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앞둔, 2016년의 끝자락, 겨울은 내게 말했다. 2016년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기대하던 월요일 플로리다에서의 겨울 여행을 앞두고, 생각지 못한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이십여 년 넘는 삶 속에서 가장 끔찍한 날들이 아니었나 싶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을까 차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당시 난 CPT라는 학교에서 승인한 비자의 형태로 대학교에서 금요일 오후, 토요일이면 수업을 하루 종일 들으며, 평일에는 학교 선생님으로 풀타임 일을 하고 있었다. 나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일을 했었고, 아무 문제도 없었기에,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이 갑자기 가을학기가 끝나는 시점에, 정말 하루아침에 더 이상 비자를 줄 수 없으니 새로운 학기의 시작하는 날로 2주 안에 미국에서 나가라고 했다. 세상에 그런 날벼락이 있구나를 20대 초중반 느껴보았다. 미국에서의 1년 넘는 삶을 정리하는데 겨우 2주라니, 집이며 차며,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도 없었다. 얼마나 울고, 또 울었던지 그때의 기억을 되돌리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집에는 온통 빨간딱지가 붙어있는 듯 괴로웠으며 감당하기 힘들었었다. 무엇을 하든 눈물이 났고, 어떻게 무엇보다 해야 할지를 몰랐다. 아무리 찾고 찾아도 길은 없었으며, 애원하고 또 애원해도 답은 오지 않았었다. 보이는 것은 두 가지밖에 옵션뿐이었다. 하나는 한국행이었다. 무에서 와서 무로 돌아가는구나. 너무 어이가 없어서 울고 또 울어도 울음밖에 나오지 않았고, 참 서러웠다. 이런 마음으로 플로리다에 가는 게 맞는지 수천 번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 갈 것 같아서 일단 가기로 마음은 먹었다. 지금 이 순간이 미국에서의 나의 삶의 끝이라면, 마지막 여행은 기억 속에 그리 나쁘지만은 않으니까 말이다. 또 하나는 당시 같은 상황을 겪었던 사람들과 함께 조금의 정리의 시간을 갖고자 다른 기관으로 학생 신분을 옮기는 것이다.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던 나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학원 등록을 결정을 했고, 그 과정도 몇십만 원의 돈과 시험 성적, 재정증명을 하는 등 돈과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어이없고, 어떻게 그런 일들이 내게 벌어졌을까 싶다. 박사 종합시험에 떨어지면 간혹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내 잘못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삶은 그렇게 바뀌고는 한다는 것을 어쩌면 처음으로 알고, 배웠을 수도 있다. 나뭇잎이 흔들리고 싶어서 흔들리겠는가 바람이 부니까 흔들리지. 참 끔찍한 시간들을 견디고 견뎌 여기까지 온 것이었는데, 참 허망했다.
올랜도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너무 멋있었다. 2007년 도쿄의 디즈니랜드가 떠올랐고, 2013년의 싱가포르의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생각났다. 너무나 행복해야만 한 여행이었지만,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하루빨리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고, 돌아오자마자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뛰고 또 뛰었다. 주변의 여러 기관에 연락하여 CPT의 가능성을 미팅하기도 했고, 학교에서는 인수인계 등 여러 가지의 일이 겹쳤다. 그때, 참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전화하고 또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일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한 마지막 날,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Today is the last day. I am sorry, but I have no choice. I look forward to seeing you again." 1교시 아이들은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안녕을 고했다. 그렇게 작별의 시간을 만들고 있던 8교시쯤, 몇 천 불의 수업료를 올려 받은 다음 다시 CPT를 준다는 메일을 받았다. 4주 동안 그렇게 피를 말리더니 결국은 다시 CPT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선택은 없었고, 계약기간까지는 꼭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난 5월 2일까지의 CPT를 받았고, 그때는 6월 말까지 연장될 수 있다는 말을 했었고, I-20에도 적혀있었다. 피 말리는 4주였으나, 정말 거센 비바람과 함께 모든 것이 원래 자리대로 잔잔하게 돌아왔다. 만약에 그때, 먼 훗날 이렇게 하루아침에 피 말리는 일이 한 번 더 있을 줄 알았다면 난 지난겨울 이 미국의 인연을 잘라버렸을 텐데, 그때 나는 내가 겪을 또 한 번의 폭풍우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2017년 하고도 1월 중순이 되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었고, 뭔가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