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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Jan 01. 2022

그런대로 랜선 여행 2. 홍콩의 음식들

그때그때 머릿속에 떠오르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대로 살아가는 여행 가방 장사꾼의 여행 이야기


'그런대로 랜선 여행'입니다.




2. 홍콩의 음식들



갑자기 홍콩의 밤이 그리워졌다. 네온사인 휘황찬란한 홍콩의 밤거리가 그립다.



사실 매일 그립다. 여자친구가 공부했던 중문대학 캠퍼스의 한적함도 그립고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중경삼림 속 양조위를 회상하던 순간도 그립다. 애드미럴티 역 A번 출구 옆 KFC에서 천 원 돈 주고 사 먹던 에그타르트의 달달쫀득함도 그립다.


여행과 데면데면한 사이였지만 여자친구를 만나려고 비행기에 몸을 싣다 보니 생활이 되었고, 지금은 사실상 여행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여행에 스며들었다. 내 마음속의 홍콩에는 낡은 거리의 취두부 냄새를 머금은 가랑비가 쉬지 않고 내린다.




데낄라 온 데이비스(Tequila on davis)



홍콩섬 북부를 가로지르는 트램의 왼쪽 끝자락에는 '데낄라 온 데이비스'라는 이름의 멕시코 음식점이 있다. 여기서밖에 먹어본 적 없지만 연어 필레를 정말 기가 막히게 하는 곳이다. 곁들여주는 살사는 여자친구 말로는 지금까지 먹어본 중에 세 번째로 맛있다고 했다.



나와 여자친구가 홍콩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소다. 연어필레 한 접시랑 나초 한 바구니에다가 드래곤볼의 미스터 사탄을 닮은 바텐더께서 매콤하게 말아주는 칵테일 한 잔이면 여기가 주지육림의 현현이고 현생에 강림한 천국이다.



이 시국 탓에 여행 못 가서 슬픈 이유를 다섯 가지 꼽으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손가락 접고 시작해야 한다.



온갖 언어가 뒤섞여 저마다의 난장을 펼치는 광경은 흡사 20평 남짓한 공간에 박제된 지구촌 그 자체다. 그래서 나는 홍콩의 밤거리가 그리울 때마다 이곳의 왁자지껄함이 떠오른다. 나한테는 홍콩과 동의어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마시는 술 한 잔이 그립다.



주전부리들



뭘 먹어도 맛있는 나라다. 그래서 길거리 음식도 웬만하면 맛있다. 한 번 쪄낸 다음에 한쪽만 튀겨낸 이 만두는 센트럴 근처를 탐험할 생각이라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소룡포처럼 육즙을 잔뜩 머금었다. 왜냐면 이 녀석의 정체가 튀긴 소룡포이기 때문. (끄덕)


잘못 먹었다가는 혓바닥 고장내기 딱 좋다. 작게 구멍을 뚫고 후후 불어가면서 먹는 과정이 편하지는 않지만 그 이상의 맛으로 확실하게 보답하니 그 정도 불편함은 얼마든지 감수할 만하다.



사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렇게 맛있는 녀석을 왜 이제야 발견했을까 싶어서 여자친구의 친구들에게 물어봤지만 생각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앞으로 부지런히 먹어야지.



타이청 베이커리의 에그타르트는 너무 유명해서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지만 그러면 정 없어 보인다.



무수히 많은 에그타르트가 난립하는 와중에 홍콩에서 제일 맛있는 에그타르트는 KFC에 있다.


아마도 공산품을 쓸 텐데 지점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 여기저기서 먹어본 결과 Admiralty 역 A번 출구 옆에 있는 KFC에서 파는 에그타르트가 제일 맛있다. 개당 천 원도 안 한다.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속는 셈 치고 한 번 먹어보시라. 속았다 싶으면 천 원 버린 거고 맛있으면 앞으로 계속 먹으면 되는데, 아마도 계속 먹게 될 거다.



탐짜이 운남 쌀국수



여자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홍콩 음식이지만 나는 먹고 병원 실려갈 뻔했다. 마라맛 가득하니 한 젓가락 할 때마다 위장이 끓는다. 제대로 된 마라를 경험하고 싶다면 탐짜이 삼거의 운남 쌀국수 만한 게 없다.


혓바닥이 아린 정도를 넘어서 아프다. 가장 맵지 않은 맛을 택했지만 반도 못 먹었다. 이거 먹고 나서 길 가다가 쓰러졌다. 나처럼 매운 거 못 먹는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라도 관심 갖지 않는 게 좋다. 그런데 한 번씩 생각이 난다. 자주는 아니고 조상님 제사 찾아오는 빈도로 한 번씩 생각이 난다. 여자친구와 수련을 거듭한 덕분에 이제는 굴복하지 않을 것 같은데 언제 먹으러 갈 수 있으려나.



포장마차



동네 사람들의 일상을 함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공간은 역시 길거리 포장마차다. '다이파이동'이라고 부르는 홍콩의 포장마차에는 이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보통의 저녁이 있다.



아마도 2016년 겨울이었다. 여자친구의 대학 동기와 술 한 잔 하려고 찾았다. 홍콩의 가장 오래된 시가지 중 하나인 삼수이포에 위치한 애문생이다. 황학동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길거리에 주방을 만들고 좌판을 늘어놓았다. 너무 본격적이라서 이래도 되나 싶은 정도였지만 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모습인 듯했다. 아무렇지 않게 번호표를 뽑고 자리가 나기를 기다린다.



한자로 된 메뉴판은 읽을 줄 알더라도 뜻을 유추하기 쉽지 않다. 사실상 랜덤박스고 돌려돌려 돌림판이다. 정말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이름 정도는 알고 가는 게 좋다. 물론 우리는 홍콩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원하는 음식을 원 없이 먹었다.


홍콩의 포장마차는 웬만하면 공심채 볶음을 잘한다. 이거 하나만큼은 이름을 알아두는 게 좋다. 찾아보니 '炒空心菜(초공심채)'가 중화권에서 공심채 볶음을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어느 포장마차를 가도 비슷한 이름으로 팔고 있는 것 같으니 꼭 시켜 보자. 지금까지 홍콩에서 공심채가 맛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침사추이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청차우'라는 섬의 초입에는 해산물 포장마차가 즐비하다. 동네 사람들이 매일 배를 타고 잡아오는 싱싱한 해산물을 원 없이 먹을 수 있다.


여기서 먹은 굴전이 아직도 생각난다. 계란 속에 굴을 쏟았나 싶을 정도로 재료를 아낌없이 때려붓는다. 맥주가 쉬지 않고 들어간다. 이 동네에서 가장 많이 마시는 블루걸 한 병에다가 굴전 한 입이면 이것 역시 현생에 강림한 주지육림이다.


여담이지만 블루걸은 오비 맥주가 만든다. 근데 한국에서는 못 봤다.


???



여기는 나와 여자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포장마차다. 홍콩중문대학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떨어진 Fo Tan에 있다. 이름은 泰源大排檔(태원대배당).


여자친구에게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내가 고향 가면 동네 친구들과 항상 간이역으로 집합하는 것처럼 여자친구는 학교 친구들과 이곳에서 매일 저녁 흑역사를 생성했다고 한다.



여기는 레몬치킨을 먹어야 한다. 레몬 치킨. 레몬치킨을 먹어야 한다.


여자친구가 항상 시켜줘서 한자로 이름을 모른다. 여자친구도 발음만 알지 한자를 몰라서 정확한 음식 이름이 뭔지 모른다. 여튼 레몬치킨을 먹어야 한다. 사진 속 가장 왼쪽 음식이다. 손가락으로 푹 찍으면 척 하고 주시지 않을까.



상하이 라오라오



아마도 2018년 이후로 홍콩 여행에서 가장 많이 찾은 식당이 아닐까 싶다. 뭘 좋아할지 몰라서 전부 다 준비했어. 상하이 라오라오도 가고 싶다.



여자친구는 '구수계'라는 음식을 정말 좋아한다. 고추기름에다가 마라를 잔뜩 얹은 닭고기 요리다. 그야말로 닉값 하는 요리, 한 입 가져가자마자 입에서 침이 줄줄 흐른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공심채..가 아니라 여기서는 청경채를 볶아 준다. 무슨 채든 안 중요하다. 뭐든 맛있으니깐.



뭘 시켜도 맛있지만 여기에서는 탄탄면을 꼭 먹어야 한다. 땅콩향 가득 품은 진득한 국물은 어김없이 맥주를 부른다.



지점마다 조금씩 맛이 다르다. 물론 다 맛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침 고인다. 홍콩 가고 싶다.



남은 이야기



이제는 한국에도 들어왔다. 못 먹어서 안달 나는 음식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 '감성'은 현지가 아니고는 절대로 재현할 수 없다. 홍콩에는 맛있는 딤섬집이 차고 넘치지만 나한테 만큼은 여전히 팀호완만 한 곳이 없다.



아 맛있겠다.



쉑쉑버거를 홍콩에서 처음 먹어 봤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인 앤 아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는 여자친구의 설득에 마지못해 찾았다.


마지못해 설득당한 과거의 나 칭찬해. 밀크쉐이크에 감자튀김을 찍어 먹는다는 정신 나간 발상을 누가 한 걸까. 훈장 드리고 싶습니다.



고놈 참 맛있게 생겼다.



외부 테라스에 한 자리 차지하고 감자튀김 씹으면서 바닷바람 맞고 있으면 이게 바로 '딤섬', 마음에 찍는 쉼표다. 누군가는 점심마다 즐기는 일상일 텐데, 여행자의 아쉬움이 함께 머무르기에 이 순간의 여유가 더 소중하고 값지게 느껴진다.



가끔은 이렇게 배신을 당하기도 한다. IFC 안에 정말 좋아하던 수제버거집이 있었는데 보건 당국의 철퇴 한 방에 사라졌다. 가장 맛있는 케찹이 있는 햄버거 집이었는데 슬퍼하기에는 사라진 과정이 껄적지근하다. 내 추억 돌려내라 햄버거집 놈들아.



걷는 것보다 아주 조금 빠르다. 트램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는 시선에는 이방인의 설렘과 동네 사람들의 일상이 함께 머무른다.



안팎으로 우환이 많은 홍콩이지만 나는 여전히 이 도시가 그립다. 어스름 사이를 흥청거리는 네온사인의 번쩍임이 그립고 매 순간 입을 즐겁게 해준 이 도시의 음식이 그립다.


오늘도 나는 홍콩이 그립다.




이 가방의 이름은 여가 홍콩, 여행이 그립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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