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
식상한 내 취미, 독서. 요즘은 취미가 독서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독서량이 참담하다. 마땅한 핑계는 없다. 굳이 꼽자면 애증관계인 넷플릭스나 늘어난 집안일 정도랄까. 그래도 나는 '비밀 클럽의 표식'처럼 매일 가방 속에 책 한 권을 지니고 다닌다. 한 장도 못 읽는 날도 있지만 책 읽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잊지 않기 위한 각오의 행위이다.
얼마 전 회사 동호회 중 하나인 북클럽 운영이 종료됐다. 동호회를 더 이상 운영할 사람이 없어서였지만 그 소식을 듣고 괜히 마음이 시큰했다. 나 역시 적극적으로 독서를 하는 편이 아니게 되었으니. 공교롭게도 폐쇄 전 마지막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특별히 활동이랄 것은 없었고(독서에 무슨 활동이 더 필요하겠냐마는) 클럽장이 꼽은 신간 중 구매할 책 한 권을 고르는 활동(!)이 전부였다. 선별된 신간 목록은 평범했고, 그나마도 나는 여행 중이라서 목록 중 선택할 기회도 놓치고 말았다.
여행을 마치고 오니 책상에 책 한 권이 놓여있었다. 장류진 작가의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이었다. 가장 많은 회원들이 선택했다는 이유로 나도 같은 책을 받게 된 거였다. 알고 보니 요즘 2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하이퍼 리얼리즘 소설'로 꽤 주목받는 소설집이었다.
문장이 짧고 스토리도 빠르게 진전되어서 순식간에 읽어버렸는데 별로 기억에 남는 작품은 없다. 특정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억지로 끼워 넣은 장치들이 뻔했고 장면과 장면을 엮어 낸다기보다 상황을 설명하는 데 그쳤다. 그리고 대부분 작품의 주인공이 '젊은 직장인'이고 사건의 배경은 '회사'였다. 짧은 호흡과 설명투 때문에 소설집의 전체적인 느낌도 약간 사무적이었다. 물론 의도한 것이겠지만, 작가는 십여 년을 직장 생활을 하며 퇴근 후, 휴가를 내서 소설을 써내려 갔다고 한다. 어쩌면 그런 상황이 자연스레 스며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 소설을 쓰다니, 소설의 재미 여부를 떠나서 이것만으로도 작가가 정말 존경스럽다.)
사회고발적인, 그리고 그게 너무 적나라한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하이퍼 리얼리즘'이 너무 와 닿아서 불편했던 걸까. 적어도 내게는 독서의 기쁨은 거의 없던 소설집이었다. 누구나 독서에 품는 의미가 다르겠지만 나는, 특히 소설을 읽는 독서라면, 마땅히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소설은 픽션이니까.) 나는 오직 내 삶, 단 하나의 삶밖에 살지 못하지만 소설에서는 다른 이의 삶을 원 없이 살아볼 수 있다. 나는 이야기(픽션)로서의 소설을 좋아하고 그런 소설을 읽는 독서를 기쁘게 느낀다. 소설이 사회문제를 담으면 안 된다는 게 아니다. 소설의 형식을 차용한 사회고발이 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소설에는 삶이 담겨야 한다. 삶의 단면을 언어로 빚은 장면으로 보여주는 게 소설이다. 그 삶에는 자연스레 작가가 고민한 사회문제가 담길 수는 있겠지만 굳이 적나라할 필요는 없다. 상황을 보여주고 그 상황에 놓인 인물의 삶을 보여줄 뿐. 그 상황과 삶의 단면을 독자는 단순히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 상황과 엮어 '읽어내려'가는 것이 독서다. 내 독서의 기쁨은 여기서 온다. 그 단면의 면면이 천천히 내게 스며들며 생각하게 만드는 그 순간들.
사실 나는 이번 독서에서 그런 기쁨을 크게 느끼지는 못했다. 소설에서 리얼리즘이 굳이 '하이퍼'일 필요까지 있나 싶었다. 애초에 이 작품들을 소설집으로 만나지 않고, '릿터'처럼 매월 시사성이 담긴 주제를 테마로 하는 문예지에서 한 편씩 만났다면 이렇게까지 실망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오히려 해설이 더 좋았으니깐. 묶어 놓아서 빛을 발하는 작품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이번 독서에서 느꼈다. 직장인으로서의 여성, 혹은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젊은 여성이 마주한 현실을 담은 <잘 살겠습니다>나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새벽의 방문자>들은 릿터에 언젠가 실렸던 초단편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유튜브에 올린 음악이 이슈가 되면서 삶의 새로운 국면을 맞는 무명 음악가의 이야기가 담긴 <다소 낮음>은 기시감이 짙었다. <탐페레 공항> 역시 감동적인 이야기였지만 익숙한 느낌이었다. <일의 기쁨과 슬픔>보다는 <도움의 손길>이 가장 인상 깊었다.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게 된 주인공은 직장인, 즉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고용자의 입장에 서게 되는데, 그 애매모호한 입장이 '가사'라는 노동으로 이어져있다는 것이 현실적이면서도 색달랐다. '가사'라는 노동에 대한 관찰과 고민이 예리했달까. (사실, 무척 좋은 소스인데 표현 방식이나 장치, 구도들이 역시 단순하고 너무 친절해서 약간 아쉽기는 했다.)
다른 작품들을 보면서 사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별로 기대되지 않았었는데, <도움의 손길>을 읽고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앞서 읽은 작품들에서 굳이 '하이퍼'이기까지 하면서 현실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은, 보다 읽기 쉽게 쓰기 위한, 대중성을 갖추기 위한 장치였겠단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그런 거라면 다음 작품은 기대해봐도 좋을 듯하다. 개인적으론, 다음 작품은 조금 덜 친절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독서는 오직 혼자 하는 활동이다. 북클럽은 있어도 책 읽는 행위를 두 셋이서 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저마다 더 뚜렷한 독서취향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을 읽는 데 개개인의 잣대가 있듯 나도 그렇다. 내게 좋은 소설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소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 취향에 맞는 작품만 골라 읽는 나로서는, 이번 독서가 기쁘지는 않았어도 색다르기는 했다. 기존에 읽던 소설과는 사뭇 달라서 낯선 분위기가 이질적으로 다가왔던 것도 같다. 이 소설집에 실린 평론 중에 "한국소설 특유의 '비대한 자아'가 없어서 신선하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 평가에는 공감했다. 이 소설집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원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찾아나가는 현실적인 젊은이들이지만, 한국(현대)소설의 주인공들은 뭐랄까, 섬세하고 유약하며 감성적인 인물이 많은 건 사실이니깐(사실 이건 한국소설에만 국한된 건 아닐 수 있다).
너무 취향에 맞는 책만 읽는 건 아닐까 돌아본 계기가 되기도 했으니, 이 독서에서 아주 기쁨이 없었던 것도 아니겠다. 가끔은 색다른 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필요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