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gal Feb 12. 2022

피부관리에 대하여

성의가 중요해진 스킨케어 루틴

피부는 타고난 게 중요하다고 한다. 나는 내가 좋은 피부를 타고났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내가 막쓴 것에 대배 지금까지 잘 버텨준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유전자라 봐야겠다. 얼굴에 여드름이라곤 대학교 2학년 때 잠깐 심하게 나고 사라진 게 전부고, 그 뒤로는 밝은 피부톤에 빤질빤질한 광이 나는 피부였다. 피부도 나에게 별 불만이 없었는지 특별한 케어를 필요로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한 2년 전부터 크림을 발라도 얘가 문을 닫아 토해내는지 꺼슬꺼슬하고 칙칙한 피부가 되고 말았다. 물론 선크림 바르면 다 되는 줄 알고 대충 선크림 바르고 햇빛 좀비로 살아온 지 어언 6년이 넘었으니 피부도 이렇게 파업을 할 시기가 되긴 됐다. 눈가 주름은 아직 덜한데 노무현 이마 주름이 생기려는 거 같아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눈썹을 올려 들어 이마를 찌푸린 채 경청하는 버릇을 먼저 없애야 하겠지만.


메이크업엔 그렇게 큰 성의와 관심이 없었어도 피부는 좋길 바랐는데, 이제 피부도 성의를 보여야 좋을 수 있다니 오랜만에 느낀, 나이로부터의 배신이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에 다녀온 김에 스킨케어 루틴을 완전히 바꿨다. 원래는 오일이 살짝 섞인 클렌징 워터로 화장을 지우고 클렌징 폼을 썼다면, 이제는 클렌징 오일로 화장을 했건 안 했건 저녁 세안을 한다. 예전엔 끈덕거리고 강한 느낌이 싫어서 클렌징 오일을 안 썼었는데 막상 써보니 좋다. 외국 브랜드에서 나오는 것들은 피부에 안 맞아서 시도했다 친구 준 적이 많았는데, 이번에 한국에서 사 온 민감성 피부용은 그렇게 오일 느낌이 심하지 않아 잘 쓰고 있다. 그리고선 클렌징 젤로 다시 한번 세안을 한다. 그동안 기름은 없는데 건조해서 각질이 생긴 건데 관리를 잘 안 해줬던 탓인 걸로. 그러고 나서 스킨으로 닦아내고 흔히 말하는 콧물 발효 에센스를 대충 바르고 리페어에 좋다는 에센스를 또 바른다. 그리고선 아이크림을 바르고 다른 걸 좀 하다가 돌아와서는 저녁용 크림을 바른다. 이것도 리페어에 좋단다. 그리고 가습기를 틀어놓고 잔다. 자는 방의 습도가 매번 30% 수준이더라고. 55%가 목표지만 그러려면 물을 끼어 얹는 수준이어야 해서 매번 45%인 상태에서 일어나 가습기를 끈다. 그래도 30보단 45지!


그렇게 2주 정도 하니 피부가 예전 정도는 아니어도 윤이 난다. 피부가 내게 기대하는 수준이 워낙 낮았어서 이 정도 성의로 반응을 보여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두피 케어도 친구들 말대로 실리콘 브러시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 확실히 더 나은 것 같다. 예전에 샤워를 하면 30분씩 걸리는 친구들이 이해가 안 됐었는데, 지금 보니 5분 내에 끝내는 내가 피부에 너무 무관심했던 거였다.


나한테는 '뭘 또 그렇게까지'의 영역들이 몇 개 있는데 피부관리가 그중 하나였다. 물론 한국에 살았다면 피부과나 에스테틱에 외주를 줬겠지만 지금은 그럴 환경이 못 되니 시간이 많은 내가 스스로 셀프케어를 하는 방법을 택했다. 내가 지금은 필요 없다고, 과하다고 느끼는 영역들이 스킨케어처럼 언젠가 나의 필요가 되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그런 순간이 올 때 겸허하게 내 오만함을 인정하며 빨리 수긍하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미 늦었어 하고 방치하지 말고 하는 데까지 해보는 거.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물론 너무너무 좋겠지만, 이제는 건강하게 보이는   중요해졌다. , 말할 필요도 없이 건강한  제일 중요하다. 한국에서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다가 우연찮게 길거리에서   회사 남자 임원들 이야기하면서 "그분들 머리 엄청 하얘졌더라"라고 이야기했더니, "요즘 흰머리는 패션 아이템이야"라고 친구가  답이 오래 뇌리에 남았다. 사실 흰머리가 육체노동을 하는 분들에게는 나이 들어 건강한 노동력으로 보이지 않아 숨겨야 하는 존재라고 들었는데, 누군가에게는 패션 아이템이라니 특히 남자들한테는 럭셔리 템이라니. 그리고선 아름답게 보이는 것보다 건강하게 보이는  나의 레벨업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나도 어떤 버블인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는데... 여기까지 가기에  피부관리라는 소재가 너무 하찮기 때문에, 정신 차릴 겸 이나   마시러 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앞머리 롤과 집에서 입는 편한 옷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