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편이다. 최근 코로나 19 상황으로 공동 관심사가 좁혀지다 보니 더 다양한 사람들을 같은 이유로 만나게 된다. 그럼에도 조금 시간이 지나자 굳이 사람을 가리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더 자주 어울리게 되면서 또다시 그룹이 형성되었다. 사업에서도 유유상종이 통한다고 해야 하나…
비즈니스는 개인 성향과는 별개로 필요에 의해 시작되기 마련이라 각 분야를 망라해 진행되다가도 어떤 결정적 순간에 이르게 되면, 이들 집단 간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그건 본인이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에 관한 원칙을 갖고 있느냐, 나아가 그 원칙을 지켜 나가고자 타협하지 않아야 할 선을 고수하는가 하는 여부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신용’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업하는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는 경우는 드물다. 이들에게 종교지도자의 신뢰성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들이 그토록 중히 여기는 신용만큼 이들의 신의 역시도 유의미한 것이라면 대한민국이 천민자본주의, 가짜 자존감을 추구하는 허상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위안을 얻을 듯하다. 적어도 모든 의사결정의 유일한 이유가 ‘돈’이 아닐 것이라는 위안.
사업을 위해 협상하다 보면, 수용해서는 안 되는 조건이 있다. 품질을 낮추거나, 단가를 낮추거나 의뢰자의 요구를 맞추다 보면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해야 하거나 사회가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당장 내 주머니 안은 채워지는 듯한 숫자가 보인다. 아직은 '더불어' 살 방안을 찾을 수 있으나 지레 먹고살기 위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며 자기 합리화하기에 바쁘다. 실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비즈니스 원칙에 충실하니 범부의 신의와는 차이가 있더라도 제 나름 신의가 있다고 봐줘야 하는가?
의사결정이 사람의 밥그릇과 연동되면 자율권이 제한된다. 최소한을 지켜내지 못해 그야말로 먹고사는 문제가 되어버리면, 그렇게 원칙이 무너지면 '선택권 없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굴레'에 다시 빠지는 것이다.
사람의 그릇. 어느 정도 똘레랑스라 보일 융통성은 허용하면서도 ‘지켜야 할 원칙’이 분명한 사람들이 있다. 돈이 되는 일이면 열심히 하지만, 본인이 선택한 일이 향후 주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한 번 더 고려하고 결정해 원칙을 지켜내는 사람들을 본다. 어느 선에 이르면, 답답하기 그지없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참 바보스러워 보일 만큼 대조적이다. 그 약간의 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품격이 있고 지켜야 할 명예가 있어 그것이 사람의 가치를 가늠함을 알고 또 알아보는 안목을 갖추고 서로를 통해 인간 기본의 당연함을 본다. 이들의 상식이 공유되고 확산될 때 우리는 보다 안전하고 건강한 대한민국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