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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gal Apr 10. 2023

2023년 9-14번째 주

변화와 휴가

감정의 동요는 많았어도 하루하루는 별다른 일 없이 잔잔했던 것 같은데 지나고 보니 굵직굵직한 이벤트가 많았다. 봄을 얻기까지 겨울이 유난히 길었었고 드디어 2023년 새해를 제대로 맞은 느낌. 


회사에서 사람 스트레스가 계속 심해졌지만 업무적인 도전은 갈수록 없어지는 게 명확해져서 연초부터 이직을 ASAP로 잡고 준비했었다. 딱히 준비랄 건 없고, 지원을 구체적으로 내부와 외부로 진행하고 리크루터 연락도 스킵하지 않고 해봤다. 문제는 해결해보려고 우선 노력하지만 내 손을 떠나간 문제들이 나오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를 최우선 원칙으로 두고 실천하는 중. 이런저런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회사 내에서 다음 기회를 찾아보기로 결정하고, 1월 말에 잡은 3월 1일 최종 면접에서 좋은 결과가 있었고 오퍼를 받았다. 이 타이밍이 나한테는 너무 딱이었던 게, 약 4주 휴가 바로 전 주 월요일에 오퍼를 받았고 하루 묵힌 후 화요일에 팀에 알렸으니 내가 없어도 이런저런 진행은 가능할 거고 나는 돌아와서 인수인계를 하고 빠르면 5월 혹은 6월이면 새 팀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 믿어서였다. 하지만 이건 나의 아주 나이브한 생각이었다. 


우선 구두로 떠날 의사를 밝히고 나서 본 매니저의 반응이 너무 기대 이하였다. 작년 10월부터 명확하게 이 팀에 불만족한 부분을 밝혔고 부족한 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왔었고 남을 룸은 없다는 걸 확실히 해왔던 터라 오히려 내가 올해 말까지는 팀에 남아있을 줄 알았다면서 난감해하는 게 전혀 이해가 안 됐다. 그리고선 인수인계 시간을 풀로 쓸 거라며 지금 이렇게 구두로 전달한 건 공식 노티스가 아니니 그쪽에서 온 계약서에 싸인할 때까지 아무 것도 진행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새로 옮기는 팀에서는 어차피 같은 회사고 최대한 스무스한 이동이 될 수 있게 서로 협조해야 할 거라고 사전에 이야기한 터라 이런 반응이 난감하긴 했다. 그리고선 결국은 매니저끼리 진행할 문제라며 걱정 말라고 원하는 걸 찾아서 다행이라고 급 얼굴을 바꾸고선 대화를 마무리했다. 간장 종지만한 마음 크기를 이렇게 볼 줄은 몰랐어서 실망이 컸고 이직 경험이 풍부한 내가 경험한 최악의 사직 통보 미팅이었다. 


암튼 이건 놀라서 그랬겠지 싶어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며) 내가 새 계약서에 싸인하기 전까지는 내 공석 채용을 진행하지 않을 거라고 했던 매니저가 바로 그 다음 날 내 자리 공고를 나랑 상의없이 냈다. 물론 누가 봐도 내 채용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 중간에 붕뜰 걱정은 전혀 없었지만, 새 자리를 채용하려면 어떤 경력과 스킬셋이 필요한지 내가 제일 잘 아니 나한테 물어봤어도 좋았을 텐데 그 과정없이 그냥 포스팅을 내버린 것. 이때부터 명확해졌다: 굉장히 감정적인 사람이었구나, 내가 옆 팀과 겪어야 했던 감정적인 노동의 시작이 다 이 매니저의 미숙한 감정 처리 때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ASAP로 이직을 준비한 나에게 칭찬을 백 개 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서 다음 날 나한테 업무와 툴 리스트를 물어보긴 했지만 나는 이미 마음이 떠난 터라 개의치 않고 그냥 마무리나 잘하기로 다짐하고 내 할 일을 했다. 


그리고 나서 나는 휴가를 떠났다. 바로 그 다음 주 새 매니저가 지금 매니저와 미팅을 해서 조율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나는 컴퓨터를 접었고, 양쪽에 혹시 내 인풋이 필요하면 편하게 연락주라며 개인 연락처를 남겼다. 그리고 4주 후 돌아와보니 지금 팀은 조직개편으로 우리와 싸우던 팀은 해체되고 팀원 하나가 우리 팀으로 들어와있었고 그 팀원과 함께 내 공석 채용을 진행하고 있었고, 최종 2인을 남겨둔 상태. 그리고선 새 팀에 돌아왔다고 알리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물어보려 챗을 했더니 그 4주 동안 지금 매니저가 2번이나 미팅을 이유없이 연기했고 돌아오는 수요일로 미팅을 다시 잡았다는 것. 이게 얼마나 구린 상황이냐면, 내 트랜스퍼는 아직 진행 상태가 0%이어서. 트랜스퍼 시기가 확실하지 않으면 계약서 초안을 노조에 확인하는 과정을 진행할 수 없고 이게 없으면 내 채용은 아직 미정이기 때문. 물론 내가 거의 한 펑션을 다 케어하고 있어서 부재가 클 거라는 건 이해하지만, 사실 기술적인 업무의 인수인계는 제대로 된 경력 있는 사람을 뽑으면 1-2주면 끝나고 많은 경우에는 그냥 그 전 사람들이 작업했던 코드나 문서로 팔로업하기도 해서 이 걱정이 그저 경험 미숙에 역량 부족이라고밖에 안 느껴지는 것. 그리고 같은 회사고 빅보스끼리도 서로 아는 사이라 서로 얼굴 안 붉히려면 상황을 전달하고 이해를 구했다면 오히려 나았을 텐데, 그냥 미팅을 미루고 시간을 벌면서 자기 채용을 거의 다 마무리한 건 그냥 더러운 플레이라고밖에... 


이번 불쾌한 경험으로 얻은 건 여기 저기 작은 연기를 무시하지 말자, 3월 장기 휴가는 나쁜 아이디어다, 업무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디폴트 기대치를 많이 낮추자 정도. 지난 주 딱 하루 일하고서 얻은 불쾌한 정보가 이 정도니 4월은 잔인한 달이 아닌 불편한 달이 될 것 같다. 지금 팀 동료가 earliest possible starting date가 7월 1일이 아니겠냐고 하는데, 제발 새 팀에서 빠르면 5월 중순 아니면 6월 초로 빡 앞당겨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부정적인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한국에서 보낸 2.5주와 일본에서 보낸 1주는 참 좋았다. 코로나 이후 격리 없이 들어간 건 처음이었고 친구들을 만나 놀긴 했지만 주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특히 부모님. 해마다 더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이 안쓰럽고 그 옆에서 같이 시간을 못 보내드려서 미안한 마음과 함께 고루한 생각과 바운더리 없는 걱정과 사랑에 숨이 막혀오는 걸 매일 반복하다 보니 벌써 이렇게 돌아와버렸네. 조카들이랑 보내는 시간도 즐거웠다. 아이들은 정말 투명하고 그 자체로 사랑이다.  


간사이 지방은 처음이었는데 음식도 분위기도 좋았다. 저마다 일본에 호감을 갖게 되는 경로가 다르겠지만 나는 일본 소설과 영화로 일본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읽은 무라카미 류, 요시다 슈이치, 와타야 리사의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같은 걸로 작은 감정에도 이름이 있는 걸 알게 되었고, 대학교 다니면서는 일본 독립영화들을 상영하는 극장에 찾아다니고는 했다 (스폰지하우스나 명동 빌딩 꼭대기에 있던 그 영화관 아시나요ㅋㅋㅋ). 지금 다시 보면 그저 쪼잔한 사람들의 작고 소소한 마음들이 대부분이어서 더 이상 흥미가 없지만, 그 작은 감정들이 크게 느껴졌던 시기에 그걸 생각해볼 수 있던 매체들이 주변에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은 든다. 그리고선 그때 엑셀 신나게 배운 교수님 밑에서 떠넘겨 받은 학회장 자리를 통해 일본 단기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선발됐고 그때 뭣도 모르고 배웠던 AI를 지금 일자리로 이어나가는 거 보면 인생 진짜 모르는 것. 그리고 돌아와서 일본어를 독학했고 어쩌다 첫 취업이 영어로 더 많은 일을 했지만 일본계 회사였던 건 신기한 인연이었고, 한국에서 마지막 직장에서 관리했던 주주사가 일본 방송사였어서 몇 번의 출장 기회와 업무 기회가 있었던 게 전부였다. 아참 대학교 때 배낭여행 차 호주로 갈 때 옆 자리에 앉았던 일본 언니와 친구가 되어 한국에 있을 땐 매년 한 번씩은 만났었고 (그 언니에게 기내 특별식을 주문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ㅋㅋㅋ), 못 만난 지 좀 됐지만 아직도 연락을 지속하고 있다. 이번에 오사카에서 볼 수 있을까 했는데 도쿄에서 일하고 있고 내 스케쥴이 주중을 끼는 바람에 결국 만남이 성사되지는 못했다. 다음에 도쿄로 가서 꼭 만나고 싶은 언니다. 


거의 7년 만에 간 일본은 더 흥미로운 곳이었다. 왜 서양인들이 여행지로 일본에 열광하는지 알 것 같은 느낌. 내가 찾은 이유는 이거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는 다르게 시끄럽거나 여행객들을 귀찮게 하는 경우가 잘 없고, 서비스가 극진하며(debatable), 전반적으로 깨끗하고 (한국과 비교하자면 길거리에 침뱉는 사람 없고 자기 담뱃재 털이를 가지고 다님), 제품/서비스/음식이 전반적으로 곱고 균질하다. 나만 해도 여행 초반보다 돌아오는 때 내 목소리 데시벨이 확 낮아졌을 정도. 눈쌀 찌푸리는 경험은 다른 한국인 여행객을 보면서 한 게 전부니 뭐 할 말 다 했지. 물론 이곳에서 사는 건 힘든 일일 거다. 곳곳에서 보이는 사대주의, 특히 유럽 사대주의는 우리나라의 미국 사대주의와는 좀 다르게 불편하다. 좁은 공간감이 숨막히기도 하고, 음식점 키오스크나 지하철 표 구매기계에 있는 수많은 옵션들이 정신없기도 했다. 그래도 혹시나 일본에 파견갈 기회가 생긴다면 3개월 이하로는 도전해보고 싶기도. 그 이상은 습도 때문에 힘들 것 같다. 


친구들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룹으로 같이 시간을 보냈어도 저마다의 색깔들이 있었었는데 그 색이 더 짙어진 걸 확인하는 게 매년 하는 신기한 경험이다. 그런데 벌써 8년이 지났는데 나 빼고는 거의 같은 회사나 업계에, 같은 파트너에, 심지어 같은 집에 계속 사는 것도 낯설다. 나만 계속 떠돌고 있나 싶었지만 이 생각도 빨리 접은 게, 이번에 이직 준비하며 다른 회사와 동네로 혹은 다른 나라로 옮길 가능성도 분명 있었는데 우선은 이곳에 머물며 지켜보기로 한 게 개인적으로는 정말 자랑스럽다. 나도 인생 P&L 좀 볼 줄 아는 어른이다, 어른!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봄의 얼굴에 또 마음을 뺏겼다. 물론 미세먼지가 큰 장애물이었지만, 그래도 내 서울 사랑을 막지는 못했다. 살지 않고 멀리서 보아야 아름다운 서울. 다음 번엔 늦여름-초가을에 가야 할까 싶다. 



돌아와서 시차적응하는 데 다 쓴 부활절 휴가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일기예보와 다르게 이곳 날씨는 참 좋다, 코트를 입어야 할 만큼 춥지만 그래도 맑은 날씨. 감사할 일들 사이에서 좌절할 일들도 많을 것 같은 4월이지만 어쩔 수 없는 문제들은 내려놓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무엇보다 나를 돌보는 걸 1순위로 두는 시간을 보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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