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사 왔을 때, 우리 집은 꽤나 깨끗했다. 크게 문제 되는 부분도 없고 가족 모두 워낙에 집을 가꾸지 못해서 이만하면 좋다고 했다. 그렇게 8년을 살았다. 점점 우리 손 때를 타고 어느 집에 가도 그렇듯 집에 사는 사람들의 냄새가 배어 있어서 더 좋았다. 가끔은 물건이 척척 널브러져 있을 때면 그 물건이 그곳에 있어서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이 들만큼 나는 우리 집을, 물건들을 지나치게 사랑한 것 같다. 하지만 싼 집이라서 그런지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난방이 어디로 그렇게 새어 나가는지 모르겠고 여름에는 밖에 있는 더위가 다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환경오염 때문에 지구가 힘들어한다는 걸 어느 교육보다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호랑이 선생님이 우리 집이었다. 그런데 단열공사를 하게 됐다. 외벽 때문에 추위와 더위가 더 많이 느껴지고 전력도 낭비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꼬박 이틀을 걸려 가구를 옮기고 벽도 깨끗하게 도배했다. 이 작은 집에 무슨 물건들이 이렇게 많냐며 도배장이들이 절레절레했지만, 익숙하게 듣는 말들이라 어깨를 살짝 으쓱하는 걸로 답했다.
"앞으로 버리는 연습 좀 하고 살자."
끝이 보여가던 공사는 엄마의 말 하나로 다시 시작됐다.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다 같이 버릴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지만 도무지 뭘 버려야 하고 버리지 말아야 할지 기준이 서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버릴 게 없어 보였다. 하다못해 립스틱 하나에도 수만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데, 집에 있는 물건들은 그보다 더할 수밖에 없었다. 온통 나에게는 의미 있는 물건들이었고 추억이었다. 이것들을 버리는 데에도 마음의 준비라는 게 필요했다. god의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를 들으면 좀 더 잘 이해가 되려나. 어찌 됐던 오래된 내 물건과의 이별은 쉬운 일이 아님이 분명하다.
앉은자리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도 않고 정리하기를 수십 분. 옆에 놨던 쓰레기 통이 점점 이성의 끈의 힘을 받아 채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장 맨 아래칸을 정리하던 중에 깊숙하게 꽂혀있는, 역시나 너무 낡아 새로운 것으로 바꿔야겠다 싶던 옛 앨범을 펼쳤다.
순간 넋이 나가고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아니 안도의 웃음이 새어 나왔다. 거기에는 새로운 것으로 바꿀 수 없이 아름답고 보기에 행복함마저 깃드는 엄마의 내 나이적 사진들이 있었다. 갑자기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쓰레기통을 뒤져 너무 사랑했던 물건들을 하나 둘 꺼내어 상자에 넣었다.
결과적으로는 우리 집의 물건의 많은 것들이 버려졌다. 그 속에 담긴 쓸데없는 미련들도 함께. 다만 너무 아름다워서 아직 내 손을 떠나보내지 못한 물건들은 상자에 고이 담아 책장 위에 얹어놓았다. 그래서 나중에 정말로 미련 없이 잘 버려줄 수 있을 때 하나씩 정리하기로 했다. 그게 그 물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은 아직 심플해지려면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