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gal Feb 17. 2022

쓸모 더하기 재미

나는 제품 리뷰도 잘 못하네

최근에 깨달은 사실: 나는 기계를 다루는 걸 즐거워한다. 특히 새로운 기계를 만지면서 새 기능을 배우는 걸 좋아한다. 그래도 기계를 재미를 위해 사본 적은 또 없는 것 같다. 물론 없어도 되는 기계를 산 적은 많지만 재미를 위해 산 건 없다. 킨들이나 크레마도 결국은 재미보단 책을 읽을 수단으로 필요했던 거고, 에스프레소 머신도 커피를 맛있게 마시기 위해 필요했던 거였다. 게임기는 다마고찌조차 사본 적 없고, 게임 어플은 1년에 한 번 정도 까나?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재미있는 기계 이야기를 하냐면, 망설이다가 사기로 결정하기까지 반년이 걸렸고 사기로 마음먹고 맘에 드는 색으로 사려고 기다리던 시간이 한 4개월, 그리고 나서 물류대란으로 내가 사고 싶다고 막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게 또 2개월, 이렇게 거의 1년이 걸려 산 에어랩이 드디어 배송되어 왔다. 보라색을 사고 싶었으나 묘한 빨간색을 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옵션이 이거 하나였기 때문에. 이나마도 내가 사고 난 다음날 품절이 되고 말았다. 이런 제품을 파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제품을 기다렸다 사는 사람밖에 못 되었네.  


오자마자 테스트 겸 한번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튜토리얼이 있는 유튜브를 하나 보고, 머리를 감고 시도해봤는데, 나 원참 이거 너무 재밌다. 바람의 방향을 이용해 머리가 자동으로 감기고, 특유의 바람소리가 서늘하게 들리고, 성의 없는 손길에도 최선을 다해 컬을 만들어내는 이 제품 때문에 여러모로 재미있게 놀고 있다. 머리는 최대 하루 한 번 감는 거니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러 내일 아침에 귀찮아도 머리를 감을 예정이다.


지금 재미 들린 버전은, 굳이 구획을 나누지 않고 봉을 위로 향하게 살짝 비스듬하게 세운 뒤 정수리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리면서 알아서 머리가 쇽쇽 빨려 들어오게 해서 컬이 생기도록 하는, 슈퍼 귀차니즘용. 스스로 개발해서 시도해봤는데 아주 만족스럽다. 어딘가 튜토리얼 보면 또 있는 방법일 거라 확신하지만, 그것 없이도 혼자 나한테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소박한 재택근무 옷차림과 어울리지 않게 과한 머리로 바쁜 하루를 보냈고,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새 기계를 다루는 게 즐거울 따름. 쓸모도 쓸모지만, 소유가 주는 만족감도 그 나름이지만, 사용하면서 느끼는 재미도 중요한 요소라는 걸 이렇게 또 알게 되었다. 이제 겨우 익숙해진 애플 워치도 이렇게까지 재미있지 않았는데. 기계를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다면 어렸을 때 하드웨어나 조립 같은 것에도 좀 더 관심을 가져볼걸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아니면 이것도 어린 날 소꿉놀이, 미용실 놀이의 하이테크 버전으로의 연장으로 봐야 하나.   




매거진의 이전글 피부관리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