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 루피아 Rupiah
https://www.hankyung.com/thepen/article/66109
주한 인도네시아 관광청 대표이자 대학원 선배인 박재아 대표는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인도네시아에 세계 최대 예수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공유했다. 글에는 인도네시아 동부 끝에 있는 파푸아 주에 150미터 높이의 예수상이 세워진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글을 본 사람들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에 예수상? 인도네시아에 예수상을 세울 만큼 기독교 신자가 많아?’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인도네시아에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기독교 신자가 있다. 총 인구수에 비해 비율이 낮을 뿐이지, 숫자로 따지면 기독교 신자가 약 2500만 명이나 되고, 동남아 지역에서 필리핀 다음으로 그 숫자가 많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인도 다음으로 4위를 차지하고 있다.
필자는 이 글을 읽은 후, 인도네시아 기독교에 관심이 생겼다. 인도네시아의 인구 분포 지도를 살펴보면 파푸아 주와 함께 말루쿠, 술라웨시를 비롯한 동부 지역에 기독교 비율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인도네시아의 기독교 뿌리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12세기 무렵, 처음으로 마태복음이 인도네시아어로 번역됐지만, 전체 성경이 번역된 것은 17-18세기 이후부터다. 인도네시아에서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두 가지 계기로 이루어졌다. 과거, 말루쿠 지역과 그 근처에는 무슬림들과 토속 신앙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종종 두 세력간에 충돌이 있었다. 이 지역에 포르투갈이 식민지를 세웠을 때, 총독부가 기독교로 개종한 현지인들을 보호한다는 것을 보게 된 토속 신앙자들이 기독교로 향하기 시작했다. 파푸아 지역은 이와는 다른 사연을 갖고 있다. 이 지역에는 처음부터 무슬림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유럽 선교사들이 파푸아 섬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시작한 것이 19세기 중순부터다. 그러다 보니 파푸아 주에서 기독교 역사는 그다지 길지는 않지만, 훨씬 평화롭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의 8-9%만을 차지하는 기독교 신자가 무시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 인구의 87%는 이슬람교이지만, 국교가 이슬람교는 아니다. 다민족 다종교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과 함께 기독교도 국교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 인도네시아 정부의 사회통합 정책과 연관되어 있다. 그 정책 중 하나는 초대 대통령이었던 수카르노가 처음 제시한 헌법의 기본 원칙인 ‘판차실라’다. 판차실라는 고대어로 5개의 원칙이라는 의미로, 다섯 가지 원칙 중 하나는 일신교 신앙이다. 일신교는 이슬람교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과 함께 총 6개의 종교를 일컫는다. 개신교, 천주교, 힌두교를 비롯해 신학적으로 일신교로 볼 수는 없지만 여기에는 불교, 유교도 포함된다.
또한 인도네시아에서 기독교를 포함해 다른 종교들이 무시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국가영웅(Gelar Pahlawan Nasional Indonesia)정책’으로도 알 수 있다.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식민지 지배는 17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현지인들과 치열한 전쟁을 벌이며 지속됐다. 이 시기 식민지 세력과 전쟁을 주도하던 지도자들이 국가 영웅의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이 명단에는 개신교는 물론, 모든 민족과 종교의 지도자가 망라돼 있다.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화폐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영웅을 담고 있다. 1000루피아에서 10만 루피아까지 총 7가지 종류로 나뉜 인도네시아 지폐의 앞 뒷면에는 지역과 민족에 대한 소개가 실려 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발행된 신권의 1만 루피아 앞면에 실린 인물은 프란스 카이시에포(Frans Kaisiepo)는 무슬림이 아닌 개신교 신자이다.
물론 인도네시아에서 종교를 둘러싼 충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7개 종교는 서로 화합을 이루고 있다. 프란스 카이시에포가 했던 정치적 투쟁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2차 대전 끝난 후, 수카르노가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선언했다. 이때 카이시에포는 파푸아에서 수카르노의 결정에 크게 환영하고, 인도네시아 국기를 휘날리며 애국가를 불렀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가 자신들의 영향권에서 쉽게 빠져 나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에 무슬림들이 많은 지역을 차지하던 술탄들에게 다가가 ‘공화국이 선포되면 너희들이 권력을 상실하게 될거야!’라면서 자극하기 시작했다. 기독교 신자들이 많은 지역에서도 단독 정부를 수립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성공적인 예로는 현재 파푸아 지역에서 1946년에 수립된 기독교가 국교인 네덜란드령 뉴기니이다. 그러나 카이시에포와 같이 애국주의가 넘친 영웅들의 노력과 수카르노의 국제적인 압박으로 네덜란드령 뉴기니는 1963년 인도네시아에 합병됐다.
만약 카이시에포와 그의 친구들이 원했다면, 오늘 날 민족, 종교, 지리적으로 유사한 파푸아 뉴기니와 통일하거나 혹은 영국에서 독립한 파푸아 뉴기니처럼 독립국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종교와 민족적인 차이점 대신, 식민지 시기에 네덜란드에 대항에 왔던 투쟁을 잊지 않았으며 통일된 인도네시아 꿈에 집중했다.
이 글은 한국경제신문 https://www.hankyung.com/thepen/article/66109 에도 실렸습니다.
돈 밝히는 남자 알파고 시나씨의 인도네시아 화폐 탐구는 여기까지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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