을 찾아온 20대 여성이 있었다. 임신초기 상태라 내시경적 치료도 할 수 없었다. 꼭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가라는 권고를 듣고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며칠 뒤 혹시 정신과 상담받으러 갔나 싶어 전화했더니 언니가 전화받는다.

"괜찮아요, 동생 잘 지내고 있어요. 상담센터, 정신과 갈 필요 전혀 없어요. 모르고 먹었는걸요 뭐!!"

전화로 만나던 직접 면담을 하던 나를 스쳐지나가는 자살시도자가 제발 자살의 역학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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