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in Mar 21. 2021

진실성을 지닌 저널리즘

뭔가 이상하다. 상식적인 수준에서도 의구심이 들 내용인데 기사의 논조는 너무도 확신에 찼다. 논점이 배제되고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따옴표 기사가 넘치고, 기사가 창작물이 아님에도 추정 기사가 도를 넘는다. 신뢰와 권위를 얻기 위해 활용하는 전문가의 인용조차 의도가 뻔히 드러나 보이는, 국민을 우민으로 대하는 하수의 프레임이다. 의도가 개입된 기사를 제외하고도, 해당 분야의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폭넓은 상식과 취재 등으로 ‘기자로서 최소한’을 기대하는 것마저 ‘직장인’의 한 모습으로 기자의식 없음을 당연하게 보여주는 일면에서 허탈감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주장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그저 특권의식의 한 면임을 깨닫지 못함에 한탄한다.


기자가 게으르고, 무식하고, 무책임하다. 취재도 안 하고, 관점도 없고, 상식도 없고, 자질도 없다. 요즘 기사는 읽을거리가 없다고 했던 어느 대기자의 자조 섞인 말을 떠올린다. 보도되는 기사들을 팩트 체크해야 하는 작금. 보도된 오보는 1~2시간 안에 재생산 및 확산되어 여론을 만들고, 그 진위여부를 떠나 사회불안과 불신을 조장한다. 오보를 정정하더라도 한 번 생성된 여론은 변이를 거듭해 증식하고, 피해자는 이미 낙인찍혀 여론재판으로 생사가 결정 난다.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고, 그때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순진한 현대인이 아직 존재하는가? 언론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언론이 이 사회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해 언론인이라면 진실성을 갖고, 본인의 기사에 책임을 져야 한다. ‘팩트체크 저널리즘’이라는 어휘가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 기자들은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 저널리스트의 가장 기본적인 본분을 망각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검찰개혁 후 언론개혁이 대한민국의 과제라는 말은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꽤 식견이 있다 알고 있는 어느 분은, 과거에 비해 대한민국의 언론환경에 상당한 진전이 있는 것 같다 한다. 살아있는 권력을 비판한다는 미명 하에 ‘대통령 흔들기’에 거침없어도 전혀 위험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반어법이다. 상식적으로도 이해되지 않는 함량 미달의 기사를 보며, 기자들이 보이는 왜곡된 방향의 자기 효능감을 통해 권력관계에서 을의 비열함을 엿본다. 이들의 자정능력은 자본 효용과 권력서열의 내재화로 이미 상실되었다.


펜의 힘을 만끽하면서도, 왜 언론인의 손에 그 힘이 쥐어 쥐게 되었는지 혹 잊지 않았는가? 힘은 약한 자가 아니라 강한 자를 상대하기 위해 모은다. 약자의 편에 서는 의협심과 이들에게 힘을 보태어주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고 믿는, 그러나 그런 힘의 바탕이 되는 신뢰와 권위를 얻기 위해 공개되는 언론인의 말은 더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 믿는, 그래서 한때 그런 의기 넘치는 한 언론인이고자 희망했던 일인으로서 무척 절망감이 들었다.


대한민국의 민주 공화 체제를 위해서 질적인 것은 차치하고라도 이 제도가 유지되기 위한 기본 전제, 명징한 룰과 그 적용 즉, 시스템 확보가 중요하다고 난 생각한다. 이것은 선거의 투명한 관리와 스크리닝 되지 않는 여론으로 구축되며, 그 핵심에 언론이 있다. 언론은 인간의 자유와 자기 주체성의 확립을 목표로 하여 특정 권력체제에 예속되는 것을 방지한다. 저널리즘은 ‘독자와 시청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고, 삶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활동’으로 정의한다. 여기에 ‘저널리즘을 염려하는 사람들의 위원회'(Committee of Concerned Journalists)는 “저널리즘의 기본 목적은 시민들에게 그들이 자유롭고 자신의 주인이 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종종 정치나 선거를 게임에 비유하곤 한다.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피아를 구분해 ‘적’을 명확히 하고 아군의 ‘감정’을 자극한다. 이 게임의 커뮤니케이션에 활용되는 메시지, 데이터, 역동 등에 한국의 언론은 기계적 중립이라도 지켜 주기를 바라는 심판자가 아니라 어느 일방의 플레이어가 되어 뛰고 있다. 더욱이 이런 진영 구분되는 권력 쟁투에는 선거기간이 따로 없는 듯하다.


언론의 주된 역할은 여론 형성이 아니다. 또 주된 기능이 비판에도 있지 않다. 건강한 여론 형성을 위한 정확한 사실 보도, 진실의 전달에 있다. 상호 주관성을 갖춘 객관성을 견지하면서 많은 정보 중에 선택하고, 검증하고, 단순한 사실의 전달을 넘어 맥락까지 이해하여 진실을 파악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감춰졌거나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사실을 탐사하고, 사회 공동체를 위해 공적인 지식을 생산하는 것. 그리하여 권위와 신뢰를 얻은 저널리즘은, 진실(truth)의 전달자를 넘어 그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는 진실성(truthfulness)을 지녀야 한다.


진실성. 진실을 추구하는 태도이자, 상대가 진실을 알게 되길 원하는 태도. 언론인의 손에 있는 펜의 힘은 게임의 아이템이 아니다. 휘두르는 만큼 누군가의 삶이 영향을 받는, 그래서 그 힘의 무게를 느끼며 보다 신중해야 한다. 본인의 이름을 내건 일에 그 힘에 걸맞은 책임을 지기 바란다. 그렇다고 움츠려 들거나 비겁해지라는 의미가 아니다. 진실성을 갖춘 펜은 횟수를 쌓으며 신뢰와 권위가, 더 견고한 힘이 더해져 간다. 그래야 민주 공화 체제의 토양이, 대한민국이 산다.

작가의 이전글 끝까지 살아남은 당신, 과연 완생(完生)이라 말할 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