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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진아 Sep 26. 2016

천천히, 예의를 갖춰 버리는 것.

처음 이사 왔을 때, 우리 집은 꽤나 깨끗했다. 크게 문제 되는 부분도 없고 가족 모두 워낙에 집을 가꾸지 못해서 이만하면 좋다고 했다. 그렇게 8년을 살았다. 점점 우리 손 때를 타고 어느 집에 가도 그렇듯 집에 사는 사람들의 냄새가 배어 있어서 더 좋았다. 가끔은 물건이 척척 널브러져 있을 때면 그 물건이 그곳에 있어서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이 들만큼 나는 우리 집을, 물건들을 지나치게 사랑한 것 같다. 하지만 싼 집이라서 그런지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난방이 어디로 그렇게 새어 나가는지 모르겠고 여름에는 밖에 있는 더위가 다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환경오염 때문에 지구가 힘들어한다는 걸 어느 교육보다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호랑이 선생님이 우리 집이었다. 그런데 단열공사를 하게 됐다. 외벽 때문에 추위와 더위가 더 많이 느껴지고 전력도 낭비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꼬박 이틀을 걸려 가구를 옮기고 벽도 깨끗하게 도배했다. 이 작은 집에 무슨 물건들이 이렇게 많냐며 도배장이들이 절레절레했지만, 익숙하게 듣는 말들이라 어깨를 살짝 으쓱하는 걸로 답했다.


"앞으로 버리는 연습 좀 하고 살자."

끝이 보여가던 공사는 엄마의 말 하나로 다시 시작됐다.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다 같이 버릴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지만 도무지 뭘 버려야 하고 버리지 말아야 할지 기준이 서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버릴 게 없어 보였다. 하다못해 립스틱 하나에도 수만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데, 집에 있는 물건들은 그보다 더할 수밖에 없었다. 온통 나에게는 의미 있는 물건들이었고 추억이었다. 이것들을 버리는 데에도 마음의 준비라는 게 필요했다. god의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를 들으면 좀 더 잘 이해가 되려나. 어찌 됐던 오래된 내 물건과의 이별은 쉬운 일이 아님이 분명하다. 


앉은자리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도 않고 정리하기를 수십 분. 옆에 놨던 쓰레기 통이 점점 이성의 끈의 힘을 받아 채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장 맨 아래칸을 정리하던 중에 깊숙하게 꽂혀있는, 역시나 너무 낡아 새로운 것으로 바꿔야겠다 싶던 옛 앨범을 펼쳤다. 

2016.02

순간 넋이 나가고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아니 안도의 웃음이 새어 나왔다. 거기에는 새로운 것으로 바꿀 수 없이 아름답고 보기에 행복함마저 깃드는 엄마의 내 나이적 사진들이 있었다. 갑자기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쓰레기통을 뒤져 너무 사랑했던 물건들을 하나 둘 꺼내어 상자에 넣었다. 

결과적으로는 우리 집의 물건의 많은 것들이 버려졌다. 그 속에 담긴 쓸데없는 미련들도 함께. 다만 너무 아름다워서 아직 내 손을 떠나보내지 못한 물건들은 상자에 고이 담아 책장 위에 얹어놓았다. 그래서 나중에 정말로 미련 없이 잘 버려줄 수 있을 때 하나씩 정리하기로 했다. 그게 그 물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은 아직 심플해지려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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