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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in Feb 23. 2021

기억해야 살아있다

故 백기완 선생을 기억하며

최근 하버드대학 로스쿨 램지어 교수의 논문 중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폭력적 망언에 국민적 분노가 인다. 거기에 국내 극우라 자칭하는 친일의 무리가 이런 진실을 왜곡하는 일본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어 황당함을 넘어 절망감마저 든다. 세월이 흐르고, 일본군 위안부로서 피해를 겪었던, 살아있는 증인이 더 이상 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는 어느 날, 그리하여 우리에게 이 기억이 희미해지는 시기가 오면, 이 명백한 역사적 사실조차 각각의 주장이 대립하는 논란의 하나로 기억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치하, 한국전쟁, 군부독재…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치열하게 살아 내셨던 한 분이 지난 15일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분의 모든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으나, 한국 역사의 모든 한 장면 장면마다 직접 참여해 몸소 모범을 보이며 헌신하셨던 언행일치의 삶과 실천에는 절로 존경심이 이는 분이다. 개인적으로 근래 원근의 교류 속에 형성된 인간관계를 하나 둘 잃게 되면서, 더불어 먹고사는 일을 빙자하며 망각에 익숙한 우리와 우리의 내일을 생각하며 다시금 걱정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지원하다 풍비박산에 이른 언론인 집안, 언어가 그 민족의 얼임을 알기에 국어순화론자로서 억지스럽기조차 한 순간에도 순우리말 사용에 주저함이 없던 작가. 그러나 오늘날에도 개념어 주권을 확보하는데 외국어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을 지성인으로 여기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개념이 없다.


목수의 아들, 예수는 샌님이 아니라 노동자의 모습이라며 노동문제 현장에 늘 함께 했던 사회운동가. 그럼에도 K-방역의 선두로 세계의 기준이 되었다 하는, 4차 산업혁명의 기술혁신으로 미래사회를 이끄는 선진국 반열에 들었다 하면서도 대한민국의 노동현장은 이들과 함께 나아갈 방안을 심도 있게 고민하기보다는 ESG 투자자의 유도에 따르는 가이드라인을 겨우 넘기는 그린워싱에 그칠 뿐, 여전히 동지로서의 자발성은 부족하다.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으로 살아온 세월, 그분의 절절한 개인적 경험까지 감정 이입할 수는 없으나, 우리의 통일문제를 세계평화까지 이어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탐욕적 자본주의 시각으로 경제성만 계산하고 이해하는 수준을 뛰어 넘어설 수는 없는지, 여전히 전후세대는 공감할 수 없는 의무에 가까운 당위와 자본의 약탈적 논리를 넘는 남북문제의 사회적 합의에는 이르지 못한다.


조국의 반독재투쟁과 민주화 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재야운동가.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이기도 하여 어느 투쟁의 현장에서도 의기와 결기를 다지는 자리에 늘 함께 했다. 보다 옳다 믿는 가치를 위해 뜨거운 청춘과 어우러져, 적어도 이 땅에 절차적 민주주의의 기반을 놓고, 그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섰다. 평온의 시기, 빈부를 비교하고 우열을 가리며, 젊은 날, 치기 어린 세월과 어리석은 선택을 하며 살았다, 그들의 과거 삶과 가치를 부정하며, 일상의 곤함을 넋두리하며 누리는 이 당연한 자유가, 가치를 지향하고 실천하며 치열하게 양심에 따라 삶을 살아온 수많은 이들의 정신과 희생이, 대한민국 아래 쌓여 이룬 것임을 오늘의 우리가, 우리의 내일이 기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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